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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피터 Jan 27. 2021

커피 한 잔에 담긴 세계

커피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즐겨 마시던 달달한 믹스커피를 가끔 마셔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2003년, 드디어 청소년 딱지를 떼고 대학생이 되었고, 학교 주변의 수많은 카페들을 신기한 눈으로 자주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카페 테이블마다 모여 앉아 깔깔깔 이야기를 나누거나, 나름의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조몰락조몰락 거리며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커플들도...


난생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는 진심으로 뱉고 싶다는 생각이 날 정도로 '썼'다. 요즘의 커피들은 쓴맛 뿐아니라 산미로 표현되는 플로럴하고 쥬시한 맛처럼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카페는 까맣게 볶아 탕약처럼 쓴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설탕은 미개한 것들만 넣는 거야 라는 태도로 홀짝홀짝 견뎌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내 고향 대전에는 스타벅스가 2004년 처음으로 들어왔다.)


커피가 '맛있다' 고 처음 느꼈던 건 학교 선배를 통해 알게 된 핸드드립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에서였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브라질 등 다양한 산지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커피는 당연히 국내산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전부 해외에서 수입된 것이었을 텐데, 당시만 해도 보통의 카페들은 커피 원산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내리는 커피에는 단순히 '쓴' 맛이 아닌, 뭔가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달큰하고 향기로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커피를 추출하는 속도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비해 상당히 느리지만, 그 느림의 시간이 오히려 한 잔의 커피를 더욱 기대하게 해 주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내려마시며 새삼 이 한 잔 속에 수많은 노력과 기대하는 마음들이 담겨 있음을 생각했다. 저 멀리 에티오피아의 작은 마을 '이디도 웨기다'에서 카사훈 제보라는 농부와 마을 사람들의 땀방울과 기대감. 좋은 품질의 커피를 기대하며 커피를 주문한 국내의 수입업자들. 아프리카에서 이곳까지 커피를 운송한 수많은 사람들. 생두를 전달받아 여러 방식으로 커피를 볶는 로스터들. 그렇게 볶인 커피를 구매해서 오늘 아침 느릿느릿 추출한 이 한 잔의 커피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기대감이 연결되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커피'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관계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긍정적인 정서를 마시는 것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수확하며 느꼈을 농부들의 행복감과 오늘 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나의 행복감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커피뿐만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어쩌면 그렇게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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