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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가오니 Oct 10. 2021

#1. 아버지의 남은 시간

아버지 삶의 시선을 따라 사진전을 개최하다.

아버지의 남은 시간 지난 글에 이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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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의 사진들을 들춰보다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안고 동물원을 걷던 사진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얼마나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1980년대의 컬러 사진 속 아버지와 나를 보고 있으니 문득 아버지와 나누던 대화의 문맥이 떠올랐다.


'기웅아, 세상은 총천연색이란다.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해서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색도 있단다. 아빠는 네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겼으면 좋겠단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내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운 건 그런 말들이 중첩되어 어느 순간 내 안에 쌓여서 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난 십수 년간 창고에 박아두고 언젠가 가족이 모두 모여살 때가 되면 펼쳐보려고 생각만 해뒀던 가족 앨범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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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섭 님 보호자님 계세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결과가 어떻든 병원에서의 기다림의 순간들은 참 어렵다. 어떤 생각들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생각에 집중이 안된다. 그날따라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 속에서 아버지의 MRI 판독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수많은 섬 속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 들 때쯤이었다.


'아버님 MRI 판독 결과...

 다행스럽게 뇌에는 전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크나큰 것이 마음을 뒤집어 놓고 빠져나간 기분이다. 집에 돌아오니 한 것도 없이 녹초가 되었다. 최악의 최악은 아니다... 아니 시간이 조금 더 생겼구나.. 몇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심경이 복잡해졌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새벽이었다. 문득 이전에 보다가 구석에 넣어둔 가족앨범들을 꺼내보기로 한 게 생각났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던 가장 안쪽에 있는 먼지 쌓인 대충 봐도 60-70년대 만든 것 같은 낡은 앨범부터 눈길이 갔다.  


낯선 앨범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내 어린 시절보다 더 어리고 장난기 가득한 아버지의 모습들이 흑백으로 남겨져있었다. 색이 바랬음에도 총천연색 가득한 생기가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에 고스란히 남겨져있었다.


중학생 아버지가 분식집 같은 곳에서 친구를 안으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모습, 야산에 올라가서 친구와 춤을 추는 십 대 소년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울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끅끅 소리를 내면서 나는 또다시 복받쳐 뭔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분출되지 않은 채 마음속을 휘젓다 가라앉는 느낌이 들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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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 즈음 SNS 담벼락에 글을 썼다.


「아버지의 젊은 날은 어땠을까요? 그 찬란하고 빛나던 시절 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셨을까요.. 저는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비록 너무 늦었음에도 더욱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전시회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많이 서투르고 투박하겠지만 아버지의 삶과 시선, 그리고 제게 보내주신 편지들을 모아 평소 아버지의  '우리 웅이 좋아하는 쬬크랫이야'하면서 웃으시는 모습을 담은 개인적이고 특별한 사진전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


사진 속 아버지의 젊은 날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하고 나는 무모하게도 생전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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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글을 남기고 약속했기에 마음속은 분주해졌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입원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시간이 없었다. 운 좋게도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아 준비는 수월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버지는 MRI 검사 이후 입원 날짜를 받은 후 특별하게 몸에 이상을 느끼시지 않고 있었다. 고맙게도 을지로에서 예술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친구가 전시공간을 흔쾌히 빌려주기로 다. 남은 건 사진을 고르고 어떻게 전시회를 구성할까 고민하는 일뿐이었다.


아버지의 입원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해서 입원 전주 주말 이틀만 전시를 하기로 하고 사진첩에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한 장 한 장 추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낯이 익은 느낌의 사진 속 한 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1980년대 김포 국제공항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 계셨던 아버지를 일 년에 한 번씩 보게 되는 그 시간들이 끝나고 다시 아버지를 공항에서 떠나보내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무릎 정도의 키였던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면 나는 아버지가 입국하실 때 사 오신 미제 쬬크랫을 좋아해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느새 헤어질 때쯤이 되면 울보가 되곤 했다. 쬬크랫의 달콤한 뒤에 따라오는 쌉싸름한 맛은 바로 언제나 돌아오는 '아버지와의 이별'같은 맛이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도 해외 생활을 몇 년 하면서 공항을 자주 왕래하다 보니 마음 한편에 외로움과 쓸쓸함에 우울해지곤 했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 당신은 얼마나 마음이 허전하고 힘드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의 공항 사진들은 늘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듯 환하게 웃고 계신 사진밖에 없었다.


공항 사진보다 더 젊은 시기로 돌아가 보았다. 아버지의 결혼식날 사진이었다.


한 젊은 청년으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대학교 4학년 때 결혼하고 형을 낳은 아버지는 졸업식 때 갓난아기였던 형을 안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졸업사진을 찍으셨던다는 이야기를 어린 시절 사진과 함께 듣고 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형이 태어나기 전의 아버지의 젊은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앨범을 뒤적이다 시간이 제법 지났다....


아버지가 공항에서 쥐어두던 미제 쬬크랫과 함께 또 하나 아버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였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편지를 모아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 처음으로 맞이한 춥고 배고픈 겨울. 그때 아버지에게 받았던 편지가 있었다.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기억이라 단편적으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보초를 서다가 언 손을 녹이며 모두 잠든 내무반 구석에 앉아 편지와 함께 보내주신 쬬크랫을 입안에서 녹여 먹으면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천천히 읽었던 기억이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버지의 입원 전 사진전의 이름을 정했다.


'편지와 쬬크랫'.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젊은 시간을 따라가면서 내게 준 추억을 상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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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및 리플릿 디자인을 끝내고 전시회 사진 선정도 끝냈고, 빠듯한 시간이지만 이제 생각만 잘 정리해서 메모하면 되는 시간이 남았다. (이때가 사진전 전날 새벽이었다... 하하...)

완성된 A, B, C버전의 포스터. 결혼식과 할머니, 아버지의 시선, 가족과 대학 친구들.

포스터 작업이 끝나고 인쇄는 다행스럽게 전시회 당일 충무로 인쇄소에서 시간에 맞추어 공수해올 수 있었고.. 이제는 전시 공간 준비를 할 차례였다.

포스터를 붙이고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사진전 공간 작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 내 나름대로 아버지라면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의 관점에서 짧은 메모, 그리고 아버지가 때마다 보내주셨던 편지에 적혀있는 마음들을 하나씩 액자에 붙이고 벽을 활용해 전시회를 준비했다.


다행스럽게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 아버지의 오랜 친구, 나의 오랜 친구를 비롯한 전시회를 순수하게 찾아온 낯선 이들까지 포함해 진행하는 내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따뜻함으로 메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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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진전을 하고 오프닝 공연을 하는 동안 내내 해맑게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늘 내게 웃으셨지만 이날 아버지의 웃음은 병마로 인해 드리워진 그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맑은 웃음 그 자체로 바라보는 내게 생동감 있는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이 날 아버지의 에너지 넘치는 이 모습을 보게 된 것은 내 삶의 순간에서 몇 안 되는 가슴 벅찬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시간들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2021년 10월

한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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