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동의하지 않는 태도
고등학교 3학년.
누군가는 공부를 하느라 바쁜 시기.
우리 집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느라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으로 지냈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내 삶을 살았다.
학교를 다녔고, 입시를 준비했으며, 그냥 해야 할 것에 집중했다.
일어날 일은 막으려고 애를 써도 일어나게 될 일이니 그저 본인이 현재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그때 현실을 통해서 배웠다. 특히 어머니의 삶을 대하는 모습이 영향이 컸다. 우울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셨고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셨다. 그때 보았던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 설령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내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운동이 되고, 자기계발이 되고, 마음공부가 되었다.
목차)
1.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거든요
2. 쉽게 동의하지 않는 태도
3. 나만의 것으로 적용하기
1.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거든요
정말 그렇다.
사람과의 인연도 때가 있고 마침표가 존재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 건강이 나빠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관계를 갈라놓는다. 각자의 인생 또한 그렇겠지만 엄마의 인생도 참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가정주부셨지만 독학으로 공부를 하시고 전문대를 나와 일을 시작하셨다.
공부를 잘하셨다. 더 좋은 대학교도 갈 수 있었지만 학교를 오래 다녀야 해서 차선책으로 전문대를 선택하셨다니. 대학교는 내가 아니라 엄마가 가셨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는 작은 접이식 책상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계셨다. 그때도 부모님의 사이가 썩 좋지는 못해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공부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했다. 정말 꾸준히.
그게 학창 시절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그렇게 공부를 하시고 전공한 분야에서 일을 다니셨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엄마도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신 것 같다. 엄마로서, 그리고 본인으로서.
자녀의 입장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게 좋을 거 같지만 절대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않으려는) 일관적인 태도를 자녀에게 보여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으로 가르치지 말고, 행동으로 본인이 실천해서 말이다.
2. 쉽게 동의하지 않는 태도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뜻대로 되지 않거나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되면 쉽게 울고는 했는데 그때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억울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인가부터 엄마가 쉽게 동의해주시지 않았다. 감정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감정적인 것보다는 이성적인 태도로 대응하셔서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어린 나이지만 울면 뭔가 해결이 빠르게 된다는 걸 이용하는 게 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울고 때를 쓰면 원래는 뭔가 해결이 되어야 했는데 엄마는 조용히 지켜보셨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왜 울었는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물어보셨다. 쉽게 우는 습관은 그 시점부터 점점 사그라들게 되었다. 울어도 상황이 변화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만들어졌다.
3. 나만의 것으로 적용하기
부모님이 완벽할 수가 없다는 걸 안다. 나도 완벽하지 않은 자식이니까.
그렇기에 난 요즘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종종 공부한다. 지금이라도 내가 받지 못했던(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의 부모(=보호자)가 되어서 채워주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봐야 유튜브를 통해서 심리상담 채널을 보고 좋은 내용을 적어두는 게 다지만, 그래도 정보를 몰랐던 때와 알고 난 뒤는 확실히 다르다. 당연히 일일 드라마가 순간적으로 도파민 팡팡 터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글을 쓰고, 심리공부를 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아예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10번 볼 때 한두 번쯤은 마음공부를 해보는 걸 추천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를 알면 내가 왜 이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이때는 왜 괜찮은지 파악할 수 있다. 즉 감정적으로 흔들림이 적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충동적으로 선택하거나 말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나를 키우는 요즘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와는 정반대였다. 반찬을 해주거나 (반찬은 사 먹는 게 맛있다며 한 번도 싸주신 적이 없다.) 어린애 취급하거나(학생 때부터 나는 자유도가 최상급이었다. 엄마는 날 언제나 신뢰해 주셨고 알아서 잘할 거라 믿는다고 하시며 방목형으로 키우셨다.) 성적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공부에 흥미가 없으면 네가 좋아하는 걸 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똑같은 부분이 있다.
엄마는 항상 그 자리 그대로였다.
내가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흥분할 때도 엄마는 항상 일관된 태도로 나를 대해주셨다.
대문자 T를 넘어서 우주급 T인 우리 어머니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것이다.
그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것이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집 가훈은 각자도생이다.
각자 본인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엄마에게서 배운 좋은 습관들로, 또 내가 배운 좋은 습관들로 나를 만들어서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