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관점이 과연 바른 관점인지 검증이 필요하다.
1.
워크 앤 라이브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인 워라밸은 작년 말부터 들려오더니 올해 초에 폭발적으로 퍼져서 지금도 자주 쓰이는 용어다. '업무와 사생활은 분리되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은 지금의 52시간 근무제가 탄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워라밸러라고 해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집단도 생겼다.
사회적 함의를 가진 용어는 쓰이는 상황에 따라 그 뜻이 점점 확장되는데, 이런 측면에서 워라밸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일 많이 쓰이는 상황은 근무 컨디션을 확인하고 싶을 때다. 'OO회사 워라밸 어때?'라고 질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퇴근시간에 제대로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지?
퇴근 안하고 죽치고 앉아있는 상사가 많은지?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일거리가 있어서 퇴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지?
퇴근하고 집에 와도, 주말에도 회사 카톡창이 계속 울리는지?
회식이 너무 많아 술집에서 퇴근하는 상황이 반복되는지?
연차 한번 쓰려고 해도 개인사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상사가 있는지?
정시퇴근하고 그 뒤에 개인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현재진행형이다. 보통 구직이나 이직할 때 고려하는 조건은 연봉, 직무, 지역, 기업브랜드, 복지 등인데 여기에 워라밸도 추가되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더 일하는 우리나라다. 예전부터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던 나라에 왜 갑자기 워라밸 광풍이 불었을까? 애초에 '워라밸'이라는 표현 자체는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유래되었는데 무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다.
나는 세대교체의 힘이 워라밸을 이슈화시켰다고 본다. 세대가 바뀌면서 일을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이 곧 삶이었다. 기업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사장은 아버지였고 팀장은 형님이었다. 퇴근 후에도 소주 한잔 걸치고 들떠서 집에 들어가야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한 기분이 들었다. 선배가 승진 못하면 후배가 희생해서라도 먼저 승진시키는 게 당연했다. 경력만 착실하게 쌓으면 회사에서 대우해주는게 당연했다.
지금 우리도 부모님 세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반대다. 퇴근 후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회식하고 야근할 여유가 있나? 회사에서 지겹게 본 사람들 왜 또 봐야 하지? 무능력한 상사가 회사에 남아있다고 나까지 퇴근을 못하는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학원가서 공부하고, 세미나 가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연애도 해야 한다. 일은 돈 버는 수단일 뿐이다. 칼퇴는 잘못된 표현이며, 정시퇴근이 맞다는 이야기도 있다. 직장상사가 연애해라, 결혼해라 등 사생활에 대해 간섭하면 바로 꼰대 등극이다.
물론 지금은 과도기다. 세대는 완전히 교체되지 않았다.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제도가 앞서간 것이지 사람들의 의식은 아직 뒤떨어졌다.
"회사가 어려우니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열심히 합시다."
"출근시간이 8시 반이지만 최소 10분 더 일찍 나옵시다."
"월요일에 긴급보고가 잡혔으니 우리 주말 특근을 해봅시다."
우리는 이런 헛소리가 아직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2.
마케팅 직군에서 특히 광고대행사는 워라밸을 찾기 힘든 곳이다. 광고대행사 입사면접 때 필수질문이 '야근가능?'이다. 그만큼 광고회사는 야근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야근 안하고 광고회사 다니겠다고 하면 미친사람 취급을 받는다. 지금이야 몇몇 광고회사는 철저하게 퇴근시간을 엄수하고 좋은 복지를 실현하지만 아직도 광고와 야근은 뗄레야 뗼 수 없는 관계다.
