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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호빵맨 Feb 03. 2019

끝인사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 박준, 2017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계열사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장례식장 근처에 직원 주차장이 있다는 것이다. 바람 불고 어둑어둑한 주차장 언덕, 2만 광년 출퇴근길 오가기만 해도 체중감량의 기적이 벌어지고 있다. 직원들 건강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로 알고, 또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아예 주차장 맨 꼭대기에 주차를 한다. 가끔은 장지로 떠나는 슬픈 운구 행렬을 만난다. 몇 년을 관찰한 결과 좋은 차를 가진 가족들은 리무진 뒤를 따라가고, 조건이 안 맞으면 버스를 타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 겨울 산속 흙구덩이에 외롭게 들어가는 것이나 불속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 하나보다. 메멘토 모리.. 회사가 아침마다 선물해주는 두 번째 교훈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신 분은 거의 당일 처음 뵙는 분이라 공통된 기억도 없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는 너무 사극 느낌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는 위로의 말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별다른 말없이 손만 잡거나,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내가 주인공이 될 장례식장에는 내 생이 10분씩 3부로 구성된 비디오가 식당 벽면에서 절찬 상영됐으면 한다.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면 아마 이런 것도 쉽게 만들어 주겠지. 3편의 영상 사이의 소맥 브레이크는 30분씩이다. 자기들 얘기 말고 왁자지껄 내 얘기만 했으면 좋겠다. 발인 아침에는 다른 건 필요 없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몇 분이 5분씩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물론 시간 넘기면 종을 치고, 종 쳐도 계속 말하면 같이 묻고..

만날 때와 헤어질 때 하는 인사 중 어떤 게 더 중요할까? 요즘 들어서는 헤어지는 인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 그게 영원한 작별일 수 있으니까. 기억에 남겨진 혹은 남겨준 말이 없으면 너무 서운하니까. 보기에 더 선명한 것은 말보다는 역시 글이다. 그래서 정 많고 예의 바른 사람들은 헤어진 다음에도 오늘 즐거웠다고, 고마웠다고 바탕색이 노란 메시지를 보내고 하는 거겠지. '먼저 가보겠습니다', '잘 가요', '또 뵙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또 만나요'. 같은 말들..


사람이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사회생활이 '말'이다. '표정'을 익히는 것은 훨씬 어려운데, 일단 숙달되면 말보다 효과적인 비언어적 표현의 씀씀이를 알게 된다. 하지만 눈은 앞으로만 향해 있어서, '뒷모습'은 고칠 수 없는데, 여기에는 도저히 꾸며낼 수 없는 자아가 서있다. 내가 떠났던 사람보다 내게서 떠났던 사람이 더 그리운 이유도 마지막 기억이 그의 꾸며지지 않은 뒷모습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예고 없이 몰래 떠나는 사람은 기억의 테이프를 구겨서 자르고 가버리는 야속한 사람이다. 떠나는 뒷모습이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면, 내 시야에서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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