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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쌤 Oct 06. 2021

빨간펜 선생님과 정답 사회

 어렸을 때 1년간 학습지를 구독한 적이 있다. 학습지의 깨지지 않는 공식은 '미루기'. 제때 풀지 못하고 밀린 학습지가 책상에 켜켜이 쌓였다. 교사가 된 후 주변 선생님의 소개로 학습지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학습지를 풀던 아이가 18년 후 아이들의 시험지를 빨간펜으로 채점하고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학습지 업계는 이직이 잦은 것인지 8년 동안 거의 매년 담당 편집자가 바뀌었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만 본사 건물을 찾아가서 미팅을 했다. 그 이후에는 문자와 메일로만 연락하고 계약서도 우편으로 주고받았다.


 일전에 A 편집자가 문의 사항이 있으면 B 편집자에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B 편집자에게 연락을 했더니 잠깐의 정적 후 까칠한 말투로 말을 시작했다.

 "A 편집자가 저한테 물어보라고 하던가요?"

 그리고 본인 담당이 아니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일 미루기와 기 싸움의 현장을 잠시 엿본 것 같았다.     


 학원에 많이 다니지 않고 집에서 부모님과 스케줄을 짜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주로 학습지를 구독한다는 말을 들었다. 학습지나 문제집도 넓은 범위에서 보면 사교육 시장에 속하지만 학원보다는 비용이 적게 든다. 학생들이 예습, 복습을 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과서 내용을 정리하고 문제를 출제한다.    

 

 학습지를 만들 때 나만의 작은 즐거움이 있다. 문제에 등장하는 이름을 내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다. 친구 이름, 남편 이름, 제자 이름, 아이들 이름을 쓰기도 한다. 관심 있는 연예인 이름도 자주 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문제를 출제한다.      

     

<문제 4> 다음 중 시의 특성에 대해 잘못 말한 친구를 고르세요
① 정국 : 시를 읽으면 장면이 떠올라.
② 지민 : 비유적 표현을 자주 써.
③ 진이 : 노래하듯이 리듬감이 느껴져.
④ 태형 : 현실에 있음직한 이야기를 쓴 거야.
⑤ 남준 : 짧은 단어에 많은 뜻을 함축해서 쓰기도 해.           


 한 번은 담당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낸 후 전화로 문의할 일이 있었는데, 그녀의 전화 컬러링이 내가 전송한 원고에 쓴 아이돌의 노래였다. 보통 컬러링에 노래 설정까지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컬러링으로 정하기는 유니크한 노래였기 때문에 편집자가 그 아이돌의 팬임을 직감했다. 원고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이름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그녀의 표정이 그려지며 얼굴도 모르는 편집자에게 친근감이 샘솟았다.      


 교실에서도 나는 빨간펜 선생님이 된다. 단원평가를 볼 때마다 25명의 아이들의 시험지를 빨간 색연필이나 빨간색 볼펜으로 채점한다. 채점이 된 시험지를 나눠줄 때 아이들의 얼굴에서 희비가 교차한다. 몇 년 전부터 채점할 때 틀린 문제는 '빗금' 표시가 아니라 '별표'로 표시하고 있다. 틀린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잘 몰랐던 부분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자는 뜻이다.

 

  

 내가 주로 출제하고 있는 국어 문제는 수학 문제보다 모호하다. 문제와 지문에 따라 이것도 정답인 것 같고 저것도 정답인 것 같다. 수학은 정답이 명료하지만 국어는 그렇지가 않다. 가장 그럴듯한 정답을 골라야 한다.

 수능 시험을 보았던 2004년에도 언어 영역에서 애매한 문제가 하나 있어서 정답률이 가장 낮았다.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출제 위원이 중복 정답을 인정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후 원래 답으로 썼던 사람들이 재차 항의하며  '언어 영역 17번은 4번이다.'라는 카페까지 만들었다.      





 국어 문제보다 더 모호한 건 인생의 정답이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 늘 헷갈리며 산다. 확신에 찬 행동들이 좌절감으로 돌아올 때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시도한 일이 좋은 결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우리나라는 삶의 모호함과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고 '정답 사회'를 강조한다.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장만 등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강요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답에서 빗겨나가는 것 같으면 불안해하고 서로 무언의 압박을 준다.


 나 또한 그런 사회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눈치를 봤다. 정해진 삶의 형식을 강요하고 서로 눈치를 많이 주는 사회일수록 개인의 행복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치안, 의료, 경제 상황 등 세계 전체에서 객관적인 지표가 상위권인 우리나라가 개인의 행복도가 낮고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늘 남과 비교하고 ‘이 정도 수준으로는 살아야 한다.’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과 남의 시선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정해진 답이 아니라 다양함을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낙담할 일이 있었을 때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고 낙담하기보다는, 이번 일로 새롭게 배웠다고 '별표'를 치고 훌훌 털고 일어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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