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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Oct 08. 2022

빵 굽는 금요일 아침

마흔 중반의 커리어 방황기  

한동안 아주 뜸했다. 그렇다고 아래 핀란드에 오세요 블로거처럼 핀란드에 지쳐 종적을 감춘 것은 아니다. 


핀란드에 오세요....jpg - 201302~202109 판타지 갤러리 (dcinside.com)

(핀란드에 와서 얼마 안돼서 친구가 이 링크를 보내 주었는데, 핀란드에서의 암울한 앞날을 예견한 것이려나


지난 몇 달 동안 애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한국에도 다녀왔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둘이 떠났고, 독고다이 생활을 두 달 정도 하고 났더니 9월엔 새로운 동료 셋이 입사를 했다. 어느새 찬란했던 여름날은 가고 비 오고 바람 부는 전형적인 가을날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질풍노도의 오춘기를 보내고 난 지금, 마음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하다. 재택근무를 하는 금요일 아침, 바게트를 구우면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며 지난 방황의 날들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월 즈음 퇴사 예정이었던 H의 자리에 지원하고 인터뷰를 봤던 게 있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잘 안돼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더랬다. 속으로 H도 하는 일인데 나는 당연히 더 잘할 수 있지라는 약간 건방진 생각을 했었고, 한 레벨 낮은 자리에 지원하는 것이니 오래 숙성된 경험으로 정말 쉽게 될 거라 안일하게 믿었던 게 큰 착오였다. 결과적으로 딱히 와닿지 않는 탈락 이유를 들었고, 응원해 주었던 나의 매니저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으니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터뷰에서 충분히 내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도 사람인지라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을 원망했고, 더 목소리를 높여 지원 사격해 주지 않는 매니저에게 서운했다. 이후로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발 계획을 별도로 마련해 주겠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원망스러운 맘이 가득 차 있던 지라 건성으로 듣고 속으로는 계속 삐딱선을 탔다. 


한동안 quiet quitting (조용한 사직 : 딱 월급 받는 것만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몰입하지 않고 아주 기본일만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 상태로 지내며, 서유럽팀에서 잘 나가는 어린 이십 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부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가 하면 내가 핀란드에 안 오고 한국에서 있었으면 다른 또래들처럼 직급도 높이고 부서장 자리 정도는 하고 있을 텐데라며 있지도 않은 기회비용에 우울해했다. 종국엔 나이 탓을 하며 언제까지 한국이든 핀란드든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연금 받으려면 칠십은 되어야 할 텐데, 받을 연금이나 있으려나, 거창한 미래의 생각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매일 링크드인에 들어가 핀란드와 한국의 채용정보를 확인했고, 핀란드어를 모르고 영어로 HR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별로 없는 현실에 실망도 했다. 그렇다고 일이 뭐라고 가족을 버리고 혼자 서울로 갈 수는 없는 노릇, 답답한 현실에 잠자리에서 베개를 적시기도 하고, 모든 게 또 자기 탓인 것 같은 느낌에 남편은 무슨 결정을 하든 자기는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서 별 도움이 안 된다며 괜스레 역풍을 맞기도 했다.       

(회사에서 집으로 퇴근하며 찍은 사진. 친구는 이런 길로만 출퇴근할 수 있다면 매일 걸어 다니겠다고 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어느 날, 예전 회사와 지금 회사를 같이 근무했었던 (사실상 직접 같이 일한 경우는 없었고 평소에 자주 연락하거나 엄청 친하게 지냈던 동료는 아니지만, 언제든 연락하면 반갑고 인생의 가치관이 비슷해서 짧은 대화에도 통하는 느낌의 친구다.) 회사 친구와 카톡을 짧게 나누다가 팀즈 미팅을 잡고 30분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마흔 중반이 원래 진로 고민 많고 방황하는 나이이었던가(ㅋㅋㅋ), 그 친구랑 인터뷰 보고 떨어진 이야기, 친구가 병으로 고생한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 새로 시작한 취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간의 모든 일이 별 일이 아닌 게 되어 있었다. 30분의 마법 같은 대화였다. 싱가포르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그 친구도 내/외부 여러 자리가 잘 되지 않았고, 크게 아파서 병가를 냈어야 했고, 돌아와서는 매니저가 다른 일로 확장할 수 있는 개발 기회를 주었고, 요즘엔 마음을 바꿔 배움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들과 자전거 타고 테니스 치고, 아들들과 농구하면서 조직 바깥에서의 삶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거였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뼛속 깊이 새겨진 경쟁의식에 빠져 남들과 비교하여 뒤쳐진 느낌에 스스로를 내몰고 좌절한 게 아니었나. 어느 누구도 내 나이를 묻지 않고 늦었다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 스스로 부서장 직책이 아닌 것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 규정하고, 한 자리에서 같은 일을 3년 했으니 다른 자리로 옮겨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게 아니었나. 친구가 농담처럼 "내가 한 자리에서 25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롤모델이 될 거야"라고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어떻게 바라보기로 결정할 거냐 하는 마음가짐의 문제다. 그날 인스타에 나름의 생각을 끄적여 두었다. 


- 나이에 위축되지 말 것

-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것 

- ~~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만의 속도를 찾을 것 (나의 보폭으로 나의 호흡으로)

- 회사를 플랫폼으로 이용해서 계속적인 배움을 추구할 것 (자리가 아닌 "배움"에 초점을 맞출 것)

- 회사 밖의 삶에서도 의미와 재미를 찾을 것 

 

새로운 젊은 매니저가 나의 stretch assignment를 위해 열심히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고, 남편과 주말마다 치기 시작한 스쿼시는 너무나 재밌는 삶의 활력이고, 새로 입사한 핀란드 팀의 세 명이 성공적으로 잘 안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은 또 얼마나 보람찬 일이며, 끊임없이 배움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나의 삶은 나름대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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