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트(Fort) - 다(Da)

기표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by 인레트르

아이에게 엄마는 늘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엄마는 아이의 곁에서 자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떠난 시간,

방 안의 공기는 아이에게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견디지 못한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뜨립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작은 실패 조각을 끈에 묶어 저만치 던졌다가 다시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마치 실수처럼, 아니면 고통을 덮기 위한 무의식의 우연처럼 시작된 놀이였습니다.


“없다(Fort)”


“있다(Da)”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아이는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 아이의 할아버지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단지 놀이처럼 보이는 이 반복을, 불안을 기표화하는 상징작업으로 해석합니다.

아이의 눈앞에 엄마는 사라졌지만, 말을 함으로써 엄마의 부재라는 실재계의 침입을 아이는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없다(Fort)-있다(Da)” 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가 시작한 기표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말로 다룰 수 없는 고통은, 종종 반복이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무의식은 그렇게 우리 곁에 머뭅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종종 불안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불안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땅 속에 묻힌 고대 유물에 비유했습니다. 고대 유물(무의식)이 땅 속에 있으면 소실되지 않지만, 일단 발굴되면(의식화, 상징화) 그것은 비와 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로 조금씩 조금씩 사라집니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강조했던 무의식의 의식화입니다.

그리고 라캉은 이를 두고 ‘기표가 실재를 봉합한다’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명제를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기표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기표는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나의 말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고통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다시 오더라도 나는 그것을 내 말로 불러올 것이다.”

------------------------------------

# 도움 글: 실재계


실재계(real)는 라캉의 세 가지 범주(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중 하나입니다. 실재계는 기표화되지 않은 것, 즉 말로 표현될 수 없고 상징화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고통, 공포, 충동과 같은 형상 없는 무언가로서 주체의 언어적 구조 바깥에 머무르며, 반복적으로 주체를 위협합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실재계는 에로스(생명충동)를 해체하는 타나토스(죽음충동)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전 05화두 아이의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