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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Feb 25. 2022

봄이 왔습니다

무척 기다렸어요


웬만하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디지털 다이어트를 하려고 한다.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가는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 핸드폰이 우리의 심심함을 우울증에서 멀리 밀어내는 장점도 있지만 여하튼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이니, 그 둘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가장 귀찮게 하는 것이 스팸문자다. 어느 정도 수신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구인의 수만큼 모르는 문자가 많이 온다.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요즘같이 안전안내문자가 정보 일 순위로 인식되는 시기에는 오는 대로 확인해야 손해를 줄일 수 있다.



ⓒ마혜경

  


얼마 전에는 안전안내문자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52세 김○○ 실종. 목격하신 분이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바로 연락 바랍니다' 이 문자가 눈에 띈 이유는 며칠 전에도 비슷한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그날도 '50대 ○○○'을 찾는다는 사연이었다. 내가 의아하게 여긴 이유는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애타게 찾는 나머지 사람들의 고통이 바이러스의 위험보다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인연도 없는 나에게까지 아무개들의 실종은 걱정으로 다가왔다. 갈수록 메마른 세상이라지만 이런 문구를 보면 울컥 올라오는 게 있다. 어디 갔을까. 지금쯤 돌아왔을까. 찾겠다는 의지는 보이면서 왜 그들이 도착했다는 안심문자는 안 오는 걸까. 별의별 고민을 다 하게 된다.


우리는 평소 이별을 예측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눈에서 멀어져야 비로소 빈자리를 실감한다. 친밀감 정도에 따라 공유한 스토리를 '되돌려 감기' 하면서 정서적으로 폐허가 된 기억을 빠른 시일 안에 치유하고자 노력한다. 기억을 공유하던 사람이 사라졌다면 마음의 안전장치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문자는 '안전안내문자'의 목적성에 가장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마혜경

  

몇몇 실종을 떠올리며 걸었다. 좋아하는 흙길이다. 한적하고 볕이 잘 들어서 요즘 자주 찾는 곳이다. 봄을 앞둔 나무들이 분주하게 흔들린다. 바스락 갈색 나뭇잎을 한창 밀어내고 있다. 가지 하나에 메모가 달렸다. 내용은 '봄이를 찾습니다' 이번엔 고양이 실종. 몇 년째 그 길의 터줏대감 길냥이가 요새 안 보인다는 사연이다. 메모 아래는 골프장 쪽에서 봤다는 포스트잇이 댓글처럼 달렸고 그 아래로 '고맙습니다'라는 답글이 달렸다. 마치 카톡창을 보는듯했지만 마법에 걸린 왕국처럼 메모 안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가끔 목격한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에게 사료를 먹이던 그분의 동그랗게 말린 등을... 생수병 뚜껑을 돌리며 나비야, 하고 부르던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진짜 이름은 봄이었나보다. 나뭇가지에 달린 메모 아래로 정성 가득한 고양이 살림살이가 보인다. 질 좋은 사료와 그릇 그리고 맑은 물, 고양이는 사라지고 집사(?)의 정성만 고스란히 남아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갔을까. 지금쯤 돌아왔을까.






잠시 핸드폰을 끄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움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52세 김○○는 모처럼 눈부신 햇살을 쫓아 낯선 곳을 걷고 있다. 심심한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일이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아니 잠시 잊기로 한다. 그는 일상의 바깥에서 웃는다. 먼지 같은 두통이 사라진다. 다행인 것은 혼자가 외롭지 않다는 걸 혼자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배운다. 52세 김○○가 잠시 이탈한 길에서 지루한 어제와 볼품없는 사연들을 지우고 있을 때, 착한 길냥이가 야옹, 하면서 잠깐의 외출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흩어지는 낙엽들을 쫓으라고 살랑살랑 응원했던 봄이의 도도한 꼬리에 어떠한 죄명도 허락되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짖궃은 장난이 우리의 조급함을 조금 들썩이게 만들고 약간의 참을성을 키우는 것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부디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도록 잠시 악의 눈이 실명하길. 실종자도 돌아오고 봄이도 돌아오면 우리의 기다림이 싹트는 시간, 이때부터가 진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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