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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1. 2022

기저질환자가 확진자와 생활하는 법

나는 기저질환자다. 뭘 그런 걸 소문내냐 싶겠지만. 사실인 걸 어찌하나. 죽을병 걸린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적어도 월 2회 종합병원을 들러야 하며 수시로 피를 뽑고 검사를 해야 한다. 백신보다는 적어도 열 배는 아픈 주사를 2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 기저질환자가 코로나 세상에서 살아나가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나는 예전에는 집합 금지장소로 분류되었던 곳이 주요 일터였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이러한 성격과 직업이 이 시대에는 참으로 쉽지 않더라. 뭐, 그래도 이제껏 잘 버티고 있다.


그런 내게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이 확진되는 일이 생겼다. 물론 내가 밖으로 나가서 생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처음 엄마가 확진되었을 때에는 엄마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나갈 수가 없었다. 뭐 별로 도움 안 되는 딸이겠지만, 하루 두 번 혈압과 체온, 산소포화도와 맥박을 체크해야 했고, 엄마와 아빠의 식사를 차려드려야 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방역을 지켜야 했다. 2주 후 아빠가 확진되었을 때에는 엄마 때 집에 있었는데, 아빠는 그만큼 아프지 않으시다고 홀랑 나가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 아빠가 서운하실 것이 뻔했기에. 엄마 때와 달리 출근을 할 수 있어서 최대한 도와드리고는 엄마에게 아빠를 맡겨(?) 두고는 출근을 했다.


이 글은 내가 지킨 확진자와 같이 사는 나만의 방역 지침을 글로 남긴 것이다.


첫째, 현관문 밖에서 쓰던 마스크는 내 방문을 기점으로 착용한다.

나는 내 방문을 나가면서 무조건 마스크를 썼다. 방문에는 마스크를 달랑달랑 달아놓았고, 방 밖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잘 벗지 않았다. 마스크의 오염이 걱정되어 이틀에 한 번은 집에서만 쓰던 마스크라도 꼭 교체했다.  매일 바꾸신다는 분이 계시다면,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나는 귀찮아서 그렇게는 잘 안되더라. 또한 내 방이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적어도 이 방만은 나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둘째, 식사는 셋이 따로따로, 화장실은 확진자와 비 확진자로 나누어 사용한다.

우리 집은 화장실은 2개지만,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은 없다. 그냥 같은 크기의 화장실 2개가 있다. 화장실은 확진자와 비 확진자로 나누어서 사용하고, 식사는 혹시 모를 추가 확진에 대비하여 셋이 따로 했다. 나름 우리 가족은 저녁시간 도란도란 수다 떨면서 식사하는 걸 즐기는 가족인데, 정말 이 시기만큼은 대면 대면했다.


셋째, 공동공간은 함께 사용 최소화하고, 사용 후에는 소독 스프레이와 소독 티슈를 사용한다.

우리 가족 셋은 TV 보는 걸 참 좋아한다. 아빠는 아침에 뉴스를 보셔야 하며, 엄마는 저녁에 드라마를 보셔야 한다. 나는 방에서 넷플이나 왓챠를 보면 된다. 같이 하면 뭐 더 재밌겠지만, 되도록 우리는 따로따로 생활했다. 아침에 아빠가 뉴스 보는 시간에는 나는 부엌일을 하거나 출근했고, 엄마가 드라마 보는 시간에는 아빠와 나는 방에 있었다. 혹시라도 비 확진자 둘이 모여서 TV를 보거나 수다를 떨게 되어도 방 밖의 모든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넷째, 수시로 환기시키고, 설거지와 빨래는 그때그때 한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열녀 집안이다. 추위따윈 무섭지 않아 수시로 환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설거지와 빨래는 확진자와 비 확진자를 분리해서 해야 한다. 참고로 확진자를 돌봐야 했던 언니네 집안은 식기도 별도로 사용하고 방 밖으로도 못 나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비눗물이 닿으면 바이러스는 죽는다는 질병관리 전문가의 말을 믿기로 하고, 대신 더 깨끗하게 씻고 더 많이 헹구는 데에 집중했다.


나는 확진자 2명과 2주의 시간을 무사히 보내면서, 4번의 PCR검사와 6번의 자가 키트를 '음성'으로 지켜냈다. 물론 나 자신을 나름 자랑스러워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내가 며칠 안으로 확진될 경우. 뭐 그럼 그냥 위의 방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거이므로 그것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뭐래니)


둘째, 내가 슈퍼면역자여서 코로나에 절대 걸리지 않는 인물일 경우. 절대 그럴 거 같진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어서 내 피를 뽑아가서 백신을 만들도록 하여라!


이미 이 시기는 코로나 시기이다. 확진되었다고 슬퍼할 필요도 아직 확진되지 않았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냥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마스크 벗고, 더 이상 화장 안 한 얼굴이 코로나보다 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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