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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Nov 02. 2017

집배원 슈발 씨의 꿈

오트리브(Hauterives)의  이상궁(Le Palais idéal)



집배원 페르디낭 슈발(Ferdinand Cheval)씨는 오늘도 가방 가득 돌을 채웠다. 집집마다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나면, 빈 가방에 그는 돌을 주워 넣는다. 그렇다고 아무 돌멩이나 그에게 당첨되는 건 아니다. 독특한 색깔과 기이한 모양을 가진 돌을 선호한다. 그렇게 돌을 모아 집에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대체 그는 이 돌들을 모아다가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는 혼자서 궁전을 만들고 있다. 궁전이라니... 아니 그게 돌멩이를 주워다가 쌓아 올린다고 될 일인가. 안 그래도 그를 미치광이쯤으로 생각하는 이웃들의 시선이 편치 않다. 하지만 슈발 씨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다. 주워온 돌을 다듬고, 깎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기괴한 형상의 조각이 눈 앞에 서 있다. 순전히 자신의 상상력과 머릿속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따라서 손을 움직이는 것이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어느덧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슈발 씨는 일흔여섯, 노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궁전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지난한 세월이 머리를 스친다. 그는 죽어서도 궁전에 묻히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단했지만 뿌듯한 삶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슈발 씨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운명적인 돌과의 만남 



주말에 집에 있으면 큰일 나는 남편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차를 몰고 나왔다. 오늘은 또 어딜 갈 것인가.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 남자는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가만히 있어도 어디든 척척 데려가 주니 고맙긴 하지만 사실 내 성향은 완전히 집순이다. 가끔은 집에 혼자 콕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있어도 너무 바쁘고 또 너무 즐거운 나는 종종 남편의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은 걸. 


리옹에서 남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외딴곳에 오트리브(Hauterives)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북적이는 걸 보면 무언가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돌을 쌓아 만든 기괴한 형상의 건축물이 떡하니 서 있다. 바로 집배원 페르디낭 슈발 씨가 무려 33년에 걸쳐 혼자서 건축한 그의 궁전, 이상궁(Le Palais idéal)인 것이다. 뭐랄까, 이런 류의 스토리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몇 번 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슈발 씨의 이상궁은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당시 피카소나 앙드레 브르통 같은 유명 인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문득 궁금해진다.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고집과 강단이 있어 보이는 사진 속의 이 남자가 바로 페르디낭 슈발이다. 1836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제빵사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 집배원이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빠르게 걷던 중,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그 돌을 다시 들여다보니 세상에 이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슈발 씨는 그 돌이 단번에 마음에 들어 그의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가 넘어지던 순간 떠올렸던 꿈에 대해 생각한다. 꿈에서 그는 궁전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꿈 이야기를 입 밖에 내면 조롱거리가 될까 두려워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이 돌이, 그를 넘어지게 만든 이 운명적인 돌과의 만남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꿈을 실체화시키는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이 넘어졌던 장소로 가서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에, 그곳에는 어제 주워온 돌보다 더욱 아름답고 독특한 돌들이 많이 있었다. 물과 오랜 시간에 의해서 굳어진 사암은 자갈처럼 단단해진다. 그것이 슈발 씨의 건축물을 특이하고 또 기괴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1만 일, 9만 3천 시간, 33년의 노력 



슈발 씨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그의 일과가 끝나면, 빈 가방에 돌을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3년 간 작업을 한 결과, 1879년에 돌멩이 하나로 시작한 일이 1912년이 되어서는 엄청난 규모의 궁전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독교에서 힌두교에 이르는 다양한 양식을 조합해 놓은 듯한 그의 건축물은 여러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69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이 궁전을 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공표하였다. 슈발 씨가 죽은 후 45년 만의 일이다. 

슈발 씨는 자신이 죽으면 궁전에 묻힐 것을 원했지만, 프랑스에서 그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이 죽으면 묻힐 묘를 오트리브 마을 묘지 안에 만들었다. 8년의 세월이 또 흘렀다. 



 




너무나 창의적이고 기괴하기까지 한 궁전 안에 들어가니 슈발 씨의 끈기와 집념, 그리고 그의 고독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는 고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구조물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완성될 이미지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초월해 언제나 현재를 산다. 

9만 3천 시간, 33년 간의 노력의 결과가 이상궁(Le Palais idéal*)으로 이름 붙여진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idéal : 이상적인, 완벽한, 공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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