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_ ep06
“아이고. 게을러 터져가지고.”
다소 직설적인 화법을 자랑하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정확히 어떤 시점,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의 게으름이 엄마의 심기를 꽤나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의 게으름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엄마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도 주구장창 지각을 일삼는 나에게 엄청난 불편함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말했던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게으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턴으로 일하던 초등학교가 여름방학을 맞이했고, 한 달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궁리하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토마토 축제에 참여하기 위한 일종의 핑계로 스페인 북부지방 Oviedo에서 열리는 워크 캠프에 참가하기로 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3주간 봉사활동을 하는 캠프였는데, 뭔가 특별한 경험이 될 것만 같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오전에는 함께 일손 돕기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지역 체험 활동을 했다. 저녁에는 피에스타의 국가답게 매일같이 파티가 열렸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콜라를 마시듯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피에스타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처럼 마셔라, 부어라. 밤새워 노는 것이 아닌 적당한 시간까지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다. 여담이지만 매일 계속 되는 피에스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뻣뻣하게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나와 한국인 언니 둘 뿐인 듯 했다. 다들 어디 댄스 학원 출신인 양 장르 불문하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댄스 배틀이라도 하 듯 한명씩 춤을 출 때도 있었다. 춤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두 한국인에게는 봉사활동 시간보다도 더 힘든 시간이었다.
“다종. 너 괜찮아? 어디 불편해?”
파티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내 몸 동작에 놀란 스페인 친구가 물었다.
‘나도 신난다고. 파티가 즐겁다고.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가 좋다고. 그런데 춤추는 법을 몰라. 창피하게도 춤추는 법을 모른다고! 사실 나 댄스 배틀 시킬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거라고!! 이 댄스장인 녀석아!!’
“아. 조금 피곤해서 그래.”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지만 피곤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매일 밤 억지 피곤을 강요하며 댄스 배틀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 9시에 숙소 정문에서 모여서 이동하겠습니다.”
캠프의 일정은 아침 9시 우리가 머물고 있던 숙소인 학교의 정문에서 시작되었다.
‘어글리 코리안이 되어서는 안돼.’
캠프 첫날, 트레이드마크인 게으름을 철저히 숨기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모임 장소에는 나와 한국인 언니, 일본인 2명뿐 이었다. 그리고 10분, 20분 시간이 지나자 유러피안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날이라 다들 좀 피곤했나 보네.’
하지만 그 피곤함은 날이 거듭될수록 점점 켜졌던 모양이다. 분명 9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9시 30분은 되어야 스멀스멀 등장하는 스페인 친구들.
“다종. 너 early bird 구나! 어제 늦게까지 놀았잖아. 피곤하지 않아?”
‘12시쯤 다들 자놓고 늦게까지 놀았다고? 한국에서는 그 정도는 늦은 축에도 못 껴. 얌마.’라고 핀잔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그보다도 9시 정각에 간당간당해서 나타난 나에게 early bird라는 황송한 칭호를 내린 스페인 친구 Louis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다니. 내일은 좀 더 늦게 나와도 되겠는걸?’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9시 정각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9시가 집결 시간이었지만 9시 30분쯤 모여(일찍 모이는 경우다. 10시는 되어야 멤버들이 완전체가 되곤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까지 가면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는다. 그리고 1시간 30분 정도 여유롭게 봉사활동을 하면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스페인 특유의 씨에스타가 시작되었다. 오후 3시까지 낮잠을 자거나 자유 시간을 갖고 오후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고작 오전에 1시간 30분만 일하는 것이 봉사활동이라고? 이게 뭐야? 씨에스타는 또 뭐고? 아니 오후 다섯 시면 가게 문을 닫으면서 태평하게 낮잠이라니!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에게 무릇 봉사활동이라 함은 하루 종일 빡세게 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1시간 30분만 일한다니! 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이래도 되나하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 후에 낮잠까지 잔다? 이게 봉사활동 이라고? 요즘 말로 꿀이다 꿀. 물론, 낮잠을 자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유시간을 갖는 것은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만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역의 모든 가게들도 씨에스타에 동참했다. 점심식사 후 당 보충이 절실히 필요한 나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 모든 것들은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리 초콜릿을 사두면 되는 일이었다.
9시인 집합시간에 9시 10분에 나타나고, 1시간 30분의 봉사활동 시간 동안 할당된 양을 꼭 채워야 직성이 풀리고, 점심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초콜릿을 사러 분주히 움직이는 한국의 게으른 자는 의도치 않게 부지런한 자가 되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할 때도 스페인 친구들을 비롯한 유러피안들은 특유의 여유로움을 발휘하곤 했다. 때문에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이 더욱 빛났을 수 밖에. 하루는 함께 캠프에 참가한 한국인 언니가 보이지 않아 찾으러 다녔는데, 절벽 쪽 돌에 붙어있던 잡초를 뽑겠다며 절벽으로 손을 뻗고 위험천만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게 살신성인이 아니면 무엇이 살신성인이겠는가!
‘질량 보존의 법칙.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누군가가 게으름을 피우면 그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부지런한 누군가에게 추가된다.’
스페인 친구들의 게으름이 일상으로 녹아날 때쯤, 점심에 문을 닫는 상점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때쯤, 문득 무엇이든지 완벽해야 하고, 게으름은 부덕의 소치이며 부지런함만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삶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근면·성실함을 그토록 강조하고, 저녁 없는 삶을 살아왔는가. (정작 나는 그다지 부지런하게 살지도 않았지만.) 물론 근면, 성실한 삶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 덕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어쩌면 지금 세대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윗세대의 근면, 성실함의 산물일 지도 모를테니.
하지만,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지 않아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으른 자로 가득한 세상도 어떻게든 계속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게으름에 대해 인정하고 나만의 속도대로 살기 시작한 것은. 물론 그 게으름이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내 직장 동료 중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응? 너의 게으름 때문에 내 속은 이렇게 터지는데?”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래서 내 직장 동료들이 이 글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절대로.
“아이고. 게을러 터져가지고.”
저 문장 뒤에는 자연스럽게 비난의 말이 덧붙는다. 가령 ‘커서 뭐가 되려고’ 같은. 긍정적인 말이 감히 따라 붙을 한 치의 틈조차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 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인 ‘게으름’. 게으름에 대한 재평가, 재정의가 시급해 보인다. 게으름의 미덕을 느껴보고 싶은가? 그럼 떠나라. 지금 당장 스페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