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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stle Nov 27. 2017

푼힐을 향해 걸어가기

3박 4일 첫 트래킹의 시작

셋째날의 여정

10월 5일 아침 트래킹 시작
노선: 포카라 - 비레탄티 - 울레리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호텔 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골목길의 낮은 주택들 사이로 잎이 넓은 식물들이 빽빽하게 얽혀 있었고 안개 사이로 설산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른 호텔에 묵고 있는 사람들도 옥상 테라스에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녕 내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바닥을 내려다보니 8차선 도로 대신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고소한 카페라떼에 노른자 두개가 들어있는 달걀후라이, 담백하게 익힌 감자와 짭조름한 소세지, 토스트를 먹었다.
짐을 가지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어제까지 입고 있던 옷들의 빨래를 부탁하고 트래킹에 불필요한 짐들 몇 개를 맡겨 두었다. 아침에 호텔 프론트에서 인드라 아저씨를 만나 가기로 했는데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지프차 몇 대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시간 관념 없이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이 네팔리 타임이라고, 소파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들에 눈길을 돌리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변신> 소설을 발견했다. 책 사이에는 손수 그린 벚꽃 그림이 끼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이곳저곳 살펴보니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루종일 수영을 했다. 구름을 보고. 밤의 끝엔 나를 역겨워했다.’



타라 호텔. 아담하고 깔끔한 곳이었다.


신이 난 동네 강아지들


하-품-


누가 왔다 갔을까



아저씨는 택시를 타고 오셨다. 아저씨께 우리의 짐이 담긴 가방을 드리고 함께 택시를 타고 나야풀까지(아마도) 갔다. 가는 길에 신이 나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도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많이 봤다. 길가에 누워 있는 개들, 쓰레기를 뒤지는 갈색 소, 공을 주고받는 꼬마아이들, 풀을 뜯는 양들, 짐을 한가득 실은 당나귀들. 어쩌면 동물과 함께 사는게 당연한 세상인데, 내가 사는 공간은 왜 그렇지 못한걸까? 

동네의 풍경들이 지나가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긴 시간동안 인드라 아저씨와 택시기사 아저씨가 대화를 나누셨다. 네팔어로 하는 대화라 알아듣진 못했지만 인드라 아저씨가 하고 싶은 말씀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먼지가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계속 달리다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지점부터는 택시와 헤어지고 지프차를 타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늦게 출발한 편이라 탈 수 있는 지프차가 딱히 없었다. 아저씨는 동네 주민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와 봄이는 주변을 구경하고 신기하게 생긴 오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현지인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명의 어린 네팔 아이들, 엄마들과 함께 차를 탔다. 새까맣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수줍어 했다. 자리가 별로 없어 인드라 아저씨가 아이 중 한명을 안고 함께 탔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서 전해줄까 생각했는데, 갤럭시 최신형을 꺼내 쓰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산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많이 거칠었다. 곳곳에 모래와 돌이 가득했고 경사도 엄청나서 온몸이 흔들렸다. 직접 걸어 올라가는 트래커들에게 먼지바람을 한가득 주고 지나갔다. 하지만 차안의 모두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산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계곡과 언덕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얀 말이 풀을 뜯고 있었고 한 여행자가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포카라 동네 길거리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있는 소. 낯설었다.


택시 안에서 본 알록달록한 버스. 왜 울고 있나요..


시원하다


산에 올라갈 채비를 하는 당나귀들


아름다워라



비레탄티(Birethanti)에 다다랐을 때 차에서 내렸던 것 같다. 이제 정말 트래킹의 시작이다. 지프차 위에 묶어두었던 가방을 등에 맸다 (지프차가 산을 올라가는 동안 차 위에도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등산가방의 가슴끈과 허리끈을 꽉 조여매고 스틱의 길이를 조절했다. 본격적으로 채비를 하고 산에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인드라 아저씨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강하고 더워서, 어두운 옷을 입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산은 처음 오르기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어느 정도 오르게 되었을 때는 적응이 되는데, 처음의 몇 분이 제일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3박 4일이나 지속될 여정을 고작 이걸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로 된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땀을 많이 흘리고 말이 없어졌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롯지에 들어갔다. 


