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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홈마 Feb 13. 2023

곧 공연이 시작됩니다

극장 속 반짝이는 작은 두 눈 속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나는 연기를 전공했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아주 오래 활동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를 '고급 관객'이라 부른다. 일선에서 뛰지는 않으나 아주 그 생리를 모르지만도 않은, 그 어떠한 위치에 있다. 학교를 다닐때엔 연극을 참 많이 봤다. 나는 몸이 둔하고 머리는 바빴다. 많이 배워야 많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날때마다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아동극은 아들을 통해서가 처음이었다. 아니, 잠깐.. 그러고보니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나는 아동극을 본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번. 한번은 내가 지금의 아들보다 두어살 많았을 때. 사실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사진이 있다. 머리엔 왕관을 쓰고 한쪽 손엔 요술봉을 들고 있는 어떤 공주님과의 사진. 긴장한 모습으로 입술을 앙 다문채 차렷자세를 하고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어린날의 내가 거기 있었다. 내용은 기억에 없다. 후에 사진을 봤을 때에도 '이런 날도 있었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두번은 청소년극에 가까운 극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인솔 아래 같은 모두가 대학로를 처음 갔었다. 거기서 연극을 봤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휴먼코메디]가 그것이다. 머리가 상태에서 연극이어서일까. 부분부분 기억에 남는 장면도 더러 있다. 그리고.. 즐거웠다. 연극이란 이런 것인가? 희뿌옇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아들에게 공연을 처음 보여주려고 마음먹었던 건 지난 해 연말 즈음이었다. 등원길에 항상 마주하던 몇개의 전봇대, 그리고 그곳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현수막이 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엄마 저거! 옥토넛이잖아!"


대장(흰곰), 콰지(안대 쓴 고양이), 페이소(펭귄)


주인공은 펭귄인 페이소를 제외하고는 포유류들이지만, 주로 바다생물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돕는 일을 한다. 아들은 (후에 서술을 길게 하겠으나..) 아가미 달린것을을 매우 사랑한다. 나와는 정 반대로 말이다. 하지만 모성애는 내 생각보다 강한 어떤 것이었고 이제 나는 고래가 포유동물인 것도, 상어 중에는 일곱개의 아가미를 가진 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아들이 흥미를 가지니 공연으로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거기서 나는 마주하게 것이다. 내가 모르던 아동극의 세계를.


우선 입구로 들어가면 야광봉을 판다. 아이돌을 응원할때 쓰는 그 응원봉이랑 비슷한 생김새이다. 지금껏 네번의 공연을 갔는데 네 번 다 예외는 없었다. 공연 중간중간 무대 위에 있을 나의 최애(?)를 응원할 때 쓰는 것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부모와 같이 앉아 있는 아이, 보다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며 아이들만 앉혀두고 공연 시작 전 나가는 엄마,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맡겨두고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하고 나오는 엄마.. 등등의 여러 형태의 관객이 있다.


그 중 우리의 옆자리에 앉은 관객은 앞서 서술한 것과는 또 달랐다. 아이들의 엄마는 다른 좌석에 멀찍이 떨어져 혼자 앉고 아이 둘은 붙여 앉혀두는 형태였다. 여자 아이 둘 이었는데 예닐곱살 되어보였다. 이 둘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눈부신 야광봉을 내 옆에서 흔들었다. 가끔씩 엄마는 이 둘을 놔두고 뭐하시려나 하고 한참 뒤를 쳐다보면 아이들보다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 집중할 거리란 게 핸드폰일 때도 있었고 공연일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니었다. 아이 둘과 떨어져 저렇게 멀리 가서 앉은 이유는 무얼까. 이 시간만이라도 육체적 육아 독립을 원했던 걸까? 아니, 사실은 아이들보다 옥토넛을 더 보고싶었던걸까? 여러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둠속에서 1초에 5번꼴로 켜졌다 꺼졌다 하는 그 화려한, 너무도 화려한, 야광봉에 눈이 어질어질 했다. "이모 눈이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조금만 꺼줄 수 있을까?" 부탁 해도 들어주질 않았다. 내 소근거림을 들은 아이는 엄마 쪽을 휙 쳐다봤다. 한참을 엄마와 눈맞춤을 시도하던 아이가 끝끝내 엄마와 시선을 주지 않자, 아차차! 야광봉을 더 세게 흔들었다. 나는 공연 내내 어지러운 눈과 메슥거리는 속을 참았어야 했다. 공연 내용을 떠나 이것이 나의 옥토넛 감상평이 되었다. 사실 아이가 뭘 알겠는가. 이걸 적당한 때에만 써야 한다고 알려줄 어른이 옆에 없는 것이 속상했고 애초에 이 물건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어른들이 야속했다.


두번째, 세번째 공연부터는 공연의 내용이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내 스스로가 마음을 비우게 되어서일까. 그리고 네번째 공연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자세한 안내까지 있었다. 공연장에서는 마스크를 꼭 써주세요. 야광봉은 공연중에는 삼가해주시고 커튼콜때 마음껏 써주세요. 곧 공연이 시작됩니다. 조명이 꺼져서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와 같은 말들.


아이들은,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데려오는 어른들은 무얼 위해 공연을 보러 오는걸까?나는 내 아들이 어떤 큰 교훈을 얻길 바라지 않는다. 행여 후일에 나처럼 '이런걸 내가 본 적이 있던가?'하며 머리를 갸웃하더라도, 혹은 '내용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이 걸 봤을때 난 많이 웃었어' 라할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그냥, 그날 양손에 맞잡은 엄마와 아빠의 손이 따뜻했다는 것, 극장 객석에 앉아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줄어들고 곧이어 어두워지더라도 그것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켜켜이 아들의 몸과 마음에 녹아들어 남길 바란다. 그것이 아들이 세상을 다 함께 살아낼때에 지혜와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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