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만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 그 말은,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다. 최근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너무 잘 되고 있어서 무섭다.”고. 내가 생각했던 일이 예상보다 빠르게 내 눈앞에서 펼쳐지다 보니, 그게 언제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즐겨!”라고.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새기며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듬고, 현실에서 흘러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늘 진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진심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그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진심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니까. 누군가 내 진심을 의심하거나 질문을 던져도,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감정에 상처가 생길지라도 나는 그것을 기회로 삼는다. 그 의심과 질문이 나로 하여금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외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전업 한국어 교사다. 여기서 ‘전업’이란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커리어 발전을 위한 고민, 학생 관리, 학기 계획, 다양한 행사 기획, 그리고 다른 교사들과의 협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 모든 활동이 결국 나를 더 나은 교사로 성장시키고, 한국어 교사라는 내 정체성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엘리엇 프로젝트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엘리엇은 대체 뭐하는 곳인가요?” 그 질문에 숨이 막힌 적이 있었다. (덧붙이자면 엘리엇은 내가 팀원들과 함께 운영하는 한국어교육 커뮤니티다.) 왜냐하면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이 종종 “한국어 선생님이면 가르치는 일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학생들을 위한 길이죠.“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엇에서 한국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그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말 속에서 출몰하는 불안이 무엇인지 나는 가늠할 수 있다. 그 불안은 종종 “안 그래도 한국어 선생님이 많은데…”라는 뒷말로 이어지곤 하니까.
나는 많은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자격증 자체보다 그 과정 전후의 여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사람들, 자격증 과정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격증을 따고도 실전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이 길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자책하며 포기하곤 한다.
나는 이러한 고민의 악순환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역할을 우리 팀이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팀원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한국어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단순한 목표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전문성을 쌓으며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길을 마련한 것이다.
하루 만에 완성된 기획안은 곧바로 홍보에 들어갔고, 일주일 만에 6명의 예비 한국어 선생님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진심인 한국어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에서 오류를 발견한다. 이는 한국어 선생님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교사는 입체적인 존재다. 교과 지식과 교육 과정 개발은 물론, 학생 관리, 학기 기획, 다양한 행사 준비, 그리고 다른 교사들과의 소통과 협력 등 모든 것이 교사라는 역할을 다채롭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가 연결되어야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엘리엇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엘리엇에서 만나게 된 다른 선생님들과 나누는 대화, 학생들과의 경험 등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나의 토양이 더 단단해지고, 나중에 맺을 열매도 더욱 건강해진다고 느낀다. 우리는 결코 납작하지 않다.
“한국어 선생님이 너무 많아지면 기존 선생님들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려본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나는 그럼 ‘우후죽순’ 생겨난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가? 내가 조금 빨라서 그 위치를 선점한 게 아닌가?
내가 가진 진심이 나만의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기존 선생님들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더 많은 선생님들이 생겨나야만 나 역시 더 성장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국어 선생님이 한국어 교육 외적으로 수익을 낸다, 는 점으로 진심이 곡해되도록 놔둬도 되는가? 우리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예비 선생님들이 열정을 실현시킬 수만 있다면, 그게 서로의 진심이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우후죽순이란 용어로 자신의 위치가 강제로 낮아져버린 예비 선생님들의 소망과 의지가 과연 얕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선생님들도 결국 돈을 벌고있고 벌 생각을 하시지 않는가? (이 부분의 설명이 더 필요하다면 내가 쓴 첫 글로 돌아가 일독 하시기를 권한다, 잘났다는 게 아니라 진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저 더욱 상세하게 알리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막연하고 은근한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국어 교사로서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선생님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시작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기존 선생님들이 더욱 단단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지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면, 작은 죽순이 커다란 대나무가 되어 한국어 교육의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숲에서 더 다양한 관점으로 한국어 교육을 논의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직업과 이 분야가 절대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쁨을 나 혼자만 알고 싶지 않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상투적인 말이 자꾸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는 건 이유가 있다. 함께하면서 한국어 교육 시장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며, 그들과 함께 나도 더 나은 교사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은 나의 분노일 수도, 나의 선전포고일 수도, 혹은 나의 출사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