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는 이유

말은 결여를 말한다.

by 인레트르

두 여성이 전화로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자세한 얘기는 우리 만나서 하자.”

사람들은 늘 대화합니다.

“난 이 세상과 단절하고, 사람들과 절대 대화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사실은, 세상 혹은 자기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끊임없이 대화를 하려는 걸까요?

“우리는 대화가 정말 잘 통해. 역시 내 친구야.”


“너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아. 우리 자주 얘기하자.”


“오늘 협상은 잘 이루어졌습니다. 각국 정상들은 이번 협상을 계기로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정말 대화가 잘 통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어서,

신뢰가 쌓이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소통은 오해다.”


라캉의 통찰은 대화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이해하기 때문에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오해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말은 우리의 마음을 전부 전달하지 못합니다.
말속에는 우리가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의도한 것이 정말 내 욕망이었는지도,
그 말이 타자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정말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데...”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


이처럼 우리는 상대가 내 마음을 제대로 모를까 봐,
계속해서 설명하고, 덧붙이고, 같은 말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합니다.


각국의 외교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과 참모들이 상대국을 의심하기에,
때로는 유별나다 싶을 만큼의 의례적인 행사와 말들을 통해 신뢰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합니다.


우리는 말하지만,
말은 늘 우리보다 앞서 말하고,
때로는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이 앞서 말합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우리는 말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하죠.

"왜 내가 그런 말을 했지?"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오해가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를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오해의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제발 나를 알아줘’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만약 대화가 완벽하게 전달되고,
이해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침묵.
더 이상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오해는,

우리가 타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틈을 열어줍니다.
그 틈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결여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끌어 줍니다.

라캉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모든 소통은 오해다.”


오해가 우리를 다시 말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꿈꾸는 완전한 대화는 침묵을 낳지만,
오해는 소통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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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 글


기표와 기의가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기의를 보다 정확히 전달하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하기는 본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언어를 통한 소통은 언제나 오해를 수반합니다.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로 인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는 해석의 간극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오해는 실패라기보다 무의식이 작동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종종 의도하지 않은 말이 의도한 말보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무의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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