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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Oct 28. 2018

직장인의 성장과 책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나의 성장은 내가 책임지는 만큼 이루어진다.

1.

수요일 오후 3시, 가을햇살이 따스하게 우리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시간이다. 뱃속에는 점심밥이, 머릿속에는 졸음이 가득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눈꺼풀에 달린 무거운 추의 이름이 졸음일지도 모르겠다. 애써 하품을 참으며 입을 막는 순간, 사무실에 큰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러니까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잘못되면 나가면 되잖아요!


갑자기 들린 고함소리가 잠을 깨웠다. 슬그머니 사무실 반대편을 훔쳐보니 누군가의 씩씩거리는 등판이 보인다. 옆팀의 A대리다. 평소에 사람은 좋은데 가끔 윗사람이나 유관부서 사람들과 부딪칠 때는 호전적인 맹수로 돌변한다. 일은 잘 하지만 본인의 의지를 전달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A대리의 앞에는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B팀장이 앉아서 A대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말문이 막힌 표정이 아니라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다. 짧은 침묵을 참다못한 A대리가 뭔가 자신의 의사를 더 전달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B팀장이 천둥처럼 소리쳤다.


잘못되면 나간다는 게 책임지는 태도야?
나가면 남은 사람들은? 그게 도망치는 거지 책임지는거야?
책임지고 싶으면 똑바로 말해! 괜히 억지 부리지 말고!


어떤 지인이 전해준 이 경험담은 책임의 뜻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인이자 마케터로서 나의 책임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겉으로만 책임지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회피하고 있는 사람일까? 나는 남의 책임에는 엄격하고 나의 책임에는 유독 관대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책임을 다 하기 급급한 사람인가 아니면 책임을 넘어 성장을 원하는 사람인가.


우리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혹은 감독까지 리더급이 책임을 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사퇴를 떠올린다. 사퇴란 그때까지 행사하던 책임은 물론 권한까지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퇴가 온전히 책임지는 자세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사퇴를 할 정도라면 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인데, 그냥 물러나버리면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고스란히 후임자의 몫이 된다. 후임자는 본인의 의지와 역량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전임자가 싼 똥을 치우는 일'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써야 한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정말 책임을 지고 싶으면 물러나기 보다 책임지고 원상태로 돌려놓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뒷수습을 맡기기보다 얼른 사퇴시키는 게 더 좋은 상황도 있다. (출처: CNN)


그만큼 '책임'은 우리 사회에서 무겁고 진지하다. 어떤 사람은 책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치며 내 탓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책임진다고 하면서 나중에 딴소리를 한다. 어떤 사람은 책임지라고 하면서 상대방을 옥죄고 공격하는 수단으로 즐겨 쓴다. 어떤 사람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떠난다. 여로모로 책임은 유쾌한 상황에서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요. 핑계 대는 게 나쁘다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영원히 남 탓만 하는 게 인간일 거에요. 인간의 책임지는 태도는 학습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지인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이가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대로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에는 무조건 핑계를 댄다. 그 핑계의 대상은 주변상황이나 주변인이다. 말 못하는 어린 동생이 있으면 딱 좋은 타깃이다. 아이는 영악하게도 자신의 잘못을 줄이려 핑계를 대고 모른 척 한다. 책임을 줄일 수록 벌도 줄어드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부터 요령을 피우는데 하물며 어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많이 공부한 엘리트조차도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는 등 책임지는 태도를 갖추지 못해서 법과 여론에 의해 심판당한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는 무책임한 사람과 반대로 책임감 있는 사람도 가지고 있다. 법, 도덕, 타인의 시선이 아닌 본인의 양심에 따라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책임회피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왜 사람들이 타인의 책임지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또는 비웃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임지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인간은 본성을 이겨낸 의지를 존경하는 것이고, 책임지는 태도를 비웃는 사람들은 자신이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2.

