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풍류를 더하는 것들
우리나라 조상들을 보면 술과 풍류에 대한 이야기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농암 이현보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 중 달빛 아래 강을 사이에 두고 술과 시를 나눴다는 일화가 있다. 농암 선생이 취해 나뭇가지로 뗏목을 만들어 술잔을 띄우면 아래에 있던 이황이 그 술을 웃으며 받아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술잔을 물에 띄워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기는 것을 유상곡수라고 하는데, 농암과 퇴계는 서른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술로 친구가 되었다. 이 모습을 떠올려보면 시를 잘 쓰진 못하더라도 사이에 껴서 함께 잔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현재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들은 종종 보인다. 서로 술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인생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계곡 바위에 누워 시원하게 담가놓았던 술을 마시며 가만히 하늘과 바람을 느끼기 것과 같은 상황들. 강과 바다를 앞에 두고 잔을 기울이며 저마다의 표현 방식대로 풍경을 묘사하기도 한다.
“경이롭다.”
“석양에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강물에 비치는 윤슬처럼 내 미래도 빛났으면 좋겠다.”
그리 무겁지 않은 표현이더라도 조금은 낯간지러운 표현들을 내뱉는다. 그 순간만큼은 술기운이 올라 그렇게 낯간지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가끔은 내가 한 게 맞나 싶은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현들을 보면 괜히 우리 조상들이 술과 풍류를 즐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좋은 장소, 좋은 분위기에 술을 마시면 유독 낭만적인 단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도 낭만을 즐기는데 한몫한다. 농암과 퇴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들과도 술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두 손으로 술을 받다가도 '한 손으로 받아도 돼.'라는 호의에 '괜찮아요.'라는 예의를 보이며 동갑내기 친구보다 더 진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취하기 시작하면 서로의 낭만을 주고받는다.
숲속 캠핑장에서 쏟아지는 별 아래 술을 마셨던 밤의 회상을 전달하면, 십수 년 전 풀벌레 소리 가득한 시골 평상에서의 술자리 추억을 받아온다. 대화가 깊어지다 함께 캠핑이나 오래된 펜션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낭만은 서로 스며들어 모두의 풍류가 된다.
농암 선생과 퇴계 선생 사이, 더해서 지금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술은 삶에 풍류를 더했고,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