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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Jul 24. 2024

공무직 첫 끼 -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근무 첫날을 앞두고 외우는 주문

다시 백수가 됐지만 인턴을 그만두고 겪었던 백수 생활과는 달랐다. 그때는 돈도 자존감도 떨어졌었다면 이제는 돈도 자존감도 두둑한 백수였다. 고용인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닌, 계약 만료를 포함하여 고용주의 의사에 따라 퇴사 조치 되었을 경우 실업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실업 급여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주는 위로금이자 다음 취업을 응원하는 장려금이다. 전 직장에서 근무한 기간과 급여에 따라 실업 급여를 받는 기간과 액수도 달라지는데 나는 3개월 동안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취업 걱정은 해도 돈 걱정은 안 하는 백수로 살 수 있었다.


비자발적인 퇴사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실업 급여를 정해진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입사 지원서를 제출한 수많은 회사 중 한 두 곳을 뽑아 매달 취업활동 증명서를 제출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원서를 제출한 기업은 대부분 영어를 쓸 수 있는 공공기관이나 대학교 행정직이었다. 일해본 곳이 공공기관과 대학교 부설 기관이다 보니 시야가 딱 그 범위에 머물러버렸다. 그래서 다들 첫 직장을 잘 구해야 한다고 말하나 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3개월 동안 면접은 여러 번 봤지만 최종 합격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제 계약직 경력이라도 생겼다고 지난 백수 때보다는 면접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백수의 하루 일과는 매일매일 반복됐다. 오전에는 구인 공고를 찾아보고 오후에는 원서를 쓰는 생활. 그러다 서울 소재 공공기관의 공무직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이전 직장에서 했던 업무와는 전혀 다른 직무였지만 지원자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한 번 비벼보기로 했다. 내 요건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닌 면접관 몫이니까.


아무리 공공기관이라지만 공무직이라는 직위는 생소했다. 지금껏 정규직을 찾았는데 공무직이라니, 대체 공무직은 무엇인가. 공무직은 '공공기관의 무기계약직'으로, 기한에 정함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계약직을 말한다. 다만, 승진은 불가능해서 직급에는 변화가 없고 기관에 따라 급여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원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승진과 급여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직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력이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놀랍게도 서류에 합격했다. 일단 서류에 합격하고 보니 욕심이 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난 취업의 길이 열린 것이다. 면접 때는 간절했던 만큼 긴장했지만 면접은 의외로 수월했다. 미리 준비해 간 범위에서 질문이 나왔고 영어 질문도 어렵지 않았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합격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합격이었다. 실업 급여 지급이 종료된 바로 다음 달부터 출근이었다. 시기조차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에 감탄하며 새로운 직장으로의 취업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출근 전 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부터 외우던 주문을 오랜만에 되새겼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새로운 일터에서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지, 어떤 분위기일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등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 위해 외우는 주문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괜한 기대로 첫날부터 직업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첫 출근 장소로 안내받은 대회의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직무로 뽑힌 동기도 있었는데 면접 대기실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9시가 되자 인사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인사팀장이었다. 그 이후로 2주 동안 이어진 교육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바로 '평생 볼 사이.' 20대에 입사한 우리가 정년까지 일한다면 최소 40년은 볼 사이라는 것이다. 40년 동안 가족보다 더 자주 볼 사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을 하루에 3번씩은 꼬박 들었다.




입사한 지 3일 만에 회사에서 두 번째로 큰 행사가 있었다. 그날은 모두 행사 현장으로 투입되어 바쁘게 일했다. 겨우 오전밖에 안 지났는데도 하루종일 일한 것 마냥 기운이 빠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 팀 대리님이 밥을 사주겠다며 나와 동기들을 데리고 나왔다. 무려 대리님의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어느 중국음식점이었다. 짬뽕이 들어간 상호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짬뽕이었다. 내가 평소에 중국음식점에서 주문하는 식사류는 짜장면 아니면 새우볶음밥이었다. 단 한 번도 짬뽕을 직접 고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대표 메뉴기도 하고 대리님의 강력한 추천을 거부할 수 없어 짬뽕을 주문했다.


짬뽕이 테이블에 올라오기도 전에 매콤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메웠다. 콜록거리기 시작할 때쯤 홍합이 가득 올라가 있는 짬뽕이 나왔다. 배가 너무 고팠던지라 젓가락부터 들고 면을 젓는 동안 숟가락으로 국물부터 맛봤다. 얼큰하고 깊으면서도 적당히 짭조름한 맛이 입안을 순식간에 훑고 넘어갔다. 짬뽕이 이렇게나 맛있을 수 있다니! 푸짐한 해산물 아래 깔린 면은 일반적인 밀가루 면이 아니라 생면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고집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감사했다. 이 날 이후로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심지어 회사 근처로 놀러 온 친언니를 데리고 갈 정도로 이 집 짬뽕에 빠져 버렸다.





힘들었던 행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나보다 3개월 먼저 입사한 공무직 선배가 내게 말했다. "오늘 힘들었죠?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그래요. 평소에는 그렇게 어려울 거 없어요." 신경 써주는 선배의 말이 고맙기도 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의미는 달리 들렸다. 마치 배가 내게 '관두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후배 직원이 관둘까 봐 걱정하는 이유가 뭘까? 왜 선배의 걱정과 배려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출처를 모르는 싸늘함이 근무 첫날부터 날 쫓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평생 볼 사람'이라는 말에 세뇌되기 전부터 나는 평생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년을 보장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근로계약서를 쓰면서 터무니없이 적은 연봉을 보고 찰나의 순간 서명을 주저했지만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내게는 부족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미처 수습기간을 끝내기도 전에 공무직의 실상을 알아버렸고 내가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 싸늘함이 사실은 경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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