작은 사회나 다름없는 회사에서도 책임은 중요한 개념이다. 회사라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여 노를 저어야 한다. 한 명이라도 힘을 덜 쓴다면 방향은 비뚤어진다. 직위와 직책은 기업이 구성원에게 책임을 어떻게 나누어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표 기준이다. 흔히 기업의 구성원은 대표, 임원, 관리자, 실무자로 나누는데, 각각의 책임을 배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① 대표

배의 선장과 같다. 선장은 배가 도착할 목적지를 정하고 방향을 정한다. 선장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목적지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이라는 꿈을 선원들에게 심어주어 선원들이 힘을 냈던 일화를 생각해보라. 선장은 바다 너머 배가 도착할 곳을 그려야 한다.


② 임원

배의 1등 항해사이자 각 분야의 전문가다. 선장을 보좌하여 목적지를 설정하고 선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분야별로 업무를 진행한다. 주어진 자원과 시간 내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휘하의 구성원들을 독려해야 한다. 선장이 제시한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업무를 설정해야 한다.


③ 관리자

위로는 임원을 보좌하고 아래로는 실무진을 챙기는 갑판장 역할을 한다. 실무자의 특성과 능력에 따라 임원이 가져온 일감을 분배하여 실무자들에게 나눠준다. 목표와 완료시간을 실무자에게 공지하여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한다. 실무자들에게 업무의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④ 실무자

실질적인 업무를 맡는 선원들이다. 노를 젓고 포를 쏘고 닻을 내리고 돛을 접는 등 배가 멈추고 움직이기 위한 모든 일을 한다. 관리자가 제시한 시간과 목표에 따라 움직인다. 업무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날씨가 나쁘거나 암초가 보이면 선장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바로 보고한다.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고 용인하기 힘들어하는 한국 기업에서 책임은 끔찍한 상황에서만 튀어나오는 단어다. 실패하면 서로 희생양을 찾는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전형적인 '탓질'이다. 영업은 마케팅 탓, 상품기획은 디자인 탓, 생산직은 사무직 탓. 탓하지 않으면 내가 당하는 세상이기에 끝까지 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핑계대지 말라고 백날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 부모들이 서로를 탓하고 있으니까.


실패는 남 탓이지만 성공은 내 덕이다. '탓질' 못지 않게 '덕질'도 심하다. 맛있는 밥상이 나오기만 하면 숟가락을 얹으려고 난리다. 광고 캠페인 하나 성공하면 약 100명이 '내 덕'이라고 얘기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성과는 소유하고 실패는 공유하려는 경향은 한국 기업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책임지는 법부터 학습해야 한다. 본인의 의무를 망각하는 책임감 없는 모습은 물론이고 정말 온몸으로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함부로 책임을 입에 올리는 언행도 경계해야 한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잘못되면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부하직원에게 일침을 날린 B팀장의 일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A대리의 입장도 이해된다. 능력과 혜안에 윗사람을 넘어선다면 뭔가 해야 하는 시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회사가 답답할 수 있다. 자신이 해보려고 해도 그만큼 권한이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기업에서 가장 후진적인 부분은 실무자에게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보고 프로세스를 최대한 펼쳐보면 '실무자 -> 파트장 -> 팀장 -> 본부장 -> 사업부문장 -> 부사장 -> 사장 -> 회장'이 된다. 긴 보고과정을 거치면서 실무자는 수없이 보고하고 반려당한다. 그 사이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이 낭비되며 비효율이 쌓인다.


실무자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외부환경에 맞춰 업무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현장과 동떨어진 윗사람들이 결정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보고체계는 기업에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게다가 결재 과정에서 무능력한 인물이라도 있다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실무자는 '어차피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52시간 근무제가 탄생한 배경은 이런 비효율적인 보고체계로 한몫했다. 막스 베버의 관료제로부터 파생하여 일본을 거친 우리나라 전통적인 업무체계는 리스크를 줄이고 단단한 의사결정을 만드는 장점이 있어 제조업 중심의 산업시대에는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일주일로 늘리는 발목잡이가 되었다.


하루종일 보고하고 회의하느라 정작 내가 해야 하는 실무는 저녁 먹고 해야 한다. 게다가 뭔가 새로운 걸 하나 하려고 해도 먼저 윗사람 교육부터 시켜야 한다. 현장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시대와 여론은 워라밸을 원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제자리이니 정부가 아예 일하는 시간을 정해버릴 수 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불쌍한 실무자만 더 죽어나게 생겼다.


