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희씨 May 07. 2019

'여자문제' 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미투의 정치학> 가운데 <그남자들의 '여자문제'>

‘미투’에 가짜와 진짜가 있을 수 있을까? 왜 심석희 선수나 서지현 검사의 경우는 명쾌했는데 김지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을까?! 나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는 처음부터 확신을 갖지 못했다. 피해자 김지은이 불륜녀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바로 문제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위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미처 생각도 못했고,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무지했다. 부끄럽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안희정 사건을 두고 참 말들이 많다. “안희정은 진짜 나쁜 놈이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김지은이 계속 그 일을 한 것은 또 다른 욕심이 있어서다, 알려지지 않은 게 있을 거다, 진짜 피해자는 안희정의 부인이다…” 이런 말들이 내 주위에서도, 인터넷 댓글에도 넘쳐났다. 안희정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또 어땠나.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선정적이고 흥미 위주의 보도들을 쏟아냈다.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안희정 사건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 준 글을 만났다. 미투의 정치학이라는 책에 실린 권김현영의 글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이다. 여기서 그 남자들은 이른바 한국 진보 남성 권력을 말하며, ‘여자 문제’는 바로 미투를 말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소위 진보 남성 엘리트들이 미투를 “여자 문제”라는 프레임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유를 해석한다.      


그 남자들은 미투를 성폭력 문제로, 남성 기득권 권력의 문제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여자 문제로 이해한다고. 이런 현상은 386세대 여성들에게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왜 이제 와서 피해자라고 하느냐며 피해자를 혐오하기까지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뜨끔했다. 난 386 진보 여성도 아니지만 김지은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진보 엘리트들은 자신이 바로 약자거나 피해자가 아니라 전위로서 민중을 지도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안희정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여성보다는 오히려 안희정을 지키려고 나선 부인에게 더 쉽게 동일시한 건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 문제라는 프레임에 담긴 또 다른 문제는 이성애 남성의 성적 욕망을 그 자체로 정상적인 것으로 승인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이 설 자리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피해자 김지은에게 강조했던 피해자 다움, 정조를 물었던 1심 재판부의 시각이 바로 그렇다. 잘못은 안희정이 했는데 안희정의 잘못을 단순히 여자 문제로 몰아가고 피해자를 마녀사냥하듯 몰아간 여론도 마찬가지다.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는 안희정 사건 재판을 방청한 기록이다. 저자 권김현영은 “법정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아 사건을 서술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대한 자신의 잠정적 의견도 다시 검토해보겠다”라고 밝힌다. 재판 방청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강고한 카르텔을 비집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틈새를 찾아보고 싶었다.”고도했다. 저자는 재판 과정 전체를 지켜보면서 위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안희정 쪽 변호인단은 사건을 최대한 불륜으로 몰아갔고, 피해자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장했다고 썼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나는 감탄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전개도 놀라웠지만 재판 상황을 포착한 저자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문장들은 불륜이 아니라 폭력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이다. 저자의 눈으로 ‘발견’한 위력의 순간들은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권김현영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이 증언할 때마다 기침을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해자들이 기침을 할 때마다 피해자의 어깨가 긴장해 올라갔다고, 위력을 가진 가해자는 기침 하나만으로도 입을 다물 수 있게 했던 걸 알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고.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정말 섬뜩했다.    

  

저자는 안희정이 재판에서 던졌다는 단 한마디 바로 “어떻게 지위가 타인의 인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라는 ‘비문’의 상징성도 고발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발언 기회를 단 한 문장의 비문으로 끝내버린 안희정의 이 말은 오히려 위력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라고. 법정이 얼마나 안희정에게 안온한 공간이었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재판을 지켜보며 “안희정의 얼굴에는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여자 문제일 뿐이며 이것은 남자라면 모두 이해할 만한 일이지 않느냐는 표정이 새겨져 있었다,”고 관찰한다. 나는 이런 저자의 탐색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찜찜한 채로, 아니 무지한 채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여자 문제’라는 프레임에 깜빡 속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미투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만 해왔다.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는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공부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걸 일깨운 소중한 기록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역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