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낯선 곳으로
둘째날의 여정
10월 4일 아침 카트만두 공항 도착 - 경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 - 차를 타고 포카라 호텔과 시내로
카트만두 공항은 버스 터미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고 복잡하고, 여행자들과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수화물을 찾는데 몇십분이 지나도 찾을 수 없었는데, 수화물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너희들의 짐이 있는 곳을 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바닥에 한데 뭉쳐있는 짐들 사이에 우리 배낭이 섞여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 우리의 짐을 들고 공항 로비까지 들어다주곤 돈을 달라고 했다. 너 돈 참 쉽게 버는구나. 미리 알아차릴걸 그랬지만, 너무 늦어서 그냥 돈을 쥐어주었다. 환전소에서 네팔 루피로 몇푼만 환전했다. 캐리어로 끌던 짐을 배낭에 넣고 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짐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쑤셔넣어서 간신히 들쳐 매고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몇걸음 안되는 곳이라 믿었는데 국내선 비행장이 생각보다 멀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덕을 어느 정도 올라가 주차장을 건너 비행장으로 향했다. 아직 덜 지은 듯한 공사장 분위기의 공터를 지나 문을 통과하면 보안검색대가 나왔다. 무거운 가방을 다시 맡기고 포카라로 향하는 경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땀에 찌들어 시들시들해진 채로 기다리며 비행기가 혹시 오진 않았을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작은 트럭을 타야 했다. 많아야 1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며 앉아 비행기로 향했다. 대부분이 여행자들이었다. 중국여자 중 한명이 인도옷을 입은 서양여자에게 옷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고독한 여행자의 얼굴에 수줍게 미소가 피어났다.
새까만 심릭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양쪽 두 줄에 ㄷ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좌석을 합쳐봐야 20석 남짓. 승무원이 카라멜 사탕과 솜을 주었다. 귀가 멍멍해지기 때문에 준 것이다. 비행기가 뜨고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쪽 산만 보다가 뒷자석에 앉은 여자분이 어깨를 두드리며 오른쪽 설산도 보라고 일러주셨다.
30분 정도의 비행이었나, 포카라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분위기. 산으로 둘러싸인 평안한 곳. 기념사진을 한장 찍고는 짐을 찾으러 갔다. 찾을 장소가 딱히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비행기 트렁크에서 이래저래 꺼내서 짐수레에 실은 것을 찾는 정도. 도착하니 타라 호텔의 매니저 아저씨가 우리를 픽업하러 나와 있었다. 양손에 든 문구를 보고(봄이의 영어이름이 적힌) 우리는 반갑게 달려 나갔다. 생각보다 비행기가 많이 지연되서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한다. 차를 타고 타라 호텔로 향했다. 낯선 풍경들을 바라보니 여행을 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작은 맨션 형태의 타라 호텔에 도착했다. 리셉션의 아가씨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체크인을 하는 사이 호텔에서 일하는 소년과 그의 어린 여동생이 우리 짐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10살도 안될것 같은 여동생이 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미안한 마음에 팁을 쥐어 주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도대체 몇 시간동안 걸려 이곳에 왔나. 비행기를 두 번 타고 한 번 노숙하고. 때가 꼬질꼬질하고 땀이 흥건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드디어 이 낯선 곳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입은 채 포카라 시내를 구경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푼힐 트래킹 일정이 잡혀 있어, 포터를 만나기 위해 '포카라 놀이터’라는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리셉션에서 알려준 위치를 따라 가다가 엉뚱한 곳에서 한동안 헤매기 시작했다. 해는 지기 시작했고 포터 아저씨는 한참을 기다릴 텐데… 결국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먼 거리인데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어둑해질 무렵이 되서야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주인 아저씨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인사를 나누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인드라 아저씨와 첫 인사를 나누었고, 지도를 펼쳐 내일부터 펼쳐질 트래킹을 함께 계획했다. 어느 부근까지는 차로 이동하고, 어떤 곳에서 하루를 묵을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트래킹에 필요한 물품도 몇 개 빌렸다. 봄이는 등산 스틱을, 나는 1리터짜리 물통을, 그리고 우리의 짐을 모아서 포터아저씨께 맡길 42리터 정도의 등산 배낭을 빌렸다. 고산병을 대비하려면 둘째날 행선지인 고라파니에서 머리를 감지 말라 했고, 혹시나 필요할까 챙겨온 정수제는 오히려 복용시 3주동안 손떨림 등의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들었다. 여러 궁금증을 해소한 채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곳에 도착할때까지가 너무 힘든 여정이었는지 허기가 졌고 낯선 음식보다는 한국음식이 먹고 싶었다.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낮술’이라는 한국 식당에 찾아갔다. 수많은 음식들 가운데 야크치즈 삼겹살을 주문했다.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던 삼겹살인데 어찌나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삼겹살 위에 야크 치즈를 올려 구워먹는 것이었는데, 곁반찬도 맛깔스럽고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함께 곁들인 에베레스트 맥주도 끝내줬다. 발개진 얼굴로 여독을 풀었다. 스피커에서는 자우림의 노래가 계속 흘러 나왔다.
저녁식사 후에는 포카라 시내를 구경했다. 여행자들이 워낙 많이 다니는 장소라 그런지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네팔 청년들을 여럿 만났다. 같이 춤을 추러 가자느니 끈적거리는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청년도 있었는데, 말이 그렇지 그저 순박해 보이기만 했다. 특히 포카라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니하오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달러를 네팔 루피로 어느정도 환전하고 옷가게에 가서 안나푸르나 지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샀다. 주인 아주머니는 자신이 디자인했다는 여러 옷을 소개하며 구매를 유도했다. 아줌마의 넉살에 거의 넘어갈 뻔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네팔 엽서가 예뻐서 몇 장 샀다.
호텔로 돌아와 트래킹에 필요할 짐을 꾸리고 늦게 잠을 청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도 몇번이나 재차 확인하며 짐을 줄여 나갔는데, 아무리 줄여도 무겁기만 했다. 네팔에 와서야 깨달은 점은,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짐은 한 사람만 들고 와도 괜찮았다는 것. 포터 아저씨의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사람분의 선크림이나 랜턴 등은 호텔에 맡기고 가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다음날 트래킹을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걱정 반 설렘 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