왜 하루종일 일을 해도 일은 줄지 않을까?


책임이란 다른 말로 믿음이다. 이 일을 해결하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갖췄다고 판단하면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대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직원을 믿고 책임을 부여한다면 보고체계가 이렇게 복잡할 수 없다. 직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출근시간까지 통제한다. 고등학교와 다를 게 없다. 지금은 아홉 시간 회사에 앉아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시간을 앉아있어도 최고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냐가 중요한 시대다. 안타깝게도 시대에 역행하여 책임과 권한을 다 쥐고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책임만 주고 권한을 안 주는 더 안타까운 상황도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을 펼칠 수도 있다. 자율을 주면 태만이 벌어진다고. 일 안 하고 지각하는 월급 루팡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전망을 내비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은 월급 루팡이 없냐고. 자율이 없는 그 회사에는 업무시간 내에 담배 피면서 수다 안 떨고 화장실도 잘 안가고 졸지도 않으며 미친듯이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만 모여있냐고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스타트업은 완전한 자율출퇴근에 휴가도 자유다. 회사와 합의한 업무만 해결한다면 나머지 부분은 자율이다. 자신이 업무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도 진다. 그 책임의 범위도 정해져 있다.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이 회사의 CEO는 정규교육 다 받고 이력서에 면접까지 본 사람을 믿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상식적인 부분을 규정해야 통제되는 직원은
애초에 멘탈리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책임회피가 인간의 본능일지라도, 국가는 국민을 교육할 수 있는 훌륭한 체계를 만들고, 국민은 성실하게 교육받고, 기업은 이런 교육을 받은 직원을 믿고 맡긴다. 각자의 책임을 다 하면 삐그덕거릴 일이 없다. 


기업은 명확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에 공감한 사람들이 모여야 잘 굴러간다. 사람은 책임을 부여하면 자동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 아래 실무진의 책임이 무거워지면 기업은 저절로 기반이 안정된다. 애초에 머리쪽이 무거우니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것이다. 물론 본능적으로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회사 안 가고 다른 일 하면 된다. 대부분이 직장인이라서 지나칠 수 있는 사실인데, 사실 회사일도 적성이 맞아야 할 수 있다.


3.

첫 커리어인 광고대행사 시절은 내가 직장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학습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나는 AE인턴으로 입사했다. 그 뒤 윗사람들이 줄줄이 퇴직했을 때 나는 갓 6개월차 사원이었다. 팀에서 나 혼자 남았을 때 대표님이 나를 호출했다. 대표님은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① 당장 팀장을 뽑아주겠다.
② 네가 혼자 해봐라.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②를 선택했다. 지금 기준에서는 ①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때의 나는 어렸고 무모했으며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했다. 무지의 대가는 참혹했다. 수많은 광고주가 나의 낮은 연차를 문제삼았고, 내부의 제작팀도 마찬가지였다. 책임과 권한은 커졌지만, 쓰는 방법을 몰라 매번 좌절해야 했다. 특히 회사의 대형광고주 두 기업이 나에게 배정되어서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동안 열심히 운동해서 쌓아놓은 체력과 잘 해서 인정받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미팅하기 전에 광고주의 정보를 외웠고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대답할 수 있도록 예상 질문리스트를 준비했다. 매일 광고 10편을 보고 어떻게 기획했을지 역으로 기획서를 썼으며, 좋은 카피는 메모해두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가고 디자인 잡지를 탐독했다. 출퇴근길에는 무조건 책을 읽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공부를 했다. 열심히 한 시간이 쌓여 나를 성장시키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하면 꼭 집 근처의 한강공원을 들렀다. 그림자를 집어삼킨 듯 컴컴한 한강에 내 하루의 스트레스를 던져주었다.


