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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Sep 21. 2022

수요일과 목요일마다 도착한 선물

그날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지막하게 허밍을 한다. 파도와 바람에 따라 요트가 흔들리면 두 손으로 긴장을 움켜쥔다. 아이의 눈동자를, 소녀의 날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오래 기다렸던 여행과 항해에 대하여 소박한 사치를 희망해본다. 어떤 행운의 그림이 펼쳐질지 가슴 벅찬 상상으로 파도와 바람의 리듬에 발을 맞춘다. 곧 우리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선물은 여행을 닮았다, 긴장과 재미 사이에서 마음이 출렁이고, 해맑은 표정을 상상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선물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받은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떨린다는 사실은 선물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선물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손의 온기도 따라가기 때문에 표정과 함께 가슴에 추억으로 기록된다. 빛바랜 선물에서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선물과 함께 따라온 온기 덕분이다.


선물은 다양한 모양으로 준비된다. 달콤한 과일이 색깔별로 바구니에 포장되기도 하고,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처럼 기다란 와인병에 리본으로 장식되기도 한다. 어떤 선물은 졸음을 참아가며 몇 번의 밤을 보내야 완성되지만, 어떤 선물은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선물이 된다. 부피와 가격으로 선물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와 가치가 선물을 만든다.


생각이나 마음도 선물이 될 수 있다. 부드러운 음성에 사연을 담으면 고백이 되고, 선율과 리듬에 얹으면 노래가 된다. 순간의 이미지는 그림이, 아이의 울음은 환희로 전달된다. 이 모든 게 다 소중하지만 마음과 생각을 담은 '글'이 최고의 선물이다. 혼자의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준비할 수 있는 '나를 닮은 선물' 말이다. 그 선물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2022년 봄은 거리가 아니라 내 안에 먼저 도착했다. 4월부터 시작된 시민 서평단 수업이 봄의 향기를 머금고 수요일과 목요일의 문을 두드렸다. 바깥의 사람들이 벚꽃놀이에 분주할 때 가슴에 품은 씨앗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리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를 선택했고 자신의 언어에 귀 기울였다. 책을 좋아하는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이 글이 되도록 빈 노트를 채워나갔다.






수요일 기초반 분위기는 장미를 연상케 했다. 글에 대한 열정은 붉은 꽃잎처럼 활짝 피었고, 의지는 가시처럼 또렷했다. 밋밋한 글이 고개를 들 수 있도록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글이 깨끗해지고 가벼워졌다. 높은 집보다 단단한 집을 지으려는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주제에 맞게 글을 쓰면서 '쓰지 말아야 할 부분'을 스스로 터득했다. 목요일 심화반 분위기는 여행의 설렘을 닮았다. 필통에서 좋아하는 색깔의 펜을 꺼내 카메라 초점을 맞추듯 생각 나라로 출발했다. 책을 읽고 사색의 지도를 펼치며 연금술사가 그랬듯이 좋아하는 문장에 깃발을 꽂았다. 사람들의 걸음을 우수수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 숨겨둔 보물이 곧 글로 새겨졌으며 그들은 오래 펜을 놓지 못했다.


일주일 중 긴장이 슬슬 풀리기 좋은 시간이지만 진지한 마음이 오롯이 글에 스며들어 그날 쓴 짧은 글들은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었고, 눈물이 되었다. 나에게 이런 매력이 있었나, 하는 반가움과 어떻게 써야 할까, 라는 줄다리기 사이에서 값진 고독을 경험했다. '글'이라는 선물이 이렇게 봄부터 조용히 찾아온 것이다.




Photo by Unsplash



여행의 서먹함은 글을 공유하면서 사라졌다. 생각만으로 글이 되지 않는다는 비슷한 고민은 처음부터 큰 위로가 되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 한 공간에 모여 앉아 서로의 글을 음미하며 닮아갔다. 그들의 용기는 들꽃처럼 확 퍼져 하루가 다르게 활짝 피어났다. 어떤 글은 잎사귀에서 출발해 꽃에 도달했고, 어떤 글은 꽃잎에 영혼을 담았다. 서로 모양과 색깔이 다른 글이지만 읽는 방식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마음을 열고 시선을 한데 모아 자신의 내면을 건너간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이것이 읽고 쓰는 자의 공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글은 사람을 닮았다. 지구인 수만큼 다양한 글이 존재하므로 앞사람을 쫓아가도 결국 도착한 곳은 나 자신이다. 나의 글이 어떤 지도를 그릴지 궁금하다면 지금 내가 무슨 책을 펼치고 있는지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 현명한 사람들은 바깥의 소문보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내 안에서 지혜를 찾길 원한다. 읽는 순간 작가의 순수성과 진실이 이식되어 글이 글을 부르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가도 타인의 글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니, 글이 글을 키운다는 말을 믿어도 좋겠다.



모든 위대한 행동, 모든 위대한 사상은 그 시작이 하찮다.
위대한 작품은 흔히 어느 길모퉁이를 돌다가
혹은 어느 식당의 회전문을 지나가다가 착상한 것이다

Photo by 혜경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통해 한 말이다. 모두가 하찮다고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위대함'의 씨앗이었다. 습관적으로 버리거나 숨겨두었던 것 중에는 실수로 판단한 것들이 많다. 카뮈의 말이 아니더라도 '쓸모없음' 속에서 진실을 꺼낼 줄 아는 '새로고침'을 실천해보자.


글은 거짓을 싫어한다. 언제나 정직으로 응원한다. 작가와 독자가 작품 사이에서 진실을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글이 추구하는 투명성 때문이다. 작가가 그물을 짜듯 구성한 플롯이 독자 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글이 요령을 버리고 스스로 선물이 되어야 한다. 선물이 받는 사람을 존중하며 준비되듯이, 글은 읽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작가와 등장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마을을 표현했다. 하나의 퍼즐이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으며, 그들 각자의 언어가 되었다. 읽고 쓰고 음미하며 두 개의 계절을 여행하는 동안 좋은 인연을 맺었다. 나를 찾아온 선물이 당연하지 않도록 그동안 잠가두었던 심연의 서랍을 이제부터 오래 열어두길 바란다. 우리의 바다는 깊고 고요해서 나지막한 허밍은 잠자는 나를 깨울 것이다. 모든 나날이 그렇겠지만 유독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더욱 간지러울 것이다.



Photo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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