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 줄만 알았는데 다시 영하 15도
핀란드어로 땅의 달(Maaliskuu)인 3월이다. 겨우내 쌓여있던 눈이 녹고 땅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달.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했던 2018년 4월 2일도 눈이 엄청 내려서 얇은 옷과 운동화 차림의 가족을 당황하게 했더랬는데, 올해도 아직 봄에게 자리를 내주긴 아쉬운 모양인지 영상으로 살짝 올라갔던 날씨가 급변하면서 엄청난 눈을 또 쏟아냈다.
작년 겨울은 눈이 없고 비만 무진장 내렸던 지라 이 영하의 날씨가, 그리고 엄청난 눈이 난 아직 반갑고 좋기만 하다. 하얗게 눈 덮인 세상은 밝고 깨끗해서 덩달아 마음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겨울 왕국답게 핀란드의 제설작업은 꽤 신속하다. 도로의 크기나 구분에 따라 눈이 몇 센티 이상 쌓이면 몇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지까지 정해져 있다고 하니 기본적인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에서 처리하는 것만 의존할 수는 없기에 각 가정마다 넉가래와 모래 상자는 기본으로 갖추고, 차량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는 워셔액 (섭씨-65도 용도 있다!)과 눈에 빠졌을 때 간단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삽, 그리고 쌓인 눈을 치우고 얼음을 긁어내는 브러시까지가 기본으로 있어야 한다.
(제설작업의 흔적 : 왼쪽은 모래가 뿌려져 있는 도로, 오른쪽은 제설차량으로 얼음을 눌러 미끄럼 방지 요철을 만들어 놓은 모습)
이런 겨울이 지나고 나면 몸살을 앓았던 것처럼 차량들이 겨울용 타이어로 달렸던 도로 곳곳이 패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매년 아스팔트 도로를 고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이다. 또 [이제 정말 눈은 안오겠지] 확신이 드는 때가 오면 미끄럼 방지를 위해 뿌려놓은 작은 돌멩이들을 다시 쓸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그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차가 지나갈 때마다 일어나는 모래바람은 봄날의 에러다.
어쨌거나 올해 겨울 눈이 많이 온 덕분에 겨울 생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체육시간을 활용하여 아이스 스케이트, 썰매, 아이스하키, 스키 등 밖에서 하는 활동들이 많아졌다. 제일 신기했던 건 동네 공원들에 만들어지는 스키 트랙과 산책할 때 옆으로 쉭~쉭~ 지나가는 스키어들이었는데, 바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다.
겨울엔 겨울잠 자는 곰처럼 활동량이 별로 없었던 지라 한국에서도 스키장에 손꼽을 정도만 가 봤는데, 산책하면서 봤던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즐기는" 스키를 보니 마흔이 넘었어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좀 규모가 있는 공원에는 스키어들은 위한 길과 스키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길로 나뉘어 이용하게 되는데, 아침마다 특수한 차량이 돌아다니며 눈을 평평하게 고르고 두 줄의 선명한 트랙도 만들어 준다. 우리 동네 골프장에도 스키어들이 운동하기에 아주 좋은 긴~ 스키 트랙이 만들어져 겨울 내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걸 보았는데, 조만간 꼭 도전해 보리라.
눈 덕분에 겨울이 연장되었으니 이번 주말에도 아이들 데리고 동네 언덕으로 눈썰매 타러 가야겠다. 아쉬운 겨울 끝자락(takatalvi)을 하루라도 더 즐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