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지금 하얀 세상
2주간의 짧은 크리스마스 방학 앞 뒤에 2주를 더 붙여 초 6 둘째와 한국에 다녀왔다. 매일매일 달력에 무엇을 사 먹을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5인 이상 집합 금지와 저녁 9시의 제한 내에서 누굴 만나고 와야 할지 무려 엑셀을 이용해서 계획을 세웠다. 앞 2주는 자가격리로 날려 보내고, 남은 2주 동안 나름 알차게 보내고 오려고 몸부림쳤으나 많은 곳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기에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하는 시간 외에는 설렁설렁 걷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하며 금쪽같은 시간을 보냈다(이 기간 동안에는 카페에 앉아 있는 게 금지되었었다).
어마 무시한 공항의 방역 절차를 거쳐, 미친 속도의 방역 버스를 타고 2시간도 안되어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하고,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좁은 길을 곡예하듯 달리는 보건소 밴을 타고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구호물품 한 상자씩 품에 안고 부모님네 집으로 돌아갔던 첫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엄청 효율적인 방역시스템에 한 번 놀라고, 2시간 내내 통화하면서 달렸던 고속버스 기사님의 질주력에 두 번 놀라고, 보건소까지 눈 깜짝할 시간에 데려가 주신 분의 스릴만점 운전실력?에 세 번 놀라고, 얼떨결에 받았던 코로나 검사의 콧구멍 공격에 네 번째 놀랐으니 말이다.
꿈만 같던 4주를 한국에서 보내고 드디어 지난 주말 핀란드에 돌아왔다. 아직 이곳에 오래 살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딱히 집으로 돌아온다는 실감은 나지도 않았지만, 도착하자마자 수화물 짐을 찾기도 전 동선 중간에 들러가도록 되어 있던 곳에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았다 (한국에서 자가격리 해제 전에 한 번 더 받고, 이게 무려 세 번째 검사다.).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지난 4주 동안 한국의 확진자 숫자가 1000 명을 넘나들었으니 그 누적 숫자에 근거하여 한국발 비행기 승객들은 검사를 권장받았다. (그렇다. 이곳은 개인의 권리가 중요한 유럽^^이니 본인이 거부하면 안 받을 수도 있다. 10일 자가격리가 권장되나 위치추적을 한다거나 개인의 동선을 모니터링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검사 72시간 후 다시 검사를 받아 두 번째 음성 결과를 받은 후 10일 보다 더 단축된 도착 5일 만에 딸과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엄청 쌓인 눈이 생경하여 사진을 찍어댔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눈이 와서 딸과 오랜만에 눈사람도 만들고 눈도 치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어랏! 핀란드는 역시 눈에 관해서라면 스케일이 다르다. 자고 일어나면 치운 게 무색하게 또 쌓여있고, 새벽에 제설차가 다녀간 곳 양옆으로는 눈 산들이 쌓여있었다. 내가 진정 이런 곳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얀 눈이 덮인 세상은 낯설기만 했다. 동네의 숲이 어느 순간 스위스의 스키장이 되어 있고, 막내의 등굣길은 남극 탐험 분위기를 연출한다.
핀란드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에는 빙판 얼음 위 운전 테스트가 필수라더니, 마지막 코로나 테스트를 받으러 가느라 운전을 했을 때 작은 언덕길에서도 계속 아래로 미끄러져 되돌아가 가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이곳에서는 11월 초가 되면 대부분의 차들이 겨울 타이어로 바꾸어 월동준비를 하고, 타이어를 반드시 교체해야 하는 기한도 정해져 있다. 중고차 매매소에서 차들마다 뒷자리에 겨울 타이어 네 개가 실려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겨울이라면 겨울 타이어를 장착한 차라고 해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 어떻게 운전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핀란드는 땅덩이가 넓은 나라인데 겨울마다 눈이 쌓이는 북쪽 사람들은 적은? 눈에도 사고가 빈번하게 나는 남쪽 도시 사람들을 비웃는다고 한다.)
작년에는 눈이 이렇게까지 안 왔던 탓에 오래간만에 아이들의 겨울 놀이들이 활기를 띤다. 집집마다 있는 플라스틱 썰매, 스노우 킥보드, 포대자루의 고급 버전인 손잡이 달린 엉덩이 깔개들이 모두 등장해서 언덕이라는 언덕은 모두 썰매장으로 변신을 한다. 그런가 하면 학교의 평평한 운동장에는 눈으로 낮은 담을 쌓고(눈을 치우면 자연히 쌓인다), 물을 뿌려놓아 스케이트 장이 만들어진다. 언덕이나 숲 근처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 크로스컨트리 식의 스키를 타거나, 아이스 스케이트를 탄다. 이 곳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이스 스케이트를 취미로 배우거나 아이스하키를 접하고 있다 보니 집집마다 장비들이 넘쳐난다. 길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어린아이를 썰매에 태워 끌고 가는 부모들을 접할 수 있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다 보니 강아지들이 뿌려 놓은 곳곳의 노란 흔적들과 까만 흔적들ㅠㅠ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겨울엔 거의 이불 밖은 위험해 수준으로 살아왔던지라 나는 겨울 스포츠 하나 변변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에라도 아이들 곁에서 아이스 스케이트도 좀 타보고 북쪽으로 스키도 타러 다니고 해야겠는데, 부디 뼈가 잘 버텨 주길 바라본다.
눈은 참 마법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