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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호빵맨 Feb 03. 2019

도토리의 생

 주말 오전에는 딸과 2인 1조로 집 밖에서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무언의 규율이다. 출타 시간은 이르면 이를수록 환영받는데, 오늘의 작전 개시 시간은 ‘눈뜨자마자’라고 딸이 나를 깨운다. 겨우 뜬 눈으로 태연하게 서로에게 옷을 입혀주고, 주차장으로 가서 우선 시동을 걸었다. 

 옆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은 내부가 넓고 깨끗하여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첫 번째 선택지다. 도서관 뒤의 숲 속 데크와 산책로는 높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큰 나무의 높이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 가을이라 도토리가 여기저기에 많이 떨어져 있는데, 매끈하고 파리한 외모가 사랑스럽다. 딸에게 도토리를 만나거든 몇 개만 줍고 산으로 던져주라고 말하는데, 도토리가 산짐승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된다는 뻔하고도 훈훈한 교육을 잊지 않는다. 실은 운송이 불편하고 집에 가져가 봐야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남한산성에 올라갔을 때 만난 다람쥐에게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록색 과자를 던져준 적이 있었는데, 기겁을 하고 목숨 걸고 찻길 건너 도망치던 다람쥐를 보면서 사람의 먹을 것과 동물의 먹을 것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같이 배웠다.

 ‘개밥의 도토리’는 개밥에 섞여 들어간 도토리를 관찰한 말인데, 개는 도토리를 먹지 않으므로 다른 음식과 섞이지 못하고 외면받는 신세라는 뜻이다. ‘도토리 키 재기’는 고만고만한 도토리들을 모아서 키를 재는 따위의 무용한 일을 비웃는 말이다. 아 이 가련한 도토리의 생이여..

 도토리를 동물의 F/W 식량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도토리가]라는 어린이 책을 같이 보다가 아직 문맹인 딸은 졸았고, 나는 대신 감동에 젖었다.  어느 해설을 보니 10분 만에 읽을 수 있지만, 10년 읽어도 감동스러운 책이라고 쓰여있다. 참나무에서 영글어가던 도토리가 땅 위로 떨어진 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계획도 목적도 없는 출발은 얼마나 막막하고 외로웠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람 부는 숲에서 낙엽들과 뒹구는 일 아니면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일 될 뿐이다. 간혹 운이 좋은 도토리들은 땅속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다음 해 봄에 새싹을 틔운다. 주인공 도토리는 고개를 내밀었더니 스스로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 무려 4년간을 자신을 파묻고 뿌리를 깊이 내린 후에야 비로소 나무로 변신한 기적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토리를 만들어내는 나무를 도토리나무라고 부르지 않고, 참나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이 나무가 흔하고 그 쓰임새가 많아 ‘진짜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나무의 종류는 총 여섯 가지라고 하는데, 영화 “가을로”에 나왔던 7번 국도변의 동네들 이름처럼 왠지 이름을 불러줘야 할 것 같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떡갈나무의 잎은 사람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커서 떡을 찔 때 밑에 까는 용도로 쓰였고, 신갈나무는 털이 없이 매끈해서 신발 밑창으로 깔았다고 해서 신갈나무라고 한다. 이 사실은 그 규모가 토토리 같아 안쓰러운 신문에 실렸던 안도현 시인의 글에서 알아냈다. 이름의 위압감은 역시 졸참나무다. 이 나무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니 이름이 낯설지 않고 모던하다. 

 도서관 밖으로 나와 도토리를 땅으로 보낸 '참나무'를 다시 한번 한참을 올려다봤다. 후손을 가리키는 영어가 Descendant라고 한다. 나무에서 땅으로 툭 떨어진 도토리를 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다. Offspring이라는 말도 어원을 찾아보니, ‘spring’이라는 말이 고어에서는 ‘origin’이라는 뜻이어서 자손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참나무는 도토리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따가운 햇빛과 비바람을 막아줄 뿐 그저 지켜만 볼 것이다. 보잘것없는 도토리가 눈물 나게 안쓰러워도 다시 주워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토리의 생은 지상에 착륙한 순간 완전하게 개별적이고 그 자체로 온전해야만 한다. 일부는 부모나 스승을 닮거나 뛰어넘는 근사한 나무로 크기도 하겠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도토리는 또 얼마나 많을까. 나는 도토리 인간으로서 나무가 되지 못한 도토리의 한이 서린 씁쓸한 도토리 묵에서 생의 씁쓸함을 간혹 떠올린다. 간혹 운이 좋아 향이 그윽한 참나무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를 볼 때에도, 나를 세상에 내보내 준 부모님과 나의 선생님들에게 깊이 감사하면서 좋은 술 여러 잔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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