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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Oct 12. 2020

지금은 사라진 이발소 풍경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의 '새로운 길' 중에서


밤새 눈이 왔나 보다.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일었다. 찬 공기를 마시니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3일 후 군대를 간다. 입대는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을 절망적으로 만들지만, 그 이면에는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원숭이도 다소나마 경건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일부러 눈이 쌓인 곳으로 걸었다. 뽀드득 소리가 기분 좋았다. 내 손안에 작은 세상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조성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공테이프에 직접 녹음해 준 노래다. 가사를 음미했다. 군대 가는 나에게 하는 말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공중전화로 가 전화카드를 넣고 그녀의 집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그녀의 어머니인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만 듣고 끊으려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가 받아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어머니는 다시 한번 재촉했다. "이상하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장난 전화인가?"

"저..." 용기 내어 말하려는 순간 전화가 끊겼다. '뚜우~'.


공중전화기를 한참 바라봤다. 삐삐로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1 177155 404’를 남겼다. ‘I miss you’란 뜻이다. 누가 보낸 줄 모르겠지만, 마음은 전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됐다. '이걸로 됐어. 여기서 더 나가면 지질해질 뿐이야.'


입대를 앞둔 자에게 이별의 아픔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별의 아픔은 나를 더욱 경건하게 만들었다. 나는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진정한 순례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오늘만큼은 이발소를 가야 할 것 같았다. 빡빡머리는 당연히 이발소라고 생각했다. 미용실에서 빡빡머리는 어쩐지 무척 안 어울리고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군복 입은 남자가 네일숍에서 손톱 손질을 받는 느낌이랄까. 손을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고 이발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판에는 '희망 이발소'라고 적혀 있었다. 희망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고 군대를 안 가도 되는 기적 같은 희망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빡빡머리를 깎는 데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가 신문을 보시다가 일어나며, "어서 오세요?" 하며 맞아주셨다. 이발소 내부는 낡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3개의 낡은 의자가 가지런히 거울을 향해 있었고, 거울 앞에 물건들은 줄 맞춰 놓여 있었다. 낡은 삼색 기둥은 세월을 낚는 것처럼 천천히 돌고 있었고, 유리문의 시트지는 이발사 아저씨의 머리처럼 점점 벗겨지고 있었다.


"여기 앉아요."


의자에 앉으니, 아저씨가 하얀 보자기를 몸에 둘러 주었다. 거울을 봤다. 하얀 보자기 위에 못생긴 얼굴이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 긴 머리카락에게도 이별을 해야겠지. 이별하고 나면 너도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구나.'


"어떻게 깎아드릴까?" 이발사 아저씨가 다소 경쾌하게 물으셨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듯, 약간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로 "스포츠로 깎아주세요." 했다.


스포츠머리이니, 처음부터 바리캉으로 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가위질을 먼저 했다. 나의 소중한 20년의 청춘이 불도저처럼 한 순간에 밀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안심이 됐다. 가위질이 시작됐다. 평소 가위질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오늘 들리는 가위질 소리는 슬픈 발레리나의 춤 같았다.


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다. 가위질 소리와 나의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풍경을 나는 거울을 통해 지켜봤다. 20살의 젊은이는 마음이 착잡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스포츠머리. 이제 내일모레면 빡빡머리를 한 풋내기가 강원도의 어느 산속에서 군복을 입고 어리바리 훈련을 할 것이다.


군대 갈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지만, 그리움만은 안고 간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헤어진 그녀도 모두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일상적이고 하찮던 것들조차 소중한 것으로 바꿔준다. 엄마의 잔소리, 동생의 투덜, 삼돌이(강아지 이름)의 말썽. 돈 달라고, 밥 달라고 투정만 부리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드디어 바리캉이 '윙'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밀기 시작한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애써 참는다. 남자는 울지 않는 법. 게다가 곧 군인으로 다시 태어날 남자로서 이발소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군대 가나 보지?" 아저씨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네, 내일모레 입대해요."

"어디로 가는데?"

"춘천에 있는 102 보충대요."

"겨울에 고생 좀 하겠네."

"남들 다 가는 건데요, 뭐." 호기로운 문장이었지만, 목소리는 우울 그 자체였다.

"군대 가면 힘들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데라 배울 것도 있고, 경험도 될 거야. 제대하면 사람이 바뀐다니까. 개망나니도 효자로 만들어주는 게 군대예요. 사람이 성숙해져.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너무나 상투적이고 수백 번 들은 말들이었지만, 아저씨의 말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얼마나 많은 입대자들의 머리를 깎아줬을까. 거울을 보니 밤톨이가 됐다. 거울에 비친 사내가 낯설었다. 아저씨는 나의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려줬다. 빡빡머리는 금방 마른다.


"다 됐습니다." 아저씨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힘내라는 듯.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를 잘랐을 뿐이지만, 약간 성숙해진 것 같았다.

"몸 건강히 잘 다녀와요." 하면서 아저씨가 바카스(자양강장제)를 건네셨다.


난로 위에 노란 주전가가 끓고 있었다. 나는 바카스를 받아 들었다. 삼색등이 도는 낡은  이발소에서 입대하는 청년에게 바카스를 건네는 이발사 아저씨가 풍경처럼 다가왔다. 아저씨는 그냥 머리만 깎아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그날 내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자네 마음 다 아네, 걱정 말고 몸 건강히 다녀오게.'라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자, 공기가 제법 찼다. 머리가 시원했다. 홀가분했다.


'희망 이발소'에 나와 친구 녀석을 만났다. 내 빡빡머리를 보고 웃어대는 친구 녀석을 데리고, 분식집에 갔다. 나는 배가 몹시 고파, 아주머니께 특별 주문을 했다. "라면 2개에 김밥 곱빼기요." 메뉴에 김밥 곱빼기는 없었지만, 정말로 김밥에 밥이 엄청 많이 들어 있었다. 김밥 두께가 야구 방망이 만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보는 김밥 곱빼기였다. 어쩐지 모든 게 군대 가는 나를 위한 위로 같았다.


덧 붙이는 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날의 기억은 내게 따뜻한 한 장의 흑백 사진이다. 이제 '희망 이발소'는 사라졌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그날의 이발소 풍경은 내게 마음 한 편의 작은 불씨처럼 남아 희망을 주고 있다. '바카스를 건네는 작은 온정이 사람 사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작은 희망 말이다. 20살의 입대를 앞둔 청년에게 센스 넘치는 호의를 베풀어준 김밥 아주머니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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