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혜경 Sep 17. 2023

못다 한

여태 미련으로 남은

  정류장에서


  바닷가의 일몰은 아름답다. 때맞춰 으로 나왔다. 정류장엔 사람도 지나가는 차도 없어서 한산하다. 오늘의 할 일을 다한 태양이 멀리 바다 위에서 부서진다. 파도와 물결을 이글거림으로 잠재우는 멋진 태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다는 토마토 스튜가 담긴 그릇의 형상이다.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한 근사한 저녁처럼. 시선을 옮긴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벼의 머리를 일제히 쓰다듬는다. 바람의 칭찬이 고마운 벼들은 제각각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이른 저녁. 예절은 낮의 길이를 재지 않고 그때그때 잘 도착한다.


  정류장 앞에서 서성인다. 애초에 버스를 탈 마음이 없으니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정류장에 서서 멀리, 가까이 둘러볼 뿐이다. 풍경이라고 늘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무척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가 되면 바다에 닿는다. 여름의 끝자락에 가을이 묻어있다. 벌레들이 어제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곧 어둠이 다가오겠지. 이곳은 도심에서 아주 먼 섬이라 네온사인 같은 건 키우지 않으니까.





ⓒ마혜경 / 진도 죽림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고요 위로 물음표 하나가 떨어졌다. 누군가의 속마음 하나가 훅 밀고 들어오는 데까지 시간은 얼만 안 걸렸다. 전봇대는 고압의 끈을 든 채 몸뚱이에 몇 장의 스티커를 덕지덕지 이고 있다. 콜택시 전화번호가 있는가 하면, 각종 고물에 대한 문구도 있었다. 집요하게 달라붙은 전단지들이 전봇대의 상체를 살짝 기울어지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것에 대한 추궁은 생략하겠다. 맨 위에 가장 면적을 차지한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못 받은

  


  소유란 나에게 없었던 그 무엇을 안으로 들이면서 누릴 수 있는 고상한 욕심이다. 점원이 아침마다 정성껏 닦은 구두를 숍에서 내게로 들이면 이제부터 그 구두는 나의 소유물이 된다. 다양한 책으로 가득한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골라 집으로 모셔오면 그때부터 그 책은 내 것이 된다. 마땅히 지불해야 할 것들을 말끔히 치르고 나면 정당한 나의 몫이 된다. 마냥 욕심을 부려도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나만의 것이다.


  값을 치르는 행위.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이동을 명확히 담판 짓는 과정. 어떤 새로운 것과 관계를 맺을 때 인간으로서 응당해야 할 의무다. 그러므로 소유는 작은 경제적 개념을 실천한 결과다. 물론 금전이 오가지 않아도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소부터 올라오는데 바로 선물 또는 사은품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것은 대체로 상대의 미소까지 얹어져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돈이 굳어서 어쩔 줄 모르는 기쁨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소유주가 된다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이다.


  어떤 일은 관계에 힘을 가격해 금이 가게 한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사물이나 그 외의 것들이 그동안의 믿음을 상쇄한다. 이런 일은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주려는 자의 마음이 도착하지 않아서 일어난다. 받으려는 마음과 주려는 마음이 모두 주관적이라면 감정에 대한 부분이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두 개의 마음이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치러야 할 약속이라면 문제가 된다. 중심에 마음의 부채감과 함께 진짜 부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 받은' 사람만 억울해진다.

  

  받을 게 있어도 주려는 자발성 내지는 미안함이 상대에게 없다면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이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쪽에선 받을 걸 못 받아서 마음을 졸이게 되고, 상대는 쌓인 빚만큼 낯이 무거워진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사소한 물질 하나로 마음에 금이 가고 상처가 된다.




  다시 읽는다. 옆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둥근 전봇대 몸통을 따라 아마 누구나 상상 가능한 그 단어가 나오겠지? 고개를 끝까지 돌리지 않는다. 애써 외면한다. 세 개의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내 눈이 포획한 문장은 딱 여기까지. '못 받은'. 조심하지 않으면 그 단어가 침범한다. 한 글자로도 칼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의미. 아직 확인하지 않았으니 그 무엇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못 받은 책' 또는 '못 받은 사랑'. 휴~ 어떤 좋은 것을 붙여도 '못 받은'에 눌려 기가 죽는다.


  '못 받은' 그 무엇을 직업 삼아 대신 받아주는 사람들. 받아야 할 사람과 줘야 할 사람 사이에 있는 불편한 감정만 쏙 빼면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다. 단순히 B에게서 그 무엇을 받아(아니면 빼앗아) A에게로 옮기는 그들의 작업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열 속이다. 이런 일은 사라졌으면 한다. 마음이 업무처럼 처리된다는 게 썩 내키지 않다. 때 되면 물러나는 태양처럼 뒷모습도 아름다울 수 없을까. 못 받은 것보다 '못다 한' 그 무엇이 넘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전단지 문구를 마음 속으로 첨삭한 후 떨어지는 태양을 등지고 돌아왔다. 미련 하나가 따라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억지스러운 말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