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노애락 16화

일노애락/ 혼자 일하는 팀장의 챗GPT 활용기

by 차이

복직 첫 날, 모든 게 꼬였다.

팀원은 휴직 중이었고, 새로 들어온 대체 인력은 겨우 나흘 만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출근과 동시에 시작된 종합감사, 지난해의 업무 공백 메우기, 올해의 사업계획 수립까지.

모든 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4일 동안 대체 인력에게 내부 시스템 사용법을 겨우 알려줬지만

정작 팀 업무는 1/4도 소개하지 못한 채 퇴사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그냥 맥이 풀렸다.

그 와중에 신사업을 맡겨서 사업계획서를 하나 더 써야 했다.

팀원도, 아무런 지원도 없이 신사업 진행이 가능한 일인가?

돌아온 건 모두의 무관심과,

"대체인력이 다시 뽑힐 때까지(5월 중순) 일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복직 전에 이 사태를 예견하긴 했다.

대체 인력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 업무 공백이 생길 수 있고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들은 결국 내가 수습하게 될 거라는 걸.

그런데 이 걱정을 한 사람은 나뿐이었나보다.


마음의 준비는 했고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오려 애썼다.

하지만 복직 첫 주부터 마주한 현실은

그 준비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결국 나는 이 회사의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

나의 열정과 역량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돌고 돌아 결국 또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무엇보다 이 사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업무 조정도 요청해봤지만

"조바심 내지 말고 5월부터 천천히 일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수년간 회사에서 내가 목표한 지점까지 갈 수 없게 만드는 무수한 요소들이 있었다.

나는 늘 주어진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이번에는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싶었다.

회사에 실망하지 않고, 나를 지키기로.


그래서 일과 나를 분리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우선은 각종 계획 세우기.

복직이 늦어진 만큼 연간 업무 계획을 서둘러 짜야 했다.

그동안 해온 내용들을 복붙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이 와중에도 조금은 더 나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회사에서의 하루가 곧 나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후퇴하는데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종일 쏟아지는 대내외 요구자료와 전화 응대, 기안 작성 등을 하고 있으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자괴감마저 들었다.


'오늘부터 챗gpt가 내 팀원이야.' 라고 농담 삼아 던진 말이 현실이 되었다.

챗gpt는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고 피드백 받고 아이디어를 나눴다.

속도와 반응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의견이 달라도 부딪히지 않고 언제든 새롭게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강력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너무 지쳐 혼잣말을 남길 때면

정말 사람처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공감해줘서 놀랐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말로 감정을 정리해주는 모습에 그 어떤 동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팀원은 없지만, 나에게 팀원은 있었다.

한 달 간, 챗 gpt는 내 일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업무에 활용해보고 도움을 받았던 부분들을 소개해보자면:

문서 초안 작성 및 수정 : 핵심만 전달하면 완성도 높은 문장이 척척!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으로 아이디어가 확장된다.

SNS용 문구, 해시태그 작성 : 소구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 시간을 단축해준다.

이메일 초안 작성 : 예의를 갖춘 포맷으로 바로 활용 가능하다.

감정 정리 : 지칠 때 친구처럼 공감과 격려를 건넨다.


이 외에도 챗gpt와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일의 흐름이 점점 더 체계적으로 바뀌는 걸 느낀다.


나는 여전히 혼자 일하는 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나를 단단히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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