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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Mar 14. 2021

창업가라는 새로운 씨앗

인생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선배 창업가와의 만남

앞 글에서 이어짐.

해외 생활의 환상, 해외 취업의 현실



처음에 내 선배와 합의된 계약은 6개월 인턴직이었다. 처음 내가 소식을 듣고 지원했을 때는, 3개월 동안 월 120만 원이었는데, 그나마 나중에 선배가 “널 데려가야겠다"라고 하면서 160만 원으로 올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회사는 내게 정규직을 제안했고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월급은 세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장병규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셋을 꼽으라면, 엄마, (아빠 죄송), 뒤에 소개할 진달래 언니, 그리고  이 분, 장병규 대표님이다. 


장병규 대표님은 네오위즈 공동 창업가로, 이후 “첫눈”이라는 검색엔진 회사를 창업해 네이버에 매각하셨다. 이후 창업한 회사가 바로 내가 일했던 곳, 지금은 “크레프톤”으로 이름이 바뀐, 게임의 명가 “블루홀”이다. 내가 조인했을 당시 블루홀은 한국에서 약 300명의 직원을 데리고 수백억을 들여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테라" 게임을 개발 중이었다. 장병규 대표님은 블루홀의 의장직을 맡고 계시면서 미국 사업은 손수 챙기셨는데 때문에 병아리 인턴인 나는 운이 좋게도 가까이에서 장병규 대표님을 뵐 수 있었다. 


대표님이 미국에 출장을 오실 때 공항에서의 픽업은 내 몫이었다. 하루는 비서가 대표님의 항공편 정보를 전달하면서 이번에는 대표님이 비즈니스를 타고 가시니 평소보다 일찍 출국장을 나오실 수도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번 비즈니스석 비행기 표는 대표님이 자비로 끊으셨다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내가 대표님을 만났을 때, 그분은 이미 천억대의 자산가셨는데(지금은 1조가 넘으신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부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대표님은, 투자자의 돈을 받아 운영하는 회사는 아껴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때문에 지난 네 차례 이코노미를 타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신 것이다. 일 년에 다섯 차례 총 열 번 평양을 건너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섯 번째 출장에서야 비로소 비즈니스석을 타기로 결정하면서도 사업 철학을 고수하고자 자비로 티켓팅 하신 것이었다. 


대표님을 픽업해 사무실로 이동하는 길에도 종종 대표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에이프릴, 여기 기름값이 더 싸네” 


나는 당시 오피스 매니저 역할을 겸직하고 있었고, 때문에 간식을 포함해 이런저런 회사 물품 구매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게 하신 말씀은 아닐 테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대표님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던것  같다. 나는 한 번도 회삿돈을 허투루 쓴 적이 없다. 


그 밖에 내 창업 열정에 기름을 부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새로 영입한 미국인 임원 셋을 모시고 한국에 출장 왔을 때 생긴 일이다. 북미 사업에 핵심이 될 세 명 미국인 임원을 영입하면서 직접 장 대표님이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미팅의 통역 담당이었다. 


하나둘 빠르게 장표가 지나갔다. 이후 등장한 장표에는 세계 지도 위로 중국의 위안화와 미국 달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장표에 이르자 대표님이 본인이 직접 영어로 말씀하셨다. “(I made enough money in Korea. Now I want to make yuan and dollars. (저는 한국에서 이미 돈을 많이 벌었어요.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싶어요)” 


그때까지 경영학과 출신인 내가 동경했던 비즈니스 맨의 모습은, 정장을 잘 빼입고, 고객 앞에서 전략을 제시하는 컨설턴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날, 창업자가 얼마나 반짝반짝일 수 있는지를 보았다. 


서툰 영어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회사 출신, 미국인 셋을 불러 앞에 앉혀 놓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었으니, 앞으로는 달러와 위안화를 벌 수 있도록 당신들이 도와달라고. 그것은 성공한 창업자가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내 상사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닮고 싶어졌다.



다음글로 이어짐 

글로벌을 무대로 살다 (feat.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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