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를 위한 공감 활용법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화려한 능력이나 남다른 재능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책인데요.
그 안에서 유독 오래 곱씹게 만든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감은 남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행동이라는 말이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공감이라는 건 보통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라고 배워왔으니까요.
그런데 책에서는 이 공감을 ‘나르시시즘을 이해하는 연장선’에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원합니다.
관심은 곧 사랑이고, 인정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명예이기도 하죠. 이건 노력해서 생긴 욕망이라기보다, 그냥 인간의 본성에 가깝습니다.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사이에서도 관심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고, 학급 안에서도 더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연인 관계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우리는 늘 더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길 원합니다.
문제는 이 관심이라는 것이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늘 딜레마가 생깁니다.
‘나는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나는 뛰어난 사람인데 왜 충분한 인정을 못 받을까.’
사실 아주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한때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절을 경험합니다.
아기였을 때는 울기만 해도 누군가가 달려왔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받았고,
불편함을 표현하면 곧바로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말하자면 완벽한 존재였죠.
하지만 성장하면서 상황은 바뀝니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엄마와도, 아빠와도 다른 ‘독립된 개체’가 됩니다.
울어도 바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고,
불편함을 스스로 견뎌야 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심지어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형제와 나눠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립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세상은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다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불편함을 견디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장치가 필요해집니다.
책에서는 그것을 ‘자아’라고 설명합니다.
자아란, 남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지켜주는 힘입니다.
밖에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공감이라는 건,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단단하게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 다시 말해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화하지 못한 경우죠.
이런 감정은 보통 꼬인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아니, 네가 감히 나를 이렇게 무시해?”라는 식의 가스라이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대를 조종하려 하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적인 사고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돼”라는 식으로요.
문제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고객일 수도 있고, 상사나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과 엮일수록 주변 사람들은 점점 지치고, 관계는 소모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사람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어요.”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는 이 지점을 자존감, 정확히는 ‘자아 형성’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 욕구를 스스로 소화하고 지켜낼 자아가 형성되지 못하면 그 결핍이 타인을 향한 짜증, 불만, 공격성으로 튀어나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까다로운 고객, 유독 예민한 상사, 불평이 많은 동료들도 전혀 다른 얼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그 해결책을 ‘공감’으로 풀어보자는 제안이었거든요.
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대를 위해 참아주는 공감”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공감에 더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고객이나 상사가 별다른 이유 없이 트집을 잡고, 피드백이 아닌 불평을 늘어놓는 상황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나?”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했지?”
하지만 공감을 다른 방향으로 사용해 보면 생각의 결이 달라집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안의 결핍을 스스로 다루지 못해서 이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수도 있겠구나.’
‘나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의 자존감 구조에서 나온 반응일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바라보는 순간, 상황은 달라집니다.
상대의 말과 태도를 그대로 내 자존감에 꽂아 넣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거리가 생기고,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분노 대신 연민이 생기기도 하고,
최소한 “내가 못나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아닐까”라는 자기혐오로 빠지는 걸 막아줍니다.
이게 바로 책에서 말하는 공감의 진짜 역할이었습니다.
공감은 상대를 위해 무조건 참아주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의 행동을 인간 본성의 맥락에서 이해함으로써
나를 보호하는 심리적 장치라는 것.
그래서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가 현장에서 늘 외치는 “공감하세요”라는 말이
어쩌면 너무 가혹하게 전달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항상 이해해줘야 하는 역할’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더 소진시키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공감합니다.
그들은 남을 위해서만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상대를 객관적인 인간으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 자체가 마음을 훨씬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감은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고,
약함이 아니라 굉장히 전략적인 강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혹시 우리가 누군가의 태도에 너무 쉽게 상처받고 있다면,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 사람은 지금 어떤 결핍 속에 있을까?”
한 번쯤은 이렇게 바라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 시도가, 상대를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요.
PROJECT KEEPGOING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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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감상평과 의견도 감사히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