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Jan 13. 2021

윤회와 카르마


“어제 널 괴롭히던 일로 인해 오늘도 네가 고통받고, 내일도 고통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윤회'야. 이번 생애에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너는 다음 생에서도 같은 문제로 고통받게 될 거야. 그러니, 네 마음속에 있는 화나는 마음과 미움을 그만 내려놓으렴”


때는 2017년 12월이었다. 나는 연말연시를 조용히 보내고자 미얀마의 쉐우민 센터에 2주간 명상 여행을 떠나와 있었다. 명상 센터에 입소자가 많아져 두 명이 룸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내 룸메이트로 자신을 소개한 진달래 언니는 봄에 활짝 핀 진달래꽃처럼 예뻤다. 언니는 수년 전 귀농해 지리산에 살고 있는데, 겨울마다 한 두 달씩 쉐우민 명상센터에 온 게 벌써 4년째라고 했다. 


명상은 새벽 4시에 시작해서 저녁 9시에 끝이 났다. 명상센터 초짜인 나는 행여 타인의 수행에 해가 될까봐 누가 먼저 묻지 않는 이상 침묵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용경이는 여기에 어떻게 왔니?”라고 물었고,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약 4년여 동안 목숨처럼 아꼈던 사업을 닫은 지는 약 반년이 지난 상태였고, 피 말리는 소송이 시작된 지는 이제 1년 반쯤 지난 상였다. 멀리 미얀마의 명상센터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언니에게 나의 구구절절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 놓았는데, 한참을 귀 기울이던 언니가, 대뜸 “너는 이중현(가명) 씨에게 고맙겠구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회사를 닫고, 몸과 마음 모두를 고통받고 있는데 그가 고맙겠다니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언니가 말을 이었다. “언니는 이중현 씨가 고마운데. 그로 인해 네가 먼 이곳 미얀마까지 오게 되었고, 널 만났고, 난 너와 함께 있어 참 좋다.” 



네가 그랬지. 그런저런 힘든 경험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을 이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것은 삶이 준 선물이란다.


여전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언니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용경아, 윤회가 뭔지를 물었잖아? 네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그로 인해 오늘, 네 마음이 고통스럽고, 그 고통이 내일도 계속된다면 그것이 바로 윤회란다. 네가 그 화나는 마음을 이생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내생에서도 고통받게 될 거야.”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언니에게 말했다. “나는 언니 같은 레벨이 안돼서 감사는커녕 절대 그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   


그런데 이후 명상을 할 때마다 언니가 했던 말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단 소송에 이긴 후, 그를 고소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를 우주는 절대 도와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2년을 끈 소송인데 그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2018년을 맞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끔찍했다. 그 미움의 사슬을 끊어야먄 고통과 화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며칠 남지 않은 2017년이 다 지나기 전에 정리하고 2018년을 맞고 싶었다. 그렇게 2017년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29일 나는 서둘러 글을 썼다.




안녕하세요? 이중현 님,  


저는 미얀마의 명상 센터에 와 있어요. 2017년을 잘 정리하고, 2018년을 정갈한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왔어요. 3시 반에 기상하고 저녁 9시까지 종일 명상 수행하는 일종의 절 같은 곳이에요. 


이곳에 와 있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어요. 이중현 님과의 소송도 떠올렸고, 그동안 제게 상처를 준 사람들, 가르침을 준 사람들, 제가 상처를 준 사람 등등을 떠올렸어요. 그동안 제 안에 당신을 참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 치유되고 있어요.  


여기에 룸메이트 언니가 있어요. 명상 수행을 오랫동안 한, 저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지리산에서 오신 언니인데, 제 스토리를 조금 듣더니, 그분이 그러셨어요. “용경 씨는 그 사람이 참 고맙겠다. 그 사람을 통해 많이 배웠잖아. 나도 그 사람에게 감사하네, 덕분에 용경 씨가 이곳 명상 센터에 왔고, 용경 씨를 만나게 되었잖아.” 그때, 제가 그랬어요. “아… 언니, 저는 그렇게 마음이 크지 못해요. 그를 미워하는 마음은 많이 사려졌지만, 그에게 고마워하고, 그가 잘 되길 바랄 정도로 맘이 넓지는 않은가 봐요.” 그리고 엊그제, 언니와 ‘윤회’ 얘기를 나누다가, 언니가 “어제 일을 오늘 또 떠올리며, 고통받는 것도 ‘윤회’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이번 생애에 해결하지 못 하면, 용경 씨 다음 생에 그게 반복될 것이라고… 오늘 해결 못하면 내일 또 괴로워할 거라고. 저는 윤회를 믿지는 않지만, 2017년에 그랬던 것처럼, 당신을 미워하며 2018년을 맞으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계속되는 이 싸움으로 결국 우리 둘 다 더 큰 손해와 화를 입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제 마음은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게 가르쳐 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용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 룸메 언니 말처럼, 나는 당신 덕분에 이렇게 명상 여행을 올 수 있게 되었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중현 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2017년 마무리 잘하시고, 당신도 2018년에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혜롭게 윤회를 끊고 2018년엔 미워하는 맘보다 감사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쉐우민 명상 센터에서 

에이프릴 드림




 


이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다 보면 종종, 내가 명상하다 잠시 미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 당황스럽다. 그냥 편지도 아니고, 감사 편지라니. 


하지만 놀랍게도 그날 나는 쉐우민 센터에서 그를 용서 함으로써 내 마음에 있던 미움의 사슬을 끊어냈다. 이후 2년을 더 끈 소송 내내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만은 편안했다. 그 감사 편지를 쓴 이후 마음에 불같이 일던 화가 사라진 것이다. 


편지에도 쓴 것처럼 그도 이제껏 충분히 괴로웠을 것이기에 그는 그의 몫의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내 마음 챙김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명상을 통해 오늘을 백프로로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