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분위기가 가리키는 방향
학예회를 끝낸 둘째 녀석이 기어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옷을 여러 번 갈아입히고 4개의 공연을 하는 것이 참 무리한다 싶었다. 결국 밤새 기침으로 잠 한숨 못 이루고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했다.
어린이집에 부랴부랴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길.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늘 다니는 길이 공사로 길이 막히자 다른 우회도로를 찾아 들어섰다. 이게 웬일인가. 골목길을 딱 막고 짐을 싣고 있는 1톤 트럭이 눈에 보였다.
5분쯤 기다렸나? 설상가상 내 뒤로 차들이 줄 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보통은 짐을 실으며 길을 막고 있으면, 눈짓을 주거나 제스처를 통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짐만 싣는 모습에 내 차를 보지 못했나 싶어 살짝 빵빵 경적을 울려보았다. 그러자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 명이 나를 눈을 희번 득 거리며 “왜 X랄이야.”하며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화가 치밀어 오를 텐데, 어찌 된 일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욕을 퍼붓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삶이 버겁고 힘들까. 얼마나 희망이 없으면 저렇게 행동이 나올까 싶었다. 말없이 욕설을 퍼붓는 그를 지켜보았다.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내 눈빛을 알 수 있었다. 당혹, 연민, 씁쓸, 한심, 측은 등의 감정이 뒤엉켜 쳐다보고 있었다. 욕설을 한참이나 퍼붓는 그를 뒤로하고, 운전해 그 골목을 빠져나오는 내내 그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미안한 상황에서도 욕설을 퍼붓는 상황이 되었을까? 올여름에도 같은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주말 2호선 강남역을 몇 년만에 가보았는데, 사람이 교행이 되지 않고 지하철도 줄 서서 천천히 나가야 할 만큼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와 어깨를 살짝 부딪혔다. 누가 잘못이랄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다고 하려는 찰나 “이런 C8” 깜짝 놀라 쳐다보니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여성이었다.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은 꿈을 좇기보다 현실에 대한 부정과 타인에 대한 분노가 사회를 강타한다. 올해 ‘힐링’과 ‘자존감’이 방송과 출판계를 강타한 것만 보아도 사람들의 결핍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부디 새해에는 욕설보다는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강타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