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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Aug 08. 2024

드디어 개학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살기란...

한국은 아직 여름 방학이 한창이겠지만 6월 초 벌써 여름방학을 시작했던 핀란드는 어제와 오늘 사이 전국의 학교들이 개학을 했다 (야호. 이런 날은 기념해줘야 한다.). 이곳에서는 겨울 방학은 2주 정도로 매우 짧지만 대신 여름방학은 2달 정도로 아주 길다. 7월 한 달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정지상태라고 봐도 무방한데, 예를 들자면 우리 회사 카페테리아도 한 달간 문을 닫았고(출근하지 말란 소리) 우리가 다니는 클라이밍 짐도 여름 스케줄에 따라 일찍 문을 닫고 카페도 축소 운영했다. 핀란드의 여름은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휴가기간 동안 인턴들만 남아 일을 하는 바람에 사고가 터져도 웬만하면 오케이다.   

그런 소중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날을 잠으로 보낸 자식 1호, 집 밖에 가능하면 나가지 않는 자식 2호와 3호, 이 셋과 부대끼는 방학기간은 꽤 많은 인내심을 요한다. 오늘 글은 그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가 될 예정. 음하하하. 

일단 첫째부터 까보자. 이놈은 오늘부로 고3이 되는 아들 되시겠다. 밤에 무얼 하느라 늦게까지 깨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늦게 잠드는 걸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 깨우면 아빠가 퇴근하는 오후 4시 30분 즈음에서야 일어나는 인간이 있을 수가 없잖아? 철저히 야행성 인간인 아들은 집에 있을 때면 노이즈 캔슬링 되는 헤드폰을 끼고 다녀서 복창 터지게 하는 게 또 특기이다.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느라 귀에서 웬만하면 헤드폰을 안 떼는데 밥 먹으라고 부를 때도 못 들어서 언성을 높이게 만들고, 모두가 자는 10시 넘어 쥐새끼처럼 부엌으로 와서 부스럭부스럭 뭘 챙겨 먹는데 헤드폰을 끼고 있으니 그 소리가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없어 아주 시끄럽다. 빨래도 개어 놓으면 가져가는 법이 없고, 냉장고 물 다 마시고 물통도 안 채워 넣어 놓고, 화장실에 화장지 떨어지면 아빠한테 채워 넣으라고 말하는 호텔 투숙객 같은 놈이다. 샤워하고 나오면 발매트가 흥건히 젖어 있는데도 어디에 널어놓을 생각도 안 하고, 아침에 매번 제일 늦게 챙겨서 같이 아빠차를 타고 등교하는 자식 2, 3에게 민폐를 끼친다. 그나마 라면은 스스로 끓여 먹는다. (물론 설거지는 하지 않는다.) 미래에 함께 하실 분을 위해 우리 부부는 꾸준히 잔소리를 하고 있으나 몇 년 후 독립해서 살거나 군대에 다녀와야 좀 생활 습관이 바뀌지 않을까 포기반 기대반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핀란드에서 가장 찬란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민 왔을 땐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학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본인도 막판에 좀 정신을 차리고 도움도 받아 STEM 특성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핀란드 말도 늘고 아무래도 너드족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죽이 맞는 친구들도 사귀어서 온라인 게임, 클라이밍, 캠핑, 트레킹, 영상편집, 그리고 주말 친구집 파티 등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재밌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벌써 만 18살이 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차를 운전해서 태우러 오는 친구도 있고, 술 사주는 친구도 있고, 부모들에게도 본인을 성인으로 대우해 주길 기대한다 (권리는 요구하지만 책임은 없는). 한국과 비교해서 한 학기 늦게 시작하는 학사일정이라 애들이 숙성? 되어 그런 건지, 집/학교/학원 생활이 아닌 많은 경험들을 스스로 해서 그런 건지 아이들이 좀 단단한 느낌이 있긴 하다 (물론 한국인이 보는 핀란드 고등학생들은 외모도 이미 어른인 완성형이다 ㅎㅎ)

이곳에서는 부모들도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는 순간 스스로 자기 삶을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인정해 주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아들이 아주 듣기 싫어한다 (이것은 아마도 세대를 아우르고 만국공통일 듯.. 나 역시 잔소리는 듣기 싫다.)  

너무 노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곳의 대학 입시는 또 딱히 내신 성적을 보지 않고 수능 점수와 대학 전공마다 따로 보는 입학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정말 불안한 "공부 안 하는 생활"이다. 만트라처럼 너의 인생이니 잘 생각하면서 살아라를 중얼거린다. 

몇 년 전부터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고3이 되는 개학 바로 전 날 아이들이 학교 근처 모처에서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야외에서 자고 학교로 바로 등교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젯밤 아들은 텐트를 챙겨 집을 나섰다. 학교가 오전 11시에 시작한다고 해서 잘 일어나긴 했겠지만 학교는 잘 갔는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들 욕을 이곳에다가 한참 적고 나니 쌤통이긴 한데 누워서 침 뱉기라 어서 철들고 성숙한 하나의 인간으로 자길 잘 돌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며 마무리해야겠다. (자식 2, 3은 딸들이라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많이 욕할 거리는 없다 ㅋㅋ)


*사진은 핀란드 땀뻬레에 있는 무민 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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