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어떤 소리 하나가 귀에 꽂혀 고개를 돌렸는데. 오랜 시간 공들인 일이 잠시 보류되었다. 시선을 끌어당긴 곳은 건너편 2층 테라스. 툭 툭 기계음이 퍼졌고 아 아마이크 마이크. 누군가의 목소리가 두 번 정도 반복되었다. 그러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앞으로 세 걸음 나오더니, 긴 갈색 머리를 모아 왼쪽 어깨 앞으로 떨어뜨렸다. 곧 선보일 무엇인가를 자랑이라도 하듯 드레스는 과하게 부풀어 있었고, 덩달아 주변 빛들이 그 끄트머리를 다림질하기 시작했다. 삼각형 틀로 찍어낸 듯한 비주얼, 하지만 붉은 드레스가 몇 겹의 페티코트와 몇 센티미터 높이의 굽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레이스를 어느 정도 사용해야 풍성함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더욱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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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옆에는 그녀보다 한 뼘 정도 큰 남자가 흰 셔츠에 검은 슈트를 입고 있어서 반지르르 펭귄 한 마리가 연상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뒤뚱뒤뚱 걸었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볼록한 배가 블랙과 화이트를 만나면 어떤 동물과 가장 유사한가 고민했을 때 빠르게 떠오르는 대상이 펭귄이라는 의미에서 별 뜻 없이 던진 표현에 불과하다. 모르는 남자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날 다그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라고 질문해보지만 ‘설마'를 피할 방법은 조심해서 나쁠 것 없는, ‘혹시’에 근거를 둔 태도라고생각되었다. 이어서 혹시 내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 후회가 들기 시작하자 펭귄의 귀염성보다 사자의 남성미를 중요시하는 남자들에게 실례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친김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에게도 남자에게 그랬듯이 비슷한 과정을 적용해 닮은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홍학이라 불리는 플라밍고. 먹이에 들어있는 색소 성분 때문에 성체가 되면서 몸이 붉게 변하는 플라밍고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에게 식성을 물을 필요도 없이 제격이었다. 사람의 인연에는 수많은 이유가 따르지만 펭귄과 플라밍고는그렇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남자는 허리를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곧이어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오른쪽 팔을 이마 앞으로 천천히 뻗으며 입을 모으자 버튼을 누르면 비눗방울이 슈르르르 나오는 장난감처럼 그녀의 동그란 입에서 노래가 방울방울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방울은 꽤 길었고 어떤 것은 슈르르 나오자마자 터져버렸다. 펭귄과 비슷한 날개를 가진 남자도 왼쪽 팔을 여자보다 높이 앞으로 뻗으며 먼저 날아간 여자의 목소리 뒤에 더 큰 노래를 방울방울 쏟아냈다. 먼저 떠난 소리가 공중에서 사라질 때 뒤따라온 소리가 나머지 비행을 이어갔기 때문에 그곳의 노래는 끊어지지 않고 한동안 오래 흘러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귀에 익숙한 노래지만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검색을 하면서까지 제목을 알아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기에 익숙한 노래가 노래로서 평범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테라스 아래로 붉은 드레스 여자보다 입을 크게 벌린 사람들이 이마를 약간 들고 고개를 흔들거나 손뼉을 치고 있다. 아이의 걸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목을 꼭 잡은 남자는 걸으면서도 테라스를 힐끔 올려다본다. 앞과 위를 봐야 하는 남자는 결국 위를 포기하는 게 자신의 의무이자 권리인 듯 앞을 선택하고부터 목을 테라스 쪽으로 길게 빼는 습관이 생겼다. 짐작하건대 테라스로 향한 귀와, 걸음을 살피는 두 눈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두 공간의 사연을 기록했을 것이다. 남자 귀에 도달한 남녀의 노래가 어떤 소음에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다가 아이의 발목까지 이어져 동그란 발자국으로 찍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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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탄사가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만나면 풍선 터지듯 환호성을 지른다는 표현은 내가 처음이 아닐 것이다. 나는 반대편 2층에 앉아 창 너머로 테라스와 그 아래를 번갈아 보며 순간의 감탄사를 고르는 중이다. 아니 그게 아니지, 감탄은 선택이 아니라 느낌이라는 걸 잠시 잊을 정도로 내가 감탄한 모양이다. 이렇게 정리하니 어떤 훼방꾼이 와도 화내지 않을 만큼 가벼워졌다. 바깥을 응시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의 샹들리에 조명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테라스와 그 아래로 겹친 것처럼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니 내가 있는 곳과 테라스 그리고 그 아래, 세 공간이 어느새 하나가 되어 노란 조명 빛에 물들었다. 공간이란 무엇일까. 지긋이 미간을 찌푸리기만 해도 왜곡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물감 위에 물을 떨어뜨릴 때처럼 테두리를 희미하게 침범하는 것인가. 거리감이란 사람들이 측정한 페르소나일 뿐 실눈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도 멀다는 느낌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않게 플라밍고라는 부캐도 얻었고 게다가 샹들리에 조명까지 켜졌으니 당연히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참을 수 없었겠지. 아까부터 내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게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나 보다. 이것으로 충분한데 남자는 거기에 한술 더 떠 두 팔을 번쩍 들고 당신이 원하시면 한 곡 더. 그때 유리창에 그려진 노란 샹들리에 빛이 내 심장과 같은 속도로 앙코르, 하며 소리쳤고 펭귄을 닮은 남자의 날개가 여러 번 퍼덕거렸다. 미리 준비했겠지만 준비한 티를 감추기 위해 두 개의 동그란 입에서 쏟아진 노래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냉정하게 헤어졌다. 테라스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스치는 일이 예의라 생각하며 넓은 길을 마다하고 가장자리로 오갔다. 사람들의 다리는 중력이 시키는 대로 그러나 눈빛만은 그것과 반대로 이중생활을 하는 순간이다.