지치고 목이 말라 콜라를 마셨다. 시원하고 톡 쏘는 콜라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때의 느낌이란! 점심으로는 달밧과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 치즈 스파게티를 먹었다. 식탁 옆 창가 밖으로 쾌청한 하늘과 푸른 산이 보였다. 들판을 뒤덮은 기다란 풀이 바람에 날려 살랑대고 있었다. 작은 슬레이트 지붕에는 염소의 것으로 보이는 털가죽들이 널려 있었다. 갓 벗긴 후에 햇볕에 말리는 듯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스틱 길이를 다시 조절하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오르는 돌계단에는 수많은 가축의 똥들이 널려 있었다. 이를 피해 조심히 올라가는 게 주안점이었다. 똥들의 주인들도 보았다. 짐을 실은 말들의 딸랑종 소리가 들리면 길가로 비켜 서 이들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인드라 아저씨와 나


맛있는 달밧을 먹었던 롯지



계속 올라가다가 목이 말라, 보이는 롯지와 가게마다 들러 탄산음료를 사 마셨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아까 점심을 먹던 롯지 말고는 전부 미지근한 물만 팔고 있었다. 작은 대야에 담가 둔 스프라이트를 사 마셨다.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는지. 봄이와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이 위기의 시작이었다. 
한 롯지에 들러 환타를 사 마시는데, 시원하게 들이킨 순간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7년 전 배드민턴을 치다가 점프를 한 순간 갑자기 심장이 급하게 뛴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너무 많이 올라와서 주변에 병원도 없는데 어떡하지’,‘이렇게 약한 내가 트래킹을 4일간의 트래킹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아저씨와 봄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는 롯지의 벤치에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땀에 젖은 몸이 점점 추위를 느껴 바람막이를 덮었다. 

30분 정도를 누워있었을까, 봄이와 인드라 아저씨는 하산하고 있던 네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0살 남짓한 청년이었는데, 포카라에 살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산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 했다. 푼힐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자기는 푼힐이 추운줄 모르고 올라갔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아픈 이유는 아마 탄산음료에 섞인 카페인 때문일거라 했다. 앞으로 올라갈때는 절대 탄산을 마시지 말고 과일주스나 물을 마시라 당부했다. 긴 시간을 쉬니 ‘탄산병’의 증상이 사라졌다. 몸을 다시 단장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심호흡도 해 가면서 조심히 올랐다.


 

들어는 보았는가 탄산병..



산행길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있었다. 폭포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해졌다. 좋은 날씨와 회복된 몸에 감사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마스떼 인사를 했다. 산이 더없이 편하게 느껴졌다. 인드라 아저씨는 한참을 먼저 올라간 뒤 바위에 앉아 늦게 뒤따라오는 우리를 기다리셨다. 아저씨는 이 트래킹 이전에도 더 긴 일정을 소화하고 며칠 쉬지 않은 채 바로 오셨는데 우리보다 훨씬 걸음이 빨랐다. 몇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봄이와 나의 페이스가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계속 올라가다가 크기가 조금 큰 롯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Ulleri라 쓰인 간판이 보였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앞서 가던 금발의 여행자는 놀란 눈으로 ‘이게 정말 울레리 맞아?’라고 재차 물어보며 행복해 했다. 뒤따라 오던 사람들 모두 웃었다. 

롯지는 울레리 초입에 있는 Pratap 게스트하우스였다. 인드라 아저씨의 친구분이 하시는 곳이었다. 원래 친구였는지 아니면 수없이 트래킹을 하다 보니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방에 짐을 풀고 흙이 묻은 등산화를 벗었다. 땀에 찌든 채 드러누웠다. 첫날의 트래킹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해가 질 무렵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봄이와 저녁 메뉴를 정한 뒤 롯지 주변 산책을 했다. 등산화 대신 맨발에 쪼리를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마을의 여러 롯지들은 지친 여행자들을 위해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이끼가 뒤덮인 돌담벽과 지붕을 구경하고 다른 집 마굿간에 있는 물소와 이웃집 닭들을 보았다. 닭들은 신기한 음악이 나오는 집 앞으로 모여서는 문 틈으로 얼굴을 넣어보고 있었다. 



느린 우리와 속도가 안맞아 저만치 앞서가신 인드라 아저씨


등에 염전을 만들어냈다..!


여유롭게 기다리시는 인드라 아저씨


포카라에서 산 안나푸르나 트래킹 지도를 입은 봄이. 우리가 울레리에 도착했어!


우리가 묵은 푸른색의 롯지.


동네 마실나온 닭들



롯지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파하고 봄이와 둘이 옥상에 올라가 달과 별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설산이 빛나 보였다. 


방에 돌아와 그림을 마저 그리고 잠을 잤다. 고생 많았다.
꿈에서는 서울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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