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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May 04. 2021

댕댕이가 열어준 비밀의 세계

거의 이년이 지나고 드디어 인사하는 동네 사람이 생겼다

일단 우리 집 막내 노아 군을 소개한다. 2021년 1월 8일생. 우리 집에 온 건 11주가 지난 3월 27일이었고, 우리가 가족으로 키우게 된 첫 반려견이다. 


겨울에 Winter wonderland라는 장소에 가서 썰매견들을 만난 이후 우리 가족은 시베리안 허스키에 폭 빠지게 되었는데, 반려견 들이는 절차가 까다로운 이곳에서 적절한 강아지를 찾아 분양받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분양한 지 3주 되었는데 주인이 암에 걸려 더 이상 돌보기가 힘들어져 반려 가족을 찾고 있는 글을 보게 되었고 몇 번의 만남과 잘 돌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후 노아는 우리 품에 오게 되었다. 


핀란드의 반려견 입양 과정은, 공식 Kennel에서 출산 예정이거나 등록된 퍼피들을 확인한 후 직접 만나보거나 통화를 통해 서로 강아지를 키우기에 적절한 지 확인하고, 계약서를 쓴 후 칩 내장 등 등록 절차를 모두 마친 후 8주 이후에 1500 - 2000 유로 정도의 가격에 분양한다. Kennel에서는 백팩 안에 그동안 먹여 왔던 브랜드의 사료, 개껌, 백신 스케줄 안내서 등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 기본 서류와 함께 강아지를 건네준다. 우리의 경우 Kennel과 직접 거래한 것은 아니지만 Kennel과 계약서를 작성하여 우리 주소로 등록을 마치고, 이전 주인에게는 1500 유로를 지급하고 Kennel에서 구입 시에 받았던 물건을 그대로 전달받았다. 3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전 주인도 정이 들었는지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만나서 잘 지내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중간중간 사진들도 요청해서 노아의 웰빙을 확인했다. 노아를 만나기 전에 다른 강아지를 몇 번 시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가족 구성원, 집의 환경 (마당 여부), 얼마나 활동적으로 개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집에 사람이 있는지 등등의 내용으로 나름 어필을 하였으나 인연이 아니었던지 직접 만났던 10개월 허스키는 이전 주인이 그대로 키우기로 결정을 번복하였고, 나머지는 Kennel 자체가 너무 먼 곳에 있거나 하여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사실 쉽지 않았고 글을 쓰는 지금은 이 야수가 긴 아침 산책 후 자고 있어 안심하고 앉아 있지만 발목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내에서도 부츠를 신고 있는 웃픈 모습이다. 이제 막 만 4개월이 되는 노아는 유치가 있는 퍼피인지라 손과 발목을 무지하게 물어댄다. 유튜브, 구글, 온갖 책을 찾아본 결과, 이 시기에 입이 근질근질해서 물어대는 건 고쳐야 할 대상도 아니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결론 내고 나름의 애정 표현이겠거니 우리가 조심하기로 맘을 바꿨다. 산책하다 만나는 다른 강아지 주인들에게 노하우를 물으니 영구치로 바뀌면 덜해진다고 한다. 


서두가 엄청 길었지만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따로 있다. 우리는 이 동네에 정착한 지 이제 거의 2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대충 건너편 두 집 정도와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동네의 모습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주택들이 쭉 늘어서 있어 왠지 아침마다 나와서 굿모닝~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 동네인데, 그동안 동네 사람과 대화는커녕 눈인사도 안 하고, 사람이 앞에서 오면 땅만 쳐다보고 걷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휙~ 지나가는 썰렁한 태도로 지내왔었다. 그런데 노아가 오고 동네를 함께 어슬렁대다 보니 갑자기 다른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완전 다른 세상이... 일단 옆집 사람들이 오더니 노아에 대해서 물으면서 자기 이름도 말하고, 너 한국에서 왔지? 이러면서 자긴 뭘 하고 자기 딸이 뭐하고, 어디 살고 이야길 다 해 준다. 앞집 사람도 마찬가지, 그 옆집 사람도... 이름 소개는 스킵하기도 하지만 노아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은근슬쩍 만나서 반갑다며 이야기해 준다. 캐나다에서 살다가 우리보다 좀 늦게 이사 들어온 이웃은 이름과 함께 어제 전번까지 교환하는 일도 일어났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동안 우리가 뭘 놓치고 살고 있었던 것인가.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우리만 몰랐던 비밀 사교 클럽이라도 있었던 거 같다. 밤 9시 반쯤 마지막 산책(이라 적고 집 근처 어슬렁 거리기)을 할 때면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박사님 같은 할아버지가 노르딕 스틱을 열심히 흔들며 산책하러 오시는데, 노아를 어찌나 예뻐해 주시는지 베프가 될 지경이다. 그분은 영어를 못하시고 나는 핀란드 말을 못 하니 그분의 핀란드어를 상상의 나래를 펴서 대충 이해하고 난 핀란드 단어만 몇 개 툭 던지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왠지 친해진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아침 산책 때 숲에서 만나는 견주들과는 너무도 쉽게 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수다를 떤다. 아니, 비사교적인 핀란드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단 말인가! 

     

(집에 안 들어 가려도 드러누워 떼쓰는 노아군)


반려견을 키우면서 좋은 점들을 참으로 많이 읽었다. 그런가 하면 원래 원했던 삶이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파양 하여 떠도는 개들이 한국에는 여전히 많다는 것도 안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삶, 우리 가족도 아직은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중이다. 2-3시간마다 계속 밖에 데리고 나가서 배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혼자 두고 어디 멀리 나갈 수 없으니 장거리 여행은 당분간 못하고, 가만히 있어도 자기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며 손 발을 무는 가 하면, 대부분의 시간 자거나 싸거나 집안의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하여 아직 많은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언젠가 함께 조깅을 할 수 있기를, 개 수영가능 바닷가에 가서 함께 수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우리를 가족이라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길 바라며 오늘 우리는 노아를 퍼피 트레이닝에 데려갈 계획이다. 


노아로 인해 알게 된 비밀 사교 클럽이라는 엄청 큰 변화는 벌써 우리가 노아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노아군, 함께 즐거운 인/견생을 살아 보자고❤

 

(너무도 가까운... 내가 일하고 있는 의자에 딱 달라붙어 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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