나는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 역시 주말출근은 기본이고 새벽 6시 퇴근에, 추석 연휴 반납, 새해 1월 1일을 회사에서 맞이하는 등 지금의 워라밸러가 들으면 경악할만한 최악의 상황을 모두 경험했다. 그때 느꼈던 암울함은 너무나 깊어서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사이도 멀어져만 갔다. 일단 약속을 잡기가 너무 힘들다. 경쟁PT가 생기면 주말에 쉴 수가 없다. 이겨야 하는 경쟁에서 남보다 더 시간을 쓰고 노력해야 안심할 수 있는 고질병 때문이다. 어떤 클라이언트는 경쟁PT를 구정 직후로 잡아놓아 연휴 내내 회사로 출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클라이언트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암울할 뿐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워라밸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물론 사생활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충분한 휴식이 주어져야 집중이 가능한 존재다. 너무 일만 하다가는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한 채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동의하지만 '워라밸'이라는 표현에는 동의를 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밸런스 오브 라이프(Balance of Life)라고 하던지...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른손, 왼손처럼 일과 삶은 동등한 개념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일을 하는 것이기에 삶이 더 큰 개념이다. 굳이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태도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한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그게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문제인지, 아니면 몸담고 있는 '업'의 문제인지는 본인이 알 것이다. 회사가 맞지 않는다면 이직하면 되고 업이 맞지 않으면 업을 바꾸어야 한다. 그게 말이 쉽지 어려운 일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계속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
퇴직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퇴직을 권하고 자기만의 일을 하라는 권유도 많지만 창업만이 답이 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야 한다. 부모님이 부자여서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직장생활을 하든 창업을 하든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해야하는 일을 삶과 분리시켜서 본인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암시할 필요가 있을까? 해석하자면 '나는 퇴근도 제대로 못하는 회사에 다니고 그 회사가 퇴근을 잘 시켜줄 수 있도록 통제할 수 없으니 회사는 내 삶과 관련없는 개념으로 떨어뜨려 놓자.'아닌가? 그렇게 칼퇴근을 원하는 지옥 같은 회사에 왜 다니는 것인가? 하루 최소 9시간은 머무르는 곳인데, 어차피 일해야 한다면 회사에 있을 때도 재미있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3.
테슬라 CEO 엘런 머스크는 일주일에 평균 120시간을 일한다. 최근에는 생산 지연된 공장 때문에 공장바닥에서 먹고 자는 일을 반복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모델3의 생산부진, 주가 하락, 테슬라 상장 폐지 등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워라밸이 없을텐데 괜찮을까? 지나치게 워라밸을 추구하는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자기 회사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지.
바꿔 말하면, 자신은 자기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에 다니고 있으므로 CEO처럼 열심히 일하지 말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퇴근 시간 이후 1분 1초도 회사를 위해 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맞는 말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에게 팔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직장생활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만 하고 수동적으로 일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도태된다. 본인 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일을 잘 할리가 없다. 정작 일은 못하면서 '워라밸~ 워라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회사에서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회사에서 시간만 채우면 저절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모두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될 수 없다. 동기 다섯 명이 있다면 네 명은 떨어져야 한다.
워라밸러 입장에서 회사에서 퇴근한 뒤가 삶이다. 그런데 퇴근하고 맨날 술 마시고 집에서 스마트폰 보면서 뒹굴거리는 게 '삶'이라면 난 차라리 야근하면서 기획서를 쓰는 '일'을 택하겠다. 워라밸을 주장한다면 퇴근 뒤의 삶을 정말 잘 썼으면 좋겠다.
실제로 퇴근 후에 시간 잘 쓰는 분들 많다. 저녁시간을 분단위로 나누어서 운동, 취미, 자기계발까지 완벽하게 하루를 보낸다. 놀랍게도 이런 분들이 일도 잘한다.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거나 혹은 업무환경을 본인에게 맞도록 조정하여 뛰어난 인재로 회사의 인정을 받는다. 진정한 워라밸이란 퇴근시간의 엄수가 아닌 일과 사생활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4.
일을 대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일을 수단으로 대하는 입장과 일을 목적으로 대하는 입장이다. 일을 수단으로 대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일을 '돈벌이' 때문에 한다. 대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벌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취미에 쓰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낮에는 얌전한 공무원이지만, 밤에는 가죽옷을 입고 락밴드 보컬을 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첫만남부터 락밴드를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를 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을 목적으로 대하는 입장은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원한다. 직장에서 본인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고 어디까지 통할지, 어디까지가 한계일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다.
