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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Mar 03. 2022

브런치는 밥이 될 수 있을까

나만 배고픈가



바다가 보고 싶었다. 까마득한 봄을 기다리던 어느 날, 봄이 먼저 다녀갔다는 곳의 소식을 듣고 막 차에 오르던 중이었다. 그때 알림이 울렸고 나는 핸들에서 손을 뗐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축하한다는 메일이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 신청했는데 이렇게 답이 빨리 오다니 기뻤다. 그날 바다는 필요 이상으로 파랗게 물들었고, 사람들의 표정이 파도를 따라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온종일 브런치에 대한 고민으로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며칠마다 올려야 할까. 밋밋한 글이 되지 않으려면 사진은 어떤 게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맴 돌았다.


Photo by Ameen Fahmy / Unsplash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브런치라는 공간의 실내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가. 끈끈한 열정은? 관심은? 분명 변화가 있었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2층에서 5층으로의 상승이 아니라 짜장면에서 짬뽕으로의 전환이다. 후회나 칭찬의 필요성보다 나에겐 취향이 중요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에서 나는 '서울'보다 '어떻게'에 관심이 갔다.


가장 큰 변화는 힘 빼기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잡다한 진동 스위치를 OFF 한 결과 나의 브런치는 담백할 수 있었다. 구독자를 늘리고 '좋아요' 벽지를 두르지 않고도 소박한 밥상을 연출하는 데 즐거움이 따랐다. 아직도 혼밥 수준을 면치 못하지만 가끔 눈이 맑은 분들이 조용한 발자국을 남겨주신다. 대형음식점이 아닌 한적한 시골 밥집을 찾아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엔 숫자에 민감했다. 자본주의 공식이 브런치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조금은 씁쓸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구독자 천 명 이상을 보유한 작가들을 쫓다가는 즐거움을 반납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이 짐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들의 글을 여러 번 읽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당연했지만, 어떤 글은 구독자마저 의문으로 남았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현상들이 많기 때문에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글은 페르소나가 없다. 숨긴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페르소나가 필요 없다. 덧칠하면 오히려 더 두드러진다. 글의 결은 사람의 지문만큼 다양하며 개별성을 띠기 때문에 구독자 수보다 글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새로 시작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등 돌린 작가들도 많이 봐왔다. 브런치 안에서 체감하는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다. 그렇다면 이 공간의 역할도 이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공간은 달콤한가? 이름에 걸맞게 '브런치'라는 공간은 확실히 달달하다. 네이버 블로그보다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질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달달함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다. 목을 조이며 넘어가는 답답함을 달콤한 맛으로 위로받기에는 아직도 모자라다. 잦은 프로젝트와 공모전은 작가들의 어깨를 토닥이는 일보다 등을 떠미는 일에 앞장서는 듯하다. 처음에는 너 나할 것 없이 참가하는 눈치였지만 각자의 페이스로 되돌아가는 작가들이 많았다. 그들이 왜 발길을 돌렸을까. 이것이 브런치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Photo by Brooke / Unsplash


블랙퍼스트(breakfast)와 런치(lunch)의 합성어로 영국에서 시작된 브런치는 식사대용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한다. 이것이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식사가 아닌 상류층들이 즐겨먹는 비싼 음식으로 변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브런치도 미국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20년의 역사를 지내면서 지금은 일반인들이 자주 찾는 음식이 되었다. 간단함에서 특별한 한 끼로 식사의 급이 달라졌다. 바로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심리를 브런치라는 '밥'이 채워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글 공간 브런치도 밥이 되어야 한다. 고상한 맛과 향으로 가득한 상류층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 피곤을 다독이는 달달함은 유지하되, 깊이를 추구할 수 있도록 기다림으로 관철되어야 한다. 아침의 긴장과 점심의 따분함을 지울 수 있도록 한 끼의 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한 밥은 한 사람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의 글이 그만의 글이 아니듯이... 너무 달콤한 사탕은 이를 썩게 만든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곧 녹아버릴 사탕보다 말없이 응원하는 한 끼의 밥이 좋다.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하루가 든든한 밥 말이다. 착한 글쟁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브런치 안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오래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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