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서 얻은 것

쓰러지려면 일단 학교에 가서 쓰러져라

by poppy

이전까지의 글에서는 부모님의 안 좋은 점에 대해서 왕창 적어두고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얻었던 긍정적인 부분을 적는다니,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양면이 존재한다.

빛과 그림자는 언제나 같이 붙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림자가 더 많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빛나는 시간들도 꽤 많았음을 느낀다.

그 빛났던 순간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앞으로 남은 삶에 적용시켜볼까 한다.




[목차]

1. 30년 근속사원

2. 내 뒤에 있는 든든한 버팀목

3. 본인의 삶이 없는 삶



1. 30년 근속사원

아버지가 새벽부터 회사에 출근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가야 하는 시간보다 매번 더 일찍 나가셨다. 전날 회식으로 인해서 늦게 들어오실 때도 다음날이면 철인처럼 일어나서 회사를 나가셨다. 어릴 때 학교에 가기 싫었던 날에 잔꾀를 부린 적이 있는데 몸이 좋지 않다며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예상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힘들면 가지 않아도 되지만 잘 생각해 봐. 아빠라면 학교에 먼저 등교해 볼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쓰러질 것 같으면 그때 다시 돌아와도 좋아." 그 말은 어린 내가 해석하기로는 그냥 '학교 가서 쓰러져라'라고밖에 안 들렸다. 그땐 아픈 것에 공감해주지 않는 게 너무 서운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삶의 끈기를 만들 수 있는 연습이었다.

주변을 보면 개인적인 사유로, 기타 등등 회사를 계획 없이 갑자기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그게 한두 번이 쌓여서 습관이 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일로 한두 번 빠진 사람이 계속 그렇게 자주 빠진다.

부모란 무한정 사랑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고, 적재적소의 상황이 있다.

때로는 단호함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2. 내 뒤에 있는 든든한 버팀목

최근에 어떤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던 배우가 한 말이 숏츠로 돌아다니는걸 본적이 있다.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수틀리면 빠꾸. 집으로 튀어와. 아빠가 여기 있을게."이런 대사였다. 우리 아버지도 딱 그랬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그게 뭐든 최대한 지원해주려고 하셨다.

내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할 때도, 어떤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할 때도. 물론 기억이 미화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이 말은 기억한다. "네가 뭘 하든 아빠가 최대한 밀어줄 거야. 너의 꿈을 마음껏 펼쳐. 아빠가 있잖아."라고 말해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부모가 된다면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민증이 나오고 처음으로 바깥에서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날도 아빠가 더 신나 하시면서 가족끼리 자주 가던 식당에 가서 막걸리를 사주셨다. 난 아빠를 참 존경하고 사랑했었다. 지금도 나는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


3. 본인의 삶이 없는 삶

아버지는 본인의 삶이 없는 삶을 살았다. 모든 게 자식, 가족들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어린 시절 느꼈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최대한 나의 자녀는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말 미친 듯이 달렸던 인생이다. 그렇게 몇십 년을 자신의 취미가 뭔지, 뭘 좋아하는지, 본인만의 시간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마음속의 구멍은 계속 커졌을 것 같다. 자식들이 커가고 본인들의 목소리가 의견이 확고해지는 시기에 아버지는 정말 힘들어하셨다. 이젠 당신의 의견보다 각자의 생각이 더 뚜렷해지고 따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로움을 느끼셨다. 본인이 없는 삶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아버지를 보면서 배웠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난 이혼하지 않은 가정의 또래를 보면 매번 나도 모르게 슬퍼지고 부러워지면서 괜히 질투가 났다.

"만약 우리 집도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지금까지 잘 지냈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무겁게 늘어져서 결국 이혼의 원인까지 들쑤시고 다닌다.

내가 이혼을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나의 역할이 문제였던 건지, 내가 전부 망친게 아닌지 또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받았던 사랑들은 지금 내가 어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난 이제 삶을 스스로 살아갈 힘과, 의지가 있다.

이제는 자신을 믿고 미래를 위해서 길을 닦아나갈 것. 내가 나만의 뒷배가 되어서 어깨펴고 당당하게 살아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