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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한 Aug 31. 2023

우리에게는 사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정신적인 쉼', 즉 사유할 시간이었다.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뭘 해서 먹고살까?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는 어떻게 견딜까?'

지하철에서 아무 표정 없이 어디론가 내쫓기듯 급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는 질문을 계속 되뇝니다.


 우리는 ‘왜 살지?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네가 배가 쳐 불렀구나. 무슨 개소리야. 혼나야겠어’라고 꾸짖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저는 맹렬히 돌진하는 직장인 행렬에서 이탈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 24시간 대기 인력이자 무임금 가사노동자로 긴 시간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싶다는 앎의 욕구가 간절했었습니다.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 안간힘을 써가며 석박사과정을 거쳤고, 비로소 EDBA 경영학 박사학위를 따냈을 때는 ‘거봐. 나 정말 멋지지? 나도 이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나 무시하지마!’라고 외치며 들떴습니다.


 그런데요,  그토록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성취한 이후, 저에게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부유하며 쉬어도 쉬지 못하고, 일에도 몰입이 안 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이나 보며 머릿속 불을 재빨리 꺼보려 했지만, 목이 몹시 마른데 물이 아닌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더 심한 갈증에 빠지더군요.


 피곤하니까 감정 기복이 들끓듯 심해지고, 가족들에게 짜증 내고, 괜히 억울해하고, 우울하고, 가족이 아닌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카톡 지인 목록을 죽죽~내리다가 민폐 끼칠까 봐 막상 연락은 못하겠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 쉬고 싶다. 정말 쉬고 싶다.

 저는 다 때려치우고 쉬겠다고 주변에 선포했습니다. ‘안 해! 못 해! 아주 그냥 다 때려치울 거야!!!’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멍 때린 것 같아요. 느끼하고 자극적인 살찌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느지막이 자고 일어나서 어슬렁거리고, 좋아하는 책방을 돌아다니고, 사우나하고,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걷고 또 걷고,  집에 먼지가 끼든 애들이 인스턴트를 먹든…. 에라~ 난 몰라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 난 자유야!


 그런데요, 문득 문제의 해결책은 더 깊숙한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리적인 쉼이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반업 주부라서 눕고 싶으면 언제든 누워도 되거든요.  저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정신적인 쉼’. 즉, 사유할 시간이었습니다.


 초반에는 통제와 억압을 받았을지언정,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사고를 하며 원하는 삶을 개척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나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집 밖에서도 아니, 심지어 아이들 앞에서까지 ‘나는 공부하는 유식한 엄마’ 코스프레를 해가며 굳어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하…


이제는 힘을 뺍니다. 고요히 제 자신을 응시합니다.

읽어야 하는 책인 아닌, 읽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닌, 생겨먹은 대로의 나를 보여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증명받고 싶은 글이 아닌, 그동안 참고 삼켜내 ‘툭’ 터져버릴 것 같은 글을 차근차근 써 내려갑니다.


우리에게는 사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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