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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Jun 01. 2022

혼잣말

누구나 비가 내리면




운동화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처음부터 차갑지는 않았다. 소문의 진상, 고집 센 '여자사람동물'을 길들이기라도 하듯 조용히 스며들었다. 침묵으로 영역을 넓히더니 발등을 점령하고 나서야 체온을 앗아갔다. 영원히 가질 수도 없으면서... 양말에서 뽀송뽀송함을 찾을 수 없을 즈음 지금 비가 많이 오는구나, 생각했다. 곧이어 비가 '온다'는 것보다 '내린다'는 표현이 마음에도 들고 좀 더 과학적인 것 같아서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 비가 많이 내리는구나, 하고 정정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으로 박하사탕을 깨문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햐아, 하고 불었다.



Photo by Kevin Erdvig / Unsplash



나는 우산이 밀어낸 비의 양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맨홀 구멍으로 떨어진 비의 양을 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떨어지는 일은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순간보다 느린 나는 지나간 순간을 자주 후회했다. 무수한 순간들이 사라지는 동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순간들은 등 뒤에서 기다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가 돌아간 만큼 뒤로 물러났다. 잡힐 정도의 거리가 제일 멀다는 것을 이런 느낌을 여러 번 감지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콘크리트가 지나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먼저 내린 비가 다녀간 길을 걷는다. 흙들이 노래하는 길이다. 걸을 때 운동화 끝이 우산 테두리를 벗어나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하나둘 떨어지는 물방울이 셋넷을 새기도 전에 일곱에서 스물넷이 되고 운동화는 비에 빠진 흙탕물을 차박차박 때린다. 젖은 운동화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운동화가 그것들을 튕겨내는 것인지 중요했던 이 모든 순간들과 잡았던 손을 놓치는 바람에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순간 이상한 고집 하나가 올라온다.


비는 그치기 위해서 내린다. 마냥 내리기 위해서 내리는 게 아니다. 아무리 커피를 좋아한다고, 마실 때마다 가득 채워지는 커피를 희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는 말도 마냥 마시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가 바닥나기를 더 선호한다'는 말로 정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 말고도 고민이 많아서 이 정도쯤은 괄호 속에서 대충 처리할 줄 안다. 나, 고집 센 여자사람동물은 카페에 앉아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언제 비가 그치려나, 물었던 경험이 많다. 비와 커피를 무척 좋아하면서 집요하게 커피잔을 기울이며 그것들의 사라짐을 위하여 추궁하곤 했다.

 


Photo by reza shayestehpour / Unsplash



어떤 것들은 깊이 파고든다. 관여하는 정도가 정도를 넘어선 정도. '스미다'에서 '젖는다'로, 정도를 넘어선 관여. 비가 내릴 때 그렇다. 스카프나 필통이 젖지는 않았으나 마음이 스미다에서 젖는다로 흠뻑 긴장되는 분위기. 동의하지 않았어도 이때가 비의 관여를 수용해야 할 때. 자랑스러운 지식에 금이 가도록 허락한 시간. 어떤 것이 깊이 파고든 만큼 어떤 것은 뒤로 물러났을 텐데 어디에도 그 흔적은 목격되지 않아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는 순간이다.


곧 운동화는 바짝 마를 테고, 비가 파낸 구멍을 자근자근 메우며 나는 흙길을 지나 집으로 갈 것이다. 발자국 뒤로 하나둘 떨어지는 순간들을 뒤돌아보지 않으며 먼 하늘과 눈을 마주칠 것이다. 너무 눈부시다면 순간의 실명을 즐기며, 이미 지나간 비의 양을 잴 수 없다는 후회를 위해 괄호 하나를 비울 것이다. 또 비가 내리면, 운 좋게 운동화를 신었다면, 그때는 박하사탕을 입안에서 오래 굴리고 싶다.




*타이틀 이미지

- Photo by David Marcu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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