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게이 사우나에서 인간의 욕망과 고독을 탐험하다

XR 작품 <Traversing The Mist>

by 문요



<Traversing the Mist>는 대만의 감독 CHOU Tung-Yen의 Mist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대만의 한 게이 사우나를 찾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랑과 고독의 경계 어딘가에 놓인, 관능적인 꿈의 풍경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XR 경험"

초현실적인 게이 사우나 안에서, 당신은 어느새 젊은 대만 남성의 몸으로 존재하게 된다. 욕망과 설렘, 두려움으로 엮인 이 꿈결 같은 세계를 탐험하며, 사우나를 찾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친다. 그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층과 복도, 방을 하나씩 지나갈수록 미로의 각 층위는 당신의 뒤에서 되돌릴 수 없이 풀려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은 사라진다.

<Traversing the Mist>에서 CHOU Tung-Yen은 실시간 XR 기술과 내러티브의 경계를 확장한다. VR360 영화 <In the Mist>를 6 DoF 멀티 유저 경험으로 확장한 이 작품은 2024년 프랑스 파리 뉴이미지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같은 해 칸 영화제의 Immersive Competition 분야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Very Theatre의 작품 소개글 중



티저 영상을 먼저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qaOpH8ILFH8



2025년 12월, 일본 요코하마의 퍼포밍 아트 페스티벌인 YPAM에 참여했을 때 체험한 작품입니다. 증기로 가득한 대만의 어느 사우나를 탐험하며, 한 인간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고 돌아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IMG_1225.JPG
IMG_1226.JPG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여러명이 함께 걸어다니면서 체험할 수 있다.


이 이머시브 작품은 최대 3명이 동시에 체험할 수 있었고, VR기기를 착용하고 핸들을 이용해 간단한 조작을 합니다. 체험 시작 전에는 VR 기기 조작법을 안내하는 짧은 세션이 있었어요. 양손 검지로 물건을 집어 귀에 대기도 하고,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을 여는 연습을 해보기도 합니다. 초반에 이렇게 알려주니 미리 연습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터랙션 테스트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등장하고, 세 명이 다 탄 후에야 문이 닫히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낡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거울이 있고,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비칩니다. 어느 젊은 남자가 양복을 입고 서 있죠. 세 명의 얼굴은 모두 똑같은데 덩치와 키는 제각각입니다. 초반의 그 이미지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체험 전 VR 캘리브레이션(가상현실(VR) 장비의 추적 시스템이나 디스플레이 설정을 사용자의 신체 또는 실제 환경에 맞게 정확하게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같은 얼굴임에도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모두 같은 얼굴에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문이 열리면 탈의실이 나타납니다. 캐비닛을 열고 열쇠나 라이터 같은 물건을 집어 귀에 대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어느새 하얀 팬티만 입은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팬티만 입은 같은 얼굴의 남자 셋이 어색하게 서 있고, 주인공의 쓸쓸한 독백이 들려옵니다.

문이 열리면 샤워장이 펼쳐집니다. 김이 자욱한 샤워실 안에는 주인공과 같은 얼굴의 남자들이 샤워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이동하면, 어두운 방 안에 흐릿한 네온사인이 보이고, 큐비클 같은 상자 속에 사람들이 들어 있습니다. 라이터로 비추어 보면, 그 얼굴은 또 나입니다.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침대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공허한 눈빛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있습니다. 은밀하지만 쓸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비밀을 엿보듯 공간을 떠돌다 보면, 바닥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이었던 공간은 점점 추상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작은 사우나 공간은 배가 되어 밤하늘을 유영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나’의 몸이 떠오릅니다. 작은 내가 거대한 나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고 만지는 것은 VR이기에 가능한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몸속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수많은 사우나 캐비닛 열쇠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사우나를 찾은 횟수이기도 하고, 그곳을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이름과 얼굴이 아닌, 익명을 상징하는 요소 같기도 하고요.


거대한 '나'의 몸을 마주하는 장면


거대한 몸속에 수많은 열쇠들이 매달려 있다.



별처럼 빛나는 열쇠들을 바라보다가 상대방의 얼굴을 문득 바라보면, 쭈글쭈글 늙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과 발, 얼굴에는 주름과 검버섯이 피어나고, 결국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누군가의 성욕과 사랑, 외로움은 쉽게 양지로 드러나지 못한 채 은밀한 공간을 전전하다 끝나는 것일까요. 이는 성소수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를 맺길 바라고 누군가의 체온을 원하는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여러 작품을 계속 감상하다 보면, 무엇이든 내용이 외양보다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가보지 못하는 공간, 과거와 미래, 환상의 세계, 사후 세계, 소수자의 세계.. 그러한 공간을 탐험하고 마음속에 오래 남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게 XR 작품의 매력인 듯합니다.


VR 헤드셋을 벗은 뒤에도 작품 속에서 보았던 이미지가 한동안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나이가 들어 잔주름이 생긴 나의 얼굴을 상상하기도 했고요.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지는 게 인생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Director | CHOU Tung-Yen

Production | Tung-Yen CHOU for Very Theatre
Executive Producer | Yi-Zhen CHEN, Ming-Chieh LIN


Animation | Li-Rong LIN

Sound Design | LIAO Hai-Ting, DEAN Chi-You, HO Kung-Shan
(Center for Sound Arts and Acoustics Research, National Taiwan University of Art)

World Sales | Very Theatre

Technical Artist | Pin-Qi WANG, Pei-Ya YANG
Developer | Yi-Hsuan CHEN
English Voice Actor | Berto (Heberto Josafat Orozco Jiménez)


시간 | 30분

언어| 영어

포맷 | 6 DoF Mobile VR





비하인드 제작 영상입니다. 제작 의도와 작업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9hy44oU_94



[이미지 출처]

- vm theatre studio website

https://www.vmstudio.tw/vm-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