만약 일을 수단으로 대하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워라밸을 이기적으로 챙기는 게 맞다. 돈만 벌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일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본인의 역량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워라밸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야근하라는 게 아니다. 기획서 하나를 쓰더라도 한번 더 섬세하게 다듬는 장인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야근하더라도 손해가 아니다. 본인이 선택했고 본인의 역량을 기획서에 담아내는 데 노력했기 때문에 성장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
어쩌면 워라밸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현상유지를 정당화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모이면 항상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도 꿈에 부풀어서 행복했다. 30대가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세상을 알아버렸기에 꿈과 미래를 논하지 않고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에 갇힌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 들이는 내 시간이 아까운 감정이 결국 워라밸이라는 단어로 수렴한 것이다. 더 이상 획기적으로 변할 수 없고 내 인생이 예측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이 수동적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나는 워라밸이 수동적 삶의 근거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이왕 하는 거면 잘하는 게 좋다. 내가 원하는 일까지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회사에 평균 이상으로 기여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인생에 반전이 일어나기는 힘들어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나아가 내가 일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 어렸을 때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궁금해했을 때, '공부를 잘해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고 원하는 대학을 가야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라고 어머니는 대답해주셨고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직이 힘들다면 현재 있는 직장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인이 된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갔다고 끝이 아니듯, 직장에 들어왔다고 끝이 아니다. 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분하는 것처럼,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심지어 차별한다. 워라밸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저점의 불행을 느꼈지만, 반대로 최고의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야근을 하되 내 일을 더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활용했고 회의를 하더라도 내 아이디어가 더 설득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회사에서 하는 모든 업무를 다 내 것으로 만들었다. 야근을 하면서도 내가 소모되기 보다 내가 쌓이는 길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된다면 회사는 알아서 대접한다. 대접하지 않으면 그때 떠나면 된다.
5.
워라밸을 지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남이 지켜주느냐, 내가 지키느냐다. 52시간 근무제, 퇴근시간 엄수제도가 전자고, 내 일을 업무시간 내에 끝내서 정시퇴근하는게 후자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 자체적으로 불가하니 국가가 강제로 주별 근무시간을 할당하는 건 괜찮은 출발이라고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점점 외국처럼 자율업무제, 성과책임제로 돌아설 것이다. 내 업무를 판단하는 순위를 시간보다 성과와 책임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업무에서 성과만 낼 수 있다면 회사에 굳이 9시간 있지 않아도 프리랜서처럼 집에서 근무하거나 회사 밖 어디에서도 근무할 수도 있다. 이러면 퇴근시간이 의미가 없다. 그럼 뭐가 남겠는가? 바로 실무력이다. 내 일의 성과를 책임질 수 있는 실무력 말이다.
업무시간 동안 적당히 일하고 자리에서 시간만 보내도 괜찮았던 시대는 끝났다. 업무시간을 얼마나 쓰는지에 상관없이 목표로 한 성과를 달성하고 달성하지 못한 책임은 회사가 아닌 본인이 온전하게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업무형태가 단순반복이아닌 창의성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직의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여기서 일도 못하면서 시간엄수를 따지는건 기업이나 직원 양자에게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 너무 미래라고 생각하는가?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공유한 자유와 책임이라는 문서를 보면 이미 자율업무제와 성과책임제의 기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멀지 않았다.
이런 시대흐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주체성부터 가져야 한다. 야근을 하더라도 본인의 의지로 해야 한다. 시키는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 상황이 그렇게 된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러던데가 아니라 내가 그러고 싶은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을 늘리려면 내가 책임지는 범위를 늘려야 한다. 자신의 책임과 권한의 등가를 맞추고 키우는 적극적인 행위를 계속 반복해야 직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성장해야 회사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발언권을 키울 수 있다. 수동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한다면 적극적으로 권리와 혜택을 주장할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성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업무에 지치지 않을 체력을 기르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세미나에 가고 책이나 콘텐츠를 통해 공부하고 사색한다. 쓸데 없는 술자리는 최대한 피한다. 나의 발전을 회사의 발전으로 직결시키면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훗날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거나 창업을 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워라밸을 추구한다면 본인이 일을 수단으로 대하는지, 목적으로 대하는지, 목적으로 대한다면 진정한 삶의 균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우리의 주체적인 실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정한 워라밸은 이루기 힘들다. 이왕 일을 해야 한다면 적극적인 태도로 본인의 워라밸을 본인이 맞추는게 더 이득이다. 워라밸은 누가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챙겨야 한다. 내가 바로 서야 조직과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원하는 사생활을 확보할 수 있다. 워라밸은 퇴근시간 잘 지켜주는 회사에서 이루기보다 내가 회사에서의 시간과 회사 밖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주체성에 달려 있다. 이제 워라밸의 재인식이 필요할 때다.
결국, 일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그 사람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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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끔 요리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남자.
-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날것의 언어를 사랑하는 기획자.
- 종합광고대행사의 AE였다가 브랜드 마케터로 전향한 직장인.
-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며, 브랜드 부스팅 전략을 탐구하는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