어떤 일에 공을 들이던 사람이 갑자기 그 일에서 손을 뗄 정도로 그의 시선을 앗아가는 노래란 무엇인가. 침잠을 파괴해서라도 눈길을 끌어야 하는 그들의 연출은 무엇인가. 그들의 노래와 연출은 무엇인가,라고 묻기 전에 그들의 존재는 무엇인가. 플라밍고는 무엇이고 펭귄과는 어떤 웃음이 조작된 걸까. 이런 질문의 무게가 내 안의 버튼을 누르자 크고 작은 의문이 방울방울 쏟아졌다. 하나가 톡 터지면 두세 개가 빈자리를 채웠지만 비눗방울의 본질이 날아가는 일보다 존재를 지우는 데 있다는 듯이 의문만 증폭되다가 붕 뜨는 느낌만 남았다. 붉은 드레스는 지퍼가 뒤에 있을까. 길이는 얼마나 될까. 누가 지퍼를 내려 줄까. 입고 벗을 때 비밀이 누설되면 기분이 좋을까. 붉은 태양을 닮았다,라고 쓰면 너무 지루한 문장일까. 단추는 셔츠의 얼룩을 가릴 수 있을까. 단추가 얼룩이 될 수는 없을까. 주머니는 왼쪽, 혹시 없는 건 아닐까. 내 안의 혼잣말이 내가 한눈을 팔았던 시간과 연관성이 있을까. 슈르르르 붕 뜬 시선이 노오란 샹들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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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은 사람들이 측정한 농담일 뿐 조금만 신경 써서 재보면 어디에도 멀다는 느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몸이 기울어진 노인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멈춰 선 자리에서 테라스를 향해 허허 그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속에서 그 말을 만들 때 필요한 입 모양을 잃어버리지 않아서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잊어버리지'가 아니라 '잃어버리지'라는 것이다. 간절함을 몸소 실천한 결과, 중요한 것은 플라밍고도 펭귄도 아니고 붉은 드레스가 감추고 있는 꽤 굽이 높은 하이힐도 아니다. 곧 죽을 사람이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한 희미한 관심일 것이다. 그는 기울어진 몸을 벤치에 기댄 후부터 더욱 진지해졌다. 지팡이는 사선을 유지하면서 두 팔을 지탱할 수 있었고, 입술은 붉은 드레스보다 자잘한 주름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떤 감탄사를 사용해야 저런 주름이 만들어질까. 무슨 노래를 불러야 깊게 파인 주름을 가질 수 있을까. 노인의 옷깃이 힘을 뺀 채 잠이 들자 건너편 마이크도 스위치가 꺼졌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검은 슈트의 남자가 왼손과 오른손을 잡고 높이 들어 인사했다. 곧이어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것처럼 서로의 짐을 챙기고 여태 터지지 않은 노래 몇 방울을 옷깃에 매단 채 사람들 속으로 슈르르 사라졌다. 플라밍고와 펭귄이 그곳에서 뭘 했는지 방금 도착한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안도감이 나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단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각조각 떠 있는 회색 구름이 때마침 점을 치기에 적당한 놀이였다. 어릴 때 보던 거북이, 비행기구름은 아니더라도 유심히 바라보면 가능한 일들이다. 머리카락도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지워진 시간. 놀이가 긴 싸움이 되겠구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구름을 재촉하진 않았다. 그때 작은 구름 하나가 서서히 퍼지더니 그대로 멈췄다.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니가 바로 그릇이 아니겠니,라고 추궁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떠 이미지를 만나도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손잡이도 없고 모양도 어그러졌지만 '그릇'에서 출발하면 '램프'도 고집할 수 있다. 바로 요술램프처럼 말이다. 이렇게 붕어빵 찍어내듯 모양을 그럴싸하게 강요하고 있었는데 잠시, 아주 잠시 다녀온 사이에 하늘이 텅 비었다. 소리 하나를 따라 건너편 테라스에 다녀온 시간이 고작 십 분을 넘지 않았는데 플라밍고와 펭귄에게 빠져 있는 동안 요술램프로 둔갑할 그릇의 형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행운을 강제할 점치는 놀이가 자동 삭제되었다.
아, 까끌까끌해, 눈에서 돌이 굴러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둠이 빛을 파낸다. 그리고 시작된 다그침, 너무 사색적이거나 주관적인 여행은 비록 그것이 건너편 정도의 거리라도 용서할 수 없다. 너무 작위적인 여행가. 욕심의 세밀화를 기어코 그려내다니...
그래서 다-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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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후, 바람이 불어온다. 이윽고 눈동자에 하얀빛이, 푸르름의 둘레가, 테이블 위 냅킨 모서리가 들어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들어 창에 비친 샹들리에 불빛을 밀고 건너편을 바라본다. 희붐한 빛이 나를 바라보고보고 있다. 그 빛 사이로 테라스끝이 유난히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