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Apr 22. 2019

반려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설명이 필요한 밤

걷다.

터키 카파도키아를 걷다.     


 직원이 방의 호수를 착각해 방문을 두드린 탓에 새벽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다. 번뜩 여섯시쯤 옥상에 올라가면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보니 시간은 5시 50분.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옥상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본 풍경이 터키에서의 일정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이 잠든 조용한 새벽에 둥둥 떠다니는 형형색색의 열기구, 그 뒤로 펼쳐진 이색적인 풍경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옥상에서 열기구를 보고 있으면 모호한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 이 풍경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에서 숙박을 연장하기로 결심했다. 항공권과 에어비앤비 수수료 10만원을 공중에 흩뿌려야 했지만, 꽤 괜찮은 기회비용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장님에게 숙박을 연장한다고 말해야지 하곤 까무룩 졸다가 잠이 들었다.


 카파도키아에 머물며 친해진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키우던 위스키였다. 처음 들었을 땐 대충 지은 이름 같았는데, 위스키를 보며 웃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애교가 많고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위스키의 까만 털은 반질반질하고 부드러웠다. 위스키의 특기는 조식 시간에 게스트들 슬리퍼를 물고 도망가기. 테라스에서 일기 쓰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다리 비비기. 마트 갈 때 따라와 장 다 볼 때까지 입 벌리고 기다리기. 항상 사람 곁에 머물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 었다. 등치도 제법 크고, 검은 눈동자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 때면 무서워서 얼음이 되던 나였는데, 이상하리만큼 금세 정이 갔다.

마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위스키 / 내 쪼리를 물고 신난 위스키

 게스트하우스에서 마트 가려고 나왔는데, 위스키가 꼬리를 흔들며 쫓아 나왔다. 훠이훠이 들어가라고 손짓했는데도 내 뒤를 계속 쫓아왔다. 마트에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생각했는데, 장 보고 나왔는데도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품 가게에 들러 수분크림을 사고 나왔는데, 위스키가 기다리기 지쳤는지 없었다. 같이 들어가면서 간식 주려고 했는데 이 자식이 어디 갔지 두리번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면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에게 오던 위스키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리셉션에 들러 Sam에게 숙박을 연장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헷갈리는 여자분이 체크인을 했다. 사장님이 이름을 물었고 그분은 “궈니콴”이라 대답했다. 중국분이셨구나 생각하며 복숭아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아기작 씹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 분과 나를 소개해줬다. “Jo. 이 분도 한국 사람이야.”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의 이름은 중국에서 온 궈니콴이 아니라, 부산 사는 권건희었다.


 건희 언니와 카파도키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Sam이 소파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Jo 오늘 위스키가 죽었어.”

“뭐? 어쩌다? 언제?”

“그가 죽은걸 3시간 전에 알았어. 그는 차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서 죽었어.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해줘서 나도 뒤늦게 알았어. 위스키가 마지막에 집에 들어왔을 때 같이 나갔으면 달라졌을까.”

 세 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던 위스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외출할 때마다 따라 나오던 강아지가 먼 길을 떠났다.

휴대폰에 너 사진이 많은 걸 보니, 너를 많이 좋아했나봐.

 Sam을 다독이고 혼자 옥상에 올라갔다. 허무한 마음에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건희 언니가 옥상으로 올라오고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니가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며 노래를 틀었다. 가수 안녕하신가영의 설명이 필요한 밤이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눈을 뜨면 네가 없어서 눈을 감아야 너를 볼 수 있는 밤.’

 옥상에 나란히 앉아 장난치던 위스키는 온데간데없지만, 눈을 감으면 매끄러운 까만 털이 빛나던 위스키가 떠올랐다. 노래 제목처럼 그날은 내겐 설명이 필요한 밤이었다.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날 리셉션에 가서 Sam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그가 말했다.


 “Jo. 네가 여기서 편하고 즐겁게 머물다 가서 참 좋아. 고마워. 우리 위스키를 예뻐해 줘서 또 고맙고. 그는 누구보다 너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어. 그도 우리와 같이 똑같이 주어진 그만의 삶이 있는데, 신은 그를 왜 이렇게나 빨리 데려갔을까? 세상에 나온 지 7개월밖에 안 된 사랑스러운 아이를 데려가야 했을까. 나와 그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던 걸까?”

Sam이 보여준 어렸을 때 위스키 사진

 Sam은 나에게 위스키 사진을 건넸다. 그와 나는 사진 속 위스키를 망연히 바라보며 한참을 훌쩍였다. 그의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Sam이 얼마나 슬플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그가 흘린 눈물보다 위스키를 사랑했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듣다.

안녕하신가영의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을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매거진의 이전글 사막에서 타인을 위한 소원을 비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