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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May 23. 2023

당연해서 잊혀진 경영의 원리

0.

꽤 불쾌했던 기억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와 단둘이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왔던 가장 인상적인 말은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였다. 세상 최고의 진리를 말하듯 단언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대표님, 그건 사람은 먹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먹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네요.' 내 말을 들은 대표의 안색은 구겨졌다. 그 때부터 그는 내 이력서를 보면서 온갖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면접은 떨어졌다.

당연히 그 면접에 떨어져서 좋았다.



1.

당연한 말은 잊혀진다. 당연함은 신선하지 않고, 신선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기에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은 따분하고 꼰대의 언어라 매도된다. 당연하기에 잊혀진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요즘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당연함을 말하는 소수가 신선함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같은 내용의 다른 제목을 가진 자기 계발서가 매번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이유다.


경영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피터 드러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존하는 모든 경영 이론은 피터 드러커의 영향 아래 있고, 그 본질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기업은 영리 추구가 아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 당연한 말은 당연하기에 잊혀졌다. 이번 글을 통해 나조차도 잊었던 경영의 원리를 요약해보고자 한다.



2.

칼 포퍼는 말했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개인이 아닌 법인(法人, legal person)도 이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결할 수 있는 범위와 속도가 다를 뿐 법인의 삶 역시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기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적 독립체를 우리는 기업이라 부르고 이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을 경영이라 한다.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을 경영자, 대표이사, CEO, 사장 등 여러 가지로 부른다.


나는 기업의 경영자를 존경한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망할 경우의 리스크를 홀로 짊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돈만 벌려고 하거나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영자는 존경하지 않는다. 상술한 대표가 대표적인 예시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아니, 그럼 돈을 벌지 말라는 소리인가요? 이렇게 묻는 사람은 여전히 핵심을 못 보고 있다. 정의하려면 명제의 역, 이, 대우가 모두 성립해야 한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 기업 또한 돈을 벌어야 산다. 이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과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수단을 구별했으면 좋겠다.



3.

기업이 인지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는 '미션'이라 한다. 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구현해야 할 기업의 구체적인 미래상을 '비전'이라 한다. 멋진 미션과 비전은 구성원의 마음을 뛰게 만들고 내적 동기를 부른다. 반대로 미션이나 비전을 '연 매출 1000억 원'과 같이 숫자로만 표현하는 건 꽤 비루하다. 사람으로 치면 '오늘 5끼' 먹겠다는 말이니까. 



4.

기업 미션을 달성하고 비전을 구현하는 과정에 가치를 느끼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우리를 고객이라 부른다. 같은 수요를 가진 고객의 집단을 시장이라 부른다. 사업 전략은 이 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아홉 가지 제반 사항을 결정하는 행위다. 시장에 가치를 제안하는데 필요한 다섯 가지는 고객 세분화, 가치 제안, 수익, 고객 관계, 채널이다. 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네 가지는 핵심 자원, 핵심 파트너, 핵심 활동, 비용이다.


전략은 쉽게 말하면 '뭐 먹고 살지?'다. 어떤 먹거리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종류와 양은 한정되어 있다.


전략은 미래를 염두에 둔 현실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업 전략은 한 줄로 정리된 명확한 실행 지침이어야 한다.



5.

사업 전략 한 줄을 실행하려면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은 보통 마케팅, 브랜딩, 인사, 재무, 영업, 개발, 생산, 디자인 등의 전문 기능으로 분류된다. 큰 바위 하나를 작은 돌 여러 개로 쪼개야 치우기 쉬운 것처럼, 각기 다른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거대한 문제 하나가 해결된다.


같은 기능을 가진 사람끼리 모으면 기능 조직이 되고,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사람끼리 모으면 목적 조직이 된다. 각 조직은 전문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과제를 도출하고 해결한다.



6.

기능이 달라도 일하는 방식이 같아야 동일한 미션을 해결할 수 있다. 조직 문화는 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리더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일이란 의사를 결정하고 소통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최적의 조직 문화는 리더가 없어도 구성원이 리더와 동일하게 의사를 결정하고 소통하고 실행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흔히 전략과 조직 문화 중 무엇이 먼저이고 논쟁이 있는데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비슷하다. 무엇이 중한지를 논하기 보다 둘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게 더 이롭다. 다음 전략을 수립할 때 이전에 세웠던 조직 문화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기능이 형태를 만들고, 형태가 기능을 만드는 것처럼 전략과 조직 문화는 서로가 서로의 참고점이 된다.



7.

전략이 잘 수행되는지를 측정하려면 지표가 필요하다. 지표는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정성적 상태와 정량적 수치를 나타내는 목적과 목표, 인과 관계를 드러내는 선행과 후행, 기대치와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실적과 성과 등 기준에 따라 다르다.


지표는 평가와 보상에 연계되기 때문에 동기 부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흔히 알려진 MBO, KPI, OKR 등은 모두 측정 방식이 다를 뿐 동기 부여를 위한 지표 설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성과 지표를 설정할 때 구성원의 성과 지표와 사업의 성과 지표가 동조될 수 있도록 설정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나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라고 느낄 뿐만 아니라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략과 목표를 혼동한다. 그래서 '매출액 10% 증대'를 전략으로 세우는 잘못을 저지른다. 목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실행 지침을 세우는 게 전략이다. 헷갈리면 목표는 숫자라고 외워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오늘도 100계단 오르기를 달성하기 위해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일부러 이용하지 않는다'가 전략이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목표를 혼동한다. 목적은 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고 목표는 문제 해결을 측정하는 것이다. 헷갈리면 목표는 숫자라고 외워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목적은 '다이어트를 위해 계단을 오른다'라면 목표는 '오늘 100계단을 오른다'이다.



8.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를 리더십이라 한다. 리더십은 구성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구성원은 크게 기획자와 오퍼레이터로 구별 가능하다.


기획이란 문제를 정의(a)하고 해결책을 실행(b)하는 체계를 수립하는 업무 스킬이다. 기업 구성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므로 모두 기획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각자의 역량이 서로 다르므로, a가 강하면 기획자, b가 강하면 오퍼레이터로 나눌 수 있다.


리더십의 목적은 기획자와 오퍼레이터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기획자와 오퍼레이터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다섯 가지 기술은 다음과 같다.


일의 방향을 지시하는 디렉션

적절한 시점에 일을 재단하는 의사결정

기준에 의거하여 일을 배분하는 위임

일의 경과와 결과를 체크하는 매니징

일처리를 기준에 맞게 했는지 알려주는 피드백


목수가 망치, 톱, 드릴, 대패 등 다양한 도구로 나무를 잘 다루듯이, 리더 역시 다양한 기술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직을 리드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리더들이 이 기술들의 중요성과 사용법을 몰라서 자신의 리더십을 망친다. 디렉팅을 해야 할 자리에서 매니징을 하고 의사결정할 때는 엉뚱하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위임해 놓고 외면하기도 한다.



9.

미션 > 비전 > 사업 전략 > 조직 > 문화 > 지표 > 리더십이 하나의 맥락으로 정렬되어 있다면 구성원들은 이 조직에 신뢰를 가지게 된다.



10.

어떻게 할 지 갈피를 못 잡겠다면 다시 미션부터 시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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