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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Jul 31. 2024

공무직 두 끼 - 비도 오는데 곰탕 어떠세요?

빗소리에 가려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겉으로 보기에 번듯해 보이는 직장을 다니는 것은 꽤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꽤나 이름 있는 공공기관이었기에 다들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일부는 위치까지 정확히 맞췄다. 심지어 은행이나 병원 같이 오늘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도 내가 회사 얘기를 하면 다들 "거기서 일하세요? 멋있다!"라고 감탄했다. 한동안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며 직업 만족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출근을 하면 할수록, 이름 있는 공공기관의 공무직이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인지를 알게 됐다.




가장 먼저 체감했던 단점은 급여다. 정규직이야 자리만 채우고 있어도 직급이 오르고 연차가 올라서 근무 성적과는 상관없이 꽤나 높은 연봉을 받지만 공무직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공공기관의 공무직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했던 곳의 공무직은 터무니없는 월급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승진제도가 적용되지 않으니 직급 수당을 받을 일도 없고 기본급 자체가 낮으니 어떤 수당이건 정규직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같은 곳에서 공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예전 동료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정확한 금액을 말할 수는 없지만 저렴한 값에 부려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급여는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를 통해 납득할 수 있었다. 모르고 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아니고 다 알고 서명한 내 잘못도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공무직에 대한 차별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일부는 같이 목례를 해줬지만 절반 정도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인사한 것을 봤거나 신입직원이라 아직 얼굴을 몰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공무직 선배에게 얘기한 후에야 실상을 알았다. "우리 인사 안 받아주는 직원들 있어요. 공무직 인사는 안 받겠다는 건가 봐."


마치 양반이 평민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던 것처럼 직급과 관계없이 공무직의 인사를 아예 모른 체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계급은 직급이 아니라 정규직이냐 공무직이냐의 차이라는 것을. 직급은 양반들 내에서나 갈리는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인사를 무시하는 행위가 차별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정규직의 월급을 떼어서 공무직에게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는 월급을 아까워했고 추가 근무 수당 등 차별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자신들과 구분지었다. 우리의 잘못이라면 정규직보다 뛰어난 스펙을 갖고 있지만 공무직이라는 채용 형태가 만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김없이 신분차별에 분노하던 날이었다. 우리는 오전 동안 불만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폭발시켰다. 아침부터 내리던 빗방울은 점심때가 되자 더 굵어져 장대비가 되었다. 불만이 폭발하는 소리는 빗소리에 가려져 멀리 퍼져 나가지 못했다. 빗소리를 방패 삼아, 우산을 확성기 삼아, 답답한 속을 풀었다.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점심식사 메뉴를 정하지는 못했다. 다들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곰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자 동료들은 깜짝 놀라며, "정말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그전까지 나는 곰탕이 메뉴 후보로 오를 때마다 마치 곰탕과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철저하게 거부했다. 그랬던 내가 먼저 곰탕을 제안한 것이다.


그날은 속을 풀고 달래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동안 줄기차게 극찬을 받아왔던 곰탕집에 도착했는데 비가 와서인지 그날따라 손님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했더니 물 한 모금 마실 때쯤 곰탕이 나왔다. 반짝이는 놋그릇에 밥을 섞어 담은 곰탕이었다. 투명하게 맑은 국물, 대파와 고기로만 토핑 된 단출함이 마음에 들었다. 비가 와서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살은 차갑고 속은 쓰리던 날이었다. 국물 한 숟갈, 고기 한 점, 살짝 불은 밥알이 화를 가라앉혀주었다. 유리창 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가게 안은 평화로웠다. 그릇까지 기울여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다.





회사 성과와는 관계 없이 이름 있는 기관이라는 영광에 기대는 직원들을 보고 있을 때면 망해가는 왕국에 사는 몰락한 양반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가 기대는 것 역시 기관의 이름이었다. 내부에서 받은 차별 대우로 구겨진 자존심을 외부에서 회사 이름을 들먹이며 회복했다. 내게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유명 공공기관이라는 타이틀. 그런 나 자신이 가끔은 몰락한 양반 가문의 소작농이나 노비처럼 느껴졌다. 우리끼리는 '양반 놈'이라고 욕해도 밖에 나가서는 '우리 양반 마님'이라고 말하는 모순이 점점 입에 스며들고 있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평균 월급을 들먹이며 고물가를 걱정하는 뉴스를 볼 때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신분 차별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는 다르게 말하는 모순이 자학이라는 것 또한 머지않아 깨달았다.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었다. 이름값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내게는 허울만 좋은 이름이 아니라 교통비를 내고 점심값이 되어주고 적금을 들 수 있는 현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억울함만 쌓여가는 공무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직을 결심했다. 아니, 이직하지 않더라도 여기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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