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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stle Jun 28. 2017

발리 서핑 - 살기 위해 에스키모롤을 시작했다

스물한번째 서핑

스물한번째 서핑

2017년 5월 3일 수요일

@ 발리 사누르 해안


전날보다 조금 높아지고 거셌던 파도




아침 여섯시 즈음 쑤시는 몸을 일으켜 프링언니가 차려준 아침과 커피를 먹었다. 비키니와 워터레깅스를 챙겨 입은 후 서프스쿨에서 온 밴을 타고 사누르 해변으로 향했다. 밴에서 틀어주는 코미디 영화에 졸린 눈을 한 채 낄낄거렸다.


키플리 선생님은 어제 즐겁게 탔으니 오늘은 레벨을 좀더 높여 8피트 보드를 타 보자고 하셨다. 앰앤앰 초콜렛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하얗고 통통한 보드로, 9피트보다 길이만 좀더 짧을 뿐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했다.

'조금 낯설겠지만 어제 잘 탔으니, 즐겁게 탈 수 있을거야!'

하지만 배가 라인업 부근에 정박한 뒤 앰앤앰 보드에 뛰어내리는 순간 직감했다. 9피트 보드보다 균형잡는 게 어렵다는 것을.. 흔들거리는 보드에서 내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날은 패들 아웃과 에스키모롤을 엄청나게 시도했다. 


여기서 잠깐!


패들 아웃(paddle out)은 먼 바다를 향해 패들을 하는 것을 의미. 큰 파도에 휩쓸리는 걸 피하기 위해 열심히 패들 아웃을 했습니다.


에스키모 롤(eskimo roll)은 파도가 세게 치는 것을 피해서 파도가 오기 1~1.5미터 정도 전에보드를 꼭 잡고 180도 도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파도가 내 보드 위로 몰아치는 것을 느끼며 3초 정도 숨을 참다가 다시 180도 뒤집으면 되는 것이죠. 제가 배운 건 이런데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터틀 롤(turtle roll)이라고도 부릅니다. 


에스키모 롤을 하는 방법




8피트 보드가 낯설기도 하고 괜히 겁을 먹었는지 파도에 정말 많이 휩쓸렸다. 제대로 탄 횟수만 해도 거의 2-3번밖에 되지 못했다. 내맘같지 않아 속상했다. 초조해하는 내게 키플리가 해 주는 말들이 마음의 안정이 되었다.

"리, 걱정하지마. 괜찮아. 오늘 파도는 어제와 다를 바 없어."


그리고 패들 아웃과 에스키모 롤을 많이 연습할 수 있었다. 보드에 누운 채 기다리다가 파도가 너무 크고 빠르면 하염없이 패들 아웃을 해야 했다. 파도가 눈앞에서 부서지는 지점에서는 살기 위해 에스키모 롤을 했다.

"Lee, lay down, lay down... No! Stand up and paddle out!"


그날은 괜히 지치고 무서워서 시간이 빨리 가기를 빌었다. 두시간의 서핑 후 키플리가 이게 마지막 파도라고 이야기할때 너무 신이 나서 최선을 다해 탔다. 돌아오는 배에서 내일은 반드시 9피트를 타겠다고 다짐했다. 



파리해진 몸으로 보드를 서핑 스쿨에 반납한 뒤 몸을 씻고 밴에 올랐다. 그리고는 풀빌라로 돌아가서 수영 연습을 했다. 수영장은 1.2미터 정도이다가 점점 깊어져서 한쪽은 수심이 2미터였는데, 깊은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조심조심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프링언니가 빌려준 스킨스쿠버 고글을 빌려 쓰니 물 속에서 편하게 눈을 뜰 수 있었다. 물속이 보이니 겁이 덜해져서 즐겁게 평영 연습을 했다. 


그 후 샤워를 하고 꽃단장을 한 뒤 마마산(MAMA San)이라는, 동생이 현지 바텐더에게서 추천받은 타이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청량감을 기대하며 주문한 리몬첼로가 너무 세서 정신이 없었다. 이어 나온 똠얌꿍, 베이징덕, 덤플링, 식감이 살아있는 향신채, 쏨땀 샐러드와 치킨까지.. 하나하나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주문한 아포가토와 크렘 브륄레, 홍차 맛이 강렬한 커스터드, 단호박을 갈아 넣은 독특한 맛의 디저트까지.. 정신을 잃고 허겁지겁 먹었다. 가격이 센 곳이었지만 정말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맛있는 식당이었다. 이래서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인가.. 다음에 또 와야지!




두둑한 배를 만지며 발리의 청담동이라는 스미냑 거리를 구경했다.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 소품 매장이 많이 있었고 예쁜 나무 도마와 소품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아직 환전을 안해서 참고 구경만 했다. 근처 킴벌리 스파에서 아로마 마사지도 받았다. 손님의 편안함을 위해 실내 정숙하는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흐물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이 되자 서프스쿨에서 연계된 BBQ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먹을 복이 터진걸까?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거의 못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어서 또 신나게 먹었다. 시원한 코코넛 모히또와 구운 오징어, 소시지, 소고기 등을 먹었다. 식후에 어둠이 내린 꾸따 해변 길가를 걷다가 Beachwalk라는 아울렛도 구경했다.




파도가 세서 고생한 만큼 정말 맛있게 먹고 푹 쉰 하루였다. 휴양지는 처음 와봤는데 정말 자본주의 만만세인가 돈 벌어서 이런데 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며칠 후 모든 서핑수업이 끝나고 서핑하는 모습이 담긴 usb를 받았는데, 두번째 날 사진은 한장도 없었다. 엎어지는 사진만 가득했으려나. 

서핑을 많이 즐기진 못했지만 에스키모 롤과 패들 아웃을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만족합니다! 

그래도 다음날은 좀 예쁘게 봐주세요 발리 바다님..! 





파도를 계속 놓치기도 해서 테이크오프를 더 빨리 해야 할까 고민도 들었다.

나: "Do I have to take off faster?"

키플리: "No, It's fine. Faster is not important. Keeping the balance is more important."


빨리 일어나는 것보다 균형 잡는게 더 중요하다는 말,
비단 서핑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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