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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Apr 18. 2019

사막에서 타인을 위한 소원을 비는 일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

걷다.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을 걷다.


 사막에 깜깜한 밤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불 앞에 동그랗게 모여 앉는다. 사막의 밤과 어울리는 음악과 타닥타닥 마른 장작 타는 소리는 협음을 낸다. 불 앞에서는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른 장작을 불 속으로 집어넣으면 큰 불이 되듯 우리의 이야기도 반경을 넓혀간다.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사람들이 불 앞에 모여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혼자 사막을 올라간다. 사막의 별에 집중하려면 사람과 빛으로부터 조금 멀어져야 한다. 고작 몇 걸음 올라왔을 뿐인데, 수많은 별이 쏟아질 듯 하늘을 밝힌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며 웃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광대무변한 사막에 덩그러니 누워있으면 세상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이 좋아 사막에 간다. 동 떨어져 있는 기분은 여행하고 있음을 극대화시켜주고 그런 까닭으로 사막과 섬을 사랑한다.


 노래를 다섯 곡쯤 들었을까, 그때 누가 “헬로!” 하며 내 쪽으로 걸어온다. 성민이었다. 귤과 비스킷 그리고 소주 한 팩을 들고 호기롭게 올라왔다.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을 보며 소주를 홀짝 뺏어 마셨다. 사막에서 마시는 소주가 이렇게 달다니! 성민이가 네팔에서부터 인도까지 한 달간 배낭에 품어온 소주가 맛이 없을 리 만무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났으며, 어디쯤 와있고,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별을 보니 이문세 노래가 생각난다는 성민이. 누워서 별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더니, 언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말하는 성민이. 성민이에게 질문하는 건 재밌다.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성민이의 대답으로부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곤 한다.

 
 누워서 별을 보다가 별똥별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검은 하늘 너머로 떨어졌다! 옵!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성민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다.

 “우리가 대화했던 것 중에 하나야.”

 “오 뭐야?”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시골마을 오르차로 가는 기차 안.

 “아그라에서 오르차 가는 기차에서 호영이 네가 했던 말이야. 순례길은 끝났지만 아직 네가 걸어갈 길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잖아. 순례길과 여행이 끝나 한국에 가서도 너만의 길을 걸어갈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더라. 그래서 난 이번 여행이 끝나더라도 여행이 지속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너는?”

 “음. 나도 내가 그런 소원을 빌 줄 몰랐는데, 우리 오빠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달라고 빌었어. 오빠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말끝이 흐려지고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살갗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질색팔색을 하던 오빠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퍽 실감이 났던 순간이었다. 교회나 성당을 갈 때마다 손을 모아 가족의 건강과 내가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를 빈다. 한 사람을 위한 소원을 빌었던 건 처음이었다. 그 후에도 별똥별이 셀 수 없이 떨어졌는데 그때마다 오빠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빌었다. 성민이도 동생의 행복을 빌었다. 칠흑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성민이는 동생을 생각하고, 난 오빠를 생각했다.


 누워서 별을 한참 쳐다보고 있는데 불빛이 비쳐 쳐다보니 누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인선이었다. 사막 베이스캠프에 누워있는데 우리의 목소리가 조금 들려서 찾아온 것이었다. 춥다고 하는 인선이를 안아주고 침낭 하나를 셋이 덮었다. 새벽 공기가 꽤 차가워져서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인선이가 몸이 좋지 않아 무척 추워 보였다. 성민이와 베이스캠프 주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주워왔다. 불 속에 넣고 후후 불어 꺼진 불을 살려냈다. 불씨가 꺼져갈 때마다 다시 나무를 구하러 갔다. 베이스캠프 주변 눈에 보이는 나뭇가지를 모조리 주워왔던 것 같다.

 불이 점점 작아져 추위를 느낀 인선이는 잠에서 깼다. 물품이 있는 텐트로 가서 묵직한 이불 하나를 가져와 덮어줬다. 그때 인선이가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이불을 턱 끝까지 덮어줄 때 좀 괜찮은 언니가 된 기분에 으쓱해졌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쓰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유난히 사막에서 잠들기가 싫다. 무수히 많은 별들을 눈앞에 두고 잠들기가 아쉬워진다. 별을 보고 있으면 시공간을 초월한다. 잠시나마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잊는다. 새벽 내음을 맡으며 모래의 촉감과 별의 반짝임만 느껴도 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꼭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어 아늑함과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눈을 감으면 별이 사라질까 봐 뜬눈으로 버티다 어스름한 새벽이 다 돼서야 잠이 들었던 날이었다.


듣다.

Luis armstrong의 When you`re smiling를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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