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것
보랏빛 노을이 하늘에 펼쳐질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하늘을 찍고, 그날 SNS에는 그 하늘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노을이 이쁜 이유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평소와 다른, 아름다움이 가득 베여있는 하늘을 눈을 떠 기분 좋게 바라볼 뿐이다.
도시의 노을뿐만 아니라 한가로운 여행지에서의 풍경도 그렇다. 기분이 좋은 이유를 굳이 따져보면 휴식이라는 시간 속에서 평소 보지 못한 풍경을 바라보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며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등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을 즐기는 찰나의 순간만큼은 그 순간 자체에 몰입한다.
술을 즐기는 이유도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
시원한 국물을 먹을 때 소주가 땡기는 것도,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한강에서 캔맥주를 따는 것도, 기분 좋은 날 술잔을 연거푸 부딪히는 것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본능이다.
알콜이 체내에 흡수돼서 취하고,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굳이 분석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순간에는 소주를 마셨던 후천적인 학습 때문에 생긴 습관적인 행복이라고 분석하지도 않는다.
여유롭고 햇살이 가득한 한낮, 창문으로 녹음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비가 오는 날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빗줄기들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은 후자이기 때문에 술을 들이켠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해도 충분할 정도로 즐긴다. 마치 보랏빛 노을이 하늘을 수놓을 때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