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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stle Mar 18. 2017

첫서핑 -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거지

양양에서 첫 서핑을 배우다

첫번째 서핑 트립

2016년 5월 14일 토,일 



트립가기 며칠 전에 본 파도 차트. 당일에 가보니 거의 없었던 것 같다. @Windfinder





서핑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활동적인 운동을 하고 싶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사내에 서핑 동호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팔 여행도 그랬다. 봄이와 언젠가 이야기를 하다가 '갈까?' '가자!' 며 즉흥적으로 정했다.)

사실 내가 아는 서핑은 오래된 노래방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 뿐이었다. 구름 한점 없는 날씨 좋은 바다에서 큰 파도를 타는 금발의 청년들. 그들은 컴컴한 지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5월 13일 저녁, 다음날이 첫 트립인데 서핑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막막했다. 뭐라도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서핑 커뮤니티에 있는 서핑 용어들을 살펴보았다. 테이크오프는 어떤 자세로 하는지, 리쉬가 무엇이고 패들링은 무엇인지 등등.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초보자를 위해 잘 설명된 Besurfer 사이트:  http://www.besurfer.co.kr/info_beguide/35583 )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볼 겸 영화 <소울서퍼>도 보았다. 베서니 해밀턴이라는 하와이 서퍼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하지만 양양 바다에도 상어가 있지 않을까, 바다가 깊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게 되었다. 서핑하러 가는 거 괜찮겠지...?

서핑하러 가는 거 괜찮겠지...?


다음날 아침 일찍 회사 앞에 모여 버스를 탔다. 무슨 짐을 챙겨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바리바리 다 챙겼다. 강원도 날씨를 예측할 수가 없어서 네팔 여행때 입었던 폴라폴리스 집업과 얇은 패딩도 챙겼다. 이 짐을 들고 등산을 가도 될 것 같았다. 큰 가방을 버스 옆 자리에 두고 출석체크를 한 뒤 출발했다.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양양 동산리에 있는 힐비치 서프샵에 도착했다. 5월의 바다를 처음으로 보았다.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버스에서 내려 짐을 들고 샵으로 갔다. 토르라는 커다란 골든레트리버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머리가 길고 새까만 사람이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사장님이었다. 탁자 위에 짐을 놓고 멀뚱히 서 있다가,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다. 점심으로 핫도그를 먹고, 처음 온 사람들끼리 웻수트를 빌려 입고 강습을 받았다. 

먼저 모래밭에 앉아서 바다와 서핑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 수업을 들었다. 이안류는 어떤 것이고 어떤 지점에서 서핑해야 좋은지.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며 패들의 중요성 등등. 모두 처음 들어본 것이라 생소한데다 잊고 싶지 않아서, 도시로 돌아온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메모를 써 두었다. 다시 보니 재미있다. 





서핑 첫수업 - 잊지 말아야 할 것들 


1.파도가 밀려나오는 곳과 이안류 구별하기

이안류는 깊이 패이는 곳이고 깊은 곳으로 떠밀려 가기 십상이므로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서 서핑하기. 하지만 잘하게 되면 이안류 이용해서 깊은데로 쉽게 이동함


2.자세 

롱보드에 엎드려 눕되 가슴까지는 조금 들어서 매번 바다의 파도를 확인한다. 파도를 향해 바라보고 있어야 함. 뒤에오는 서퍼와 부딪힐 수 있으므로. 균형을 맞춰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한다.  

파도가 오기 시작했다면 지나가기전에 열심히 패들링을 하면서 해안으로 나간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일번. 양손으로 보드를 잡고 코브라 자세를 취한다. 

이번. (레귤러일때. 구피는 반대) 오른발을 보드 방향과 약간 수직이 되게 굽혀서 앞에 놓고 두 팔과 오른발이 삼각형이 되도록 만든다. 그렇게 세 꼭지점이 무게 중심을 안정적으로 이룰 때

삼번. 팔을 떼고 왼발을 오른발의 앞에 위치시키고 어깨넓이보다 넓게 선다. 절대 다리를 피면 안된다. 피는순간 균형을 잃지. 굽힌채로 파도를 타면 된다. 


롱보드는 파도와 언제나 수직으로 하여 파도에 휩쓸려 두들겨맞지 않게 주의해야 함. 리쉬를 오른발에 착용하고 물에 빠지면 리쉬를 당기면 좋은데 적응되면 안하는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패들링! 보드에 양팔이 거의 붙어서 휘어지지 않게 팔을 휘저어야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팔은 쭉 뒤로 뻗어야지 잘 나간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천천히 깊게 하는 것이 더 낫다. 


다음번에는 어떤때에 파도가 오는지 몸으로 느껴보고, 파도가 닥쳤을때 눈 감지 않아보는 연습하기. 

패들링해도 팔이 안아프게 평소에 푸시업같은거 연습하기. 깊은물에 들어갔을때 당황하지 않기. 바다수영 조금 연습해보기. 





기본적인 이론 수업을 마친 후 스폰지 보드에 누워서 테이크 오프 연습을 했다. 입문자용 삼단 자세를 배웠다.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 자세였는데, 나중에 푸시업 연습으로 팔힘이 좀더 세지면서 자세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준비운동을 하고 발에 리쉬를 감은 후 무거운 스폰지보드를 골반에 걸치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모래사장과는 달리 물이 차가웠다.

그날 장판에 가까운 0.3미터 정도의 파도여서 서핑이 처음인 우리는 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강사 선생님이 뒤에서 직접 밀어주셨다. 인간의 힘을 받아 테이크 오프 도전! 몇번의 실패 끝에 세번 정도 테이크오프에 성공했다. 거의 깨지는 파도에서 타긴 했는데 일어났을 때의 묘미란. 자세히 모르지만 이 맛에 타는 것인가! 깨지는 파도 위에서 만족했다. 다행히 바다도 깊지 않고, 파도가 거의 없어서 겁먹지 않고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이제서야 알다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바다는 무릎까지만 담가보던 내가, 목이 잠길 정도까지의 물 속에 들어와서 생애 처음으로 파도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고 밝았다. 햇살이 눈부셔서 눈을 찡그린건지 몰라도 다들 웃고있는 것만 같았다. 그 속에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파도를 기다렸다.  대여해 입은 웻수트가 컸는지 나중에는 오들오들 떨며 서핑을 했다. 추위에 못이겨 포기하고 수건을 뒤집어 쓴 채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서핑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선스틱을 클렌징 티슈로 닦아내고 웻수트를 고생하며 벗겨냈다. 그리고 뽀송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해물 플래터와 닭볶음탕 등등. 술도 많이 먹고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놀았다. 바닷가에 오니 확실히 엠티에 온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바다를 보며 먹는 조식은 정말 끝내줬다. 커피동호회 분이 직접 내려주시는 드립커피도 맛있었다. 아침을 먹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인근 마을을 산책했다. 죽도 바다에는 아침부터 서퍼들이 많이 있었다. 해변에서 다시마 같은 걸 캐시는 할머니와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일요일은 파도가 없어서 일찍 집에 돌아갔다. 



이국적인 죽도 풍경. 할머니는 무얼 캐고 계신걸까



오길 잘했다. 두발 자전거를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탔을 때가 기억났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거지? 라는 생각. 좋다. 다시 오고 싶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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