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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사진관 Dec 17. 2018

호주에서 실명의 위기에 처하다

일요일의 게으름 ep_15

“지금 당장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세요. 저는 어떠한 처방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실명의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어요.”     


호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건강이라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튼튼함을 자랑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이 한둘씩 늘어나더니 급기야 호주에서 눈 다래끼가 도졌다. 사실 여행 가기 두어 달 전에 눈 다래끼가 생겨 눈꺼풀을 뒤집어서 째고 제거하는 수술을 했는데 그 자리에 다래끼가 다시 차오른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여행지에서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한 눈 화장 때문이었으리.     


처음 며칠은 아주 작은 좁쌀이 만져지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뜨거운 수건으로 찜질을 하며 곧 사라지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여행이 계속될수록 좁쌀은 콩알만 하게 부풀어 올랐고, 급기야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렌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행지에서 안경을 낀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으니.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대로 현지의 한인 약국을 찾았다. 약사는 내 눈을 보자마자 놀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당장 큰 병원 진료를 볼 것을 권했다. 이대로라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였다. 갑자기 다래끼가 난 부위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지. 지금 큰 병원에 가면, 여행 일정이 틀어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함께 여행 온 친구에게 피해가 될 텐데. 하지만 아직 여행은 일주일이나 더 남아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다래끼 수술이 큰 수술은 아니지만, 너무 아픈 수술이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수술을 받고 싶지 않은 심정이 더 컸다. 어떻게든 일주일을 버틸 수만 있다면 버티고 싶었다. 하지만 한인 약국의 약사는 나에게 어떤 약도 처방해 줄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빈손으로 터벅터벅 숙소로 향하며 카카오톡 창을 다급히 뒤졌다. 얼마 전 한 안과에서 나에게 광고 카톡을 보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고로 난무한 채팅창에 다급하게 SOS를 요청했다. 퉁퉁 부어오른 내 눈을 찍은 사진과 함께. 다행히 한국과 호주는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았으므로 이내 답장이 왔다.     


“일주일 후에 한국에서 병원에 가셔도 되지만, 통증이 심하다면 현지 병원에 갈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휴. 그래! 안과 의사가 일주일 후에 병원에 가도 된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하지만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급한 대로 또 다른 약국을 찾았다. 호주인 약사는 내 눈을 보고는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며, 항생제 하나를 건넸다.     


“일단 이거 하루에 두 번 바르시고, 뜨거운 찜질을 해주세요.”     


눈은 퉁퉁 부어 쌍꺼풀이 여러 겹이 되었지만 약을 받아 드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실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나를 위협한 한인 약사가 밉기까지 했다.      


‘거봐. 심각한 것 아니잖아. 괜히 겁먹었네.’     


하지만 여전히 실명에 대한 좁쌀만큼의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두려움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학교의 보건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보건 선생님이 어떤 연유로 호주 땅에, 그리고 많고 많은 지역 중 멜버른에 와있는지는 물을 겨를도 없이 내 증상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저 실명할 수도 있나요?”

“저 일주일 후에 한국 가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큰 병원 가보라는데 어떻게 하죠?”

“약국에서 약사가 바르는 약을 줬는데 이건 안전한 거죠?”

“이대로 그냥 두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약 계속 바르시고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 터질 거예요. 한국 가자마자 병원 가면 될 것 같긴 한데...”      


다래끼가 터진다니. 터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쨌든 보건 선생님도 내가 원하는 답을 주셨다. 사실 호주에서 큰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므로, 나의 이 선택을 지지해줄 지원군이 필요했다. 보건 선생님의 지원으로 좁쌀만큼의 두려움의 절반은 줄어든 것 같았다. 그렇게 눈에 콩알만 한 다래끼를 달고 여행을 이어갔다. 이 다래끼는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국경을 넘는 호사를 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행이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 여느 때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며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노란 물이 주룩 흘렀다. 눈에 열매 맺혀있던 콩알이 탁하고 터진 것이다.      


“헉. 다래끼가 터졌어!”

“우와! 완전 축하해!”     

그렇게 다래끼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고, 함께 여행하던 친구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친구들까지도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다래끼의 장렬한 최후가 이리도 축하받을 일이었다니. 

산넘고 물건너 타지에서 스스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다래끼여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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