노력은 차츰 빛을 발했다. 1년이 지나자 조금씩 신뢰를 받기 시작했고, 2년차에는 대리가 되었다.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차장이 되었고 3명의 팀원을 거느린 팀장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책임을 느끼고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성취였다. 5년차에는 광고주에게 브랜드 컨설팅을 하고 캠페인 기획서를 작성하고 경쟁PT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몇십억의 캠페인을 운영하는 등 광고대행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의 경험으로 깨달은 점은 실무자가 권한을 가지고 싶다면 그에 준하는 책임을 기꺼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전부 본인이 끌어안는다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은 조직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범위의 확장이며, 확장의 영역은 상사가 정한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안되는 이유를 찾는 사람은 당시의 책임을 피할 수 있어도 미래의 권한을 취할 수 없다. 직장 내에서의 성장은 얼마나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내 생각을 조직에 관철시킬 수 있냐에 달렸다.


큰 성취에 시력감퇴, 커피중독, 허리디스크, 거북목, 건초염은 덤이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배웠다. 


흔히 조직에서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다 할 줄 알면 일을 많이 시키니까 최대한 숨기라는 조언도 있다. 이 조언은 조직에서 성장하기 싫은 사람까지만 유효하다. 내 능력을 다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뭘 숨기라는 말인가. 나의 능력이 다채롭고 능력치가 높다는 건 윗사람 입장에서 유용한 패를 쥔 것이나 다름 없다. 개인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 조직 내에서 중요한 자원이 되면 그만큼 대접받는 것이고 대접 안해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한 조직에서 정점을 맛본 사람은 다른 조직에서도 인정받을 확률이 높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다가 무산된다. 내 마음 속에 '남 탓'이 난무한다. 경영관리에서 예산을 배정해주지 않아서, 경기가 안 좋아서, 경쟁사가 선수쳐서, 인맥에서 밀려서, 내 동료들이 후져서. 내가 맡은 장기 프로젝트가 단발로 끝났다. 역시 '남 탓'이 꿈틀꿈틀 올라온다. 상사가 내 기획을 알아보지 못해서, 예산이 부족해서, 회사가 미래 비전이 없어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했다. '내 덕'이라는 뿌듯함이 번진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내가' 했기 때문에 성공한 건지, 아니면 '남이' 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건지. 경기가 좋아서, 예산이 풍족해서, 경쟁사가 느려서, 인맥이 좋아서, 내 동료들이 훌륭해서, 상사를 잘 만나서. 이렇게 환경이 좋아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왠지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잘 한건 '내가' 했기 때문에 잘 한 것이어야 한다. 반대로 내가 못 한건 '내가' 했기 때문에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환경을 핑계로 자신과 타협하기 시작하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책임지는 영역만큼 권한이 따라오고, 그만큼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직장인들이여! 성장하고 싶다면 책임져라. 물론 그에 따른 권한도 함께 가져와야 한다. 조직에서 직장인으로서 성장하려면 내 책임범위를 끊임없이 늘리는 게 지름길이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책임감을 스스로 부여하면 그만큼의 동기도 부여할 수 있다. 조직에서 팀으로 일이 떨어져서 이왕 하게 될 것 같으면 손 들고 하겠다고 해라. 모두가 당신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책임감과 성장률은 비례한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어쩌냐고? 내가 보기에는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실패다. 일단 시작한다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단련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착각하는 게 있는데, 회사는 바보가 아니다. 본인이 책임지고 성공시키겠다고 해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맡긴다.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라면 실패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항상 마련해 놓는다. 성장하고 싶으면 우선 조직에서 책임을 부여하고 싶어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은 책임을 받고 성장을 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누가' 했어도 그 정도는 했어가 아니라 '내가' 했기 때문에 그 정도를 했다는 말을 자타공인으로 듣기 시작하는 순간, 성장의 선순환 바퀴가 돌 것이다.


결국 일을 책임지는 태도가 내 성장까지도 책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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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랜드 부스터

- 가끔 요리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남자.

-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날것의 언어를 사랑하는 기획자.

- 종합광고대행사의 AE였다가 브랜드 마케터로 전향한 직장인.

-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며, 브랜드 부스팅 전략을 탐구하는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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