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과의사 호빵맨 Feb 10. 2019

맹장 수술

“복막염은 응급 수술이 필요한 급성 질환이다. 외과 의사가 최대한 빨리 원인을 바로잡거나 제거하고, 복강을 씻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수술은 가능한 한 병이 덜 진행됐을 때 실시되어야 하며 패혈성 쇼크가 발생하기 전에 돌입하는 것이 좋다. 가장 적합한 수술 시점은 문제가 시작된 기관, 즉 자그마한 충수만 영향을 받았을 때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메스를 잡다』

 

 맹장 수술은 전 국민이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술이다. 마치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는 것처럼 간단하게  생각한다. 수술을 받는 사람도 흔하고 수술을 하는 사람도 흔하다.  그런 이유로 맹장 수술 후에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그 외과의사는 영락없는 돌팔이가 되는 것이다.  맹장 수술도 못 하는 외과의사는 이 나라에서 ‘한글도 못 읽는 초등학생’ 만큼이나 모욕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외과의사들끼리 하는 말로 ‘외과의사는 맹장 수술로 일어서고 맹장 수술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다. 외과 전공의 1년차 겨울에 하는 '초집도식'이라는 비밀스런 의식에 축사로 매번 등장하는 말이다. 이 행사는 외과의사로서 처음 집도해 본 수술에 대해 선배와 동료들이 축하해 주는 시간이다. 나름대로 집도라는 걸 해봤노라며 발표하는 거의 모든 수술들이 맹장 수술이다. 그만큼 입문자에게도 기본적인 수술이라는 뜻이다.

 

  이 수술의 안전성이 확립된 계기는 영국에서 생긴 일이다. 1902년 영국에 살던 유명한 외과의사 프레데릭 트레버스 (Sir Frederick Treves,1853–1923)는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의 복통을 충수염으로 진단하고 수술을 하게 된다. 그의 귀신같은 솜씨로 수술이 잘 되어서 어떤 기자가 왕을 방문했을 때 수술한 날 저녁에 침실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하고 흔한 충수염 수술을 잘해서 무려 귀족 작위를 받았던 외과의사가 있었다는 말이다.  

 

 맹장 수술은 잘못된 말인데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충수돌기 절제술이 되겠다. 오른쪽 아랫배에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로 위치한 충수돌기라는 퇴화된 장에 염증이 생기면 절제를 하는 것이 표준치료법이다. 전공의 시절, B 병원에 파견을 갔을 때, 이 수술을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1년차 때는 당직 주치의라는 이유로, 2년차 때는 바쁜 1년차를 도와준다는 의미로, 3년차 때는 1년차와 2년차를 쉬게 해 준다는 의미로, 4년차 때는 격무에 지친 1년차가 도망을 가서 도맡아 했던 거 같다. B 병원에서는 충수염 환자가 끝없이 이어졌다. 많은 날에는 하루에 다섯 명 정도의 수술도 했었다. 그 일대의 충수염을 발본색원하듯이 수술을 했음에도 끝없이 우하복부 통증으로 가진 환자들이 응급실로 줄을 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지도 않고 고층 아파트가 많지도 않은 동네였는데도, 갈 때마다 새로운 환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병원에서는 충수염이 전염병의 형태로 옮겨진다는 말도 있었고, 박지성이 세 개의 폐를 가졌단 소리처럼, 이 지역 사람들 충수는 떼버려도 다시 자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괴담도 돌았다. B 병원과 전혀 다른 동네에 사는 지인이 얼마 전 B병원에서 이 수술을 받고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지하철에서 내려서 응급실을 찾아갔는데, 공교롭게 B병원이었다는 것이었다. 몸이 알아서 제대로 찾아갔다고 칭찬을 해줬다.   


 연차가 높아져, J도에 있는 C 병원에 파견을 갔을 때 일이다. 공항에 내려서  휴대전화를 보니 6시까지 병원 모처로 오라는 연락이 와 있다.  짐을 풀고 병원에 가봤더니 처음 뵙는 교수님이 충수염 환자가 준비되어 있다고 수술을 해보라고 한다.  그간 갈고닦은 실력으로 수술을 30분 정도에 마무리하고 ‘잘 되었습니다’라고 보고했더니, ‘그럼  옆방에 다른 환자도 마저 수술하게’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환자도 수술을 비교적 쉽게 끝내고 나니, 그 교수님은 ‘앞으로 자네가 이 병원의 맹장수술을 도맡아 하게’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병원에 파견 나가 있었던 2개월 동안은 대략 100여 명의 충수 절제를 했는데 2개월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간 마취를 해주시던 마취과 과장님도 ‘나도 맹장염에 걸리면 오선생한테 수술받아야겠네’라고 하실 정도였다. 파견 근무의 마지막 달에는 수술이 능숙해서 맹장 절제를 두 명이서 12분 만에 마친 일도 있었다. 그 일을 실습 나온 학생들한테 좀 자랑을 했더니, 그 학생들이 파견을 나가서 보고 온 이야기를 해 주는데 어떤 병원에서는 8분 만에 끝내는 수술도 봤다고 한다. 역시 강호의 세계는 넓고도 넓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수술에 걸린 속도보다 들인 정성이라고 사파의 세계에 미혹된 그 학생을 크게 꾸짖었다. 


 내 전공이 대장항문외과여서 가끔 충수염 수술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충수가 대장의 입구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충수염 수술은 주로 당직 전공의나 전임의 선생님들이 무난히 진행하고 있어서, 요즘은 직접 수술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받을 때에는 ‘당연히 제가 수술을 할 수는 있는데, 요즘 잘 안 하다 보니 합병증이 많이 생겨서  멀쩡하게 퇴원하는 분들이 드물긴 합니다.’라고 가볍게 말씀드리긴 한다. 짜장면은 중국집이 제일 잘한다.   

작가의 이전글 손이 좋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