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랑스에 온 지 어느덧 열 해가 넘었다. 이곳에서의 내 사회적 나이가 열 살이라는 뜻이다. 언어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열 살이면 이미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나이일 테지만, 나는 아직도 문장을 더듬고 긴 글을 읽다가 길을 잃곤 한다. 언어로는 어린아이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마흔을 넘겼다. 이 불균형 속에서 나는 자주 주저앉고, 가끔은 뜻밖의 행복을 불시에 맞닥뜨린다.
한국에서의 행복은 언제나 성취와 결부되어 있었다. 목표를 세우고, 도달하는 순간에 느끼는 짧은 환희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대체로 타인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낯선 카페에서 주문조차 받지 않는 무심한 시선에 움츠러들던 순간도, 그 후에 들어선 빵집 주인이 따스한 태도로 날 응대해 주었을 때, 혹은 일하는 가게에서 성질 고약한 손님들에게 당하고 울음을 꾹 참고 있는 내게 한 손님이 조용히 건넨 위로와 충고의 말처럼 언어의 숙련도가 열 살도 못되는 나에게, 하지만 몸과 정신은 마흔 줄을 넘겨버린 다소 이상한 상황에서 매일 마주쳐야만 하는 타인이란 존재는 때론 지옥이기도, 천국이기도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도착한 이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갑자기 맞닥뜨린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매일 아침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쁘게 출근을 하는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며 몇 해를 흘려보냈다.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은 상상한대로 느긋하고 자유로웠지만 그 태도는 가만히 앉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는 데는 돈이 필요했고, 결혼을 해도 각자의 경제적 자립은 중요한 문제였다.
프랑스에서 내가 막 두 돌이 되었을 때, 나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결심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국에서 한 공부와 쌓은 경력들이 이곳에서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집에 앉아서 미술관과 갤러리에 이력서를 보내던 짓도 그만두었다. 상업 갤러리의 디렉터들은 내게 호감은 보였지만 일자리는 주지 않았고, 단 몇 번의 거절에도 나는 심하게 좌절했다. 예전에 뭘 했던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의외로 길이 쉽게 열렸다.
지인의 소개로 한 가게에서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가게는 이전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나가 본 적이 있던 길에 있었다. 특별한 볼거리라곤 없던 평범한 길이어서 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과 액세서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처음 만난 가게의 사장님은 아주 긴 머리에, 큰 키,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가게에서 손님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드디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사장님이 입을 열자 약간의 긴장감이 사르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아이 같은 천진함이 목소리와 말투에서 묻어나 안심이 되었다.
안으로 길게 뻗은 마치 동굴 같은 형태의 가게에는 빈티지 가구와 말린 꽃, 그리고 공중에 매달린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은 패션을 전공한 사장님이 아틀리에로 삼아 지내던 곳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옷가게가 되기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있었다.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던 이 공간이 나는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어색하고 낯설기는커녕 안온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마침내 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 초입에 아직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던 작은 길, 퐁토슈 가에서 말이다.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변화가 더딘 프랑스지만 지난 8년 간 조용한 퐁토슈 가에도 새로운 상점이 생기고, 관광객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시간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를 아는 이웃들이 생기고, 친구를 만들고, 서툴지만 프랑스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남편 때문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장에는 갑자기 혼자 가게를 맡게 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적었다. 언어의 한계와 문화 차이는 여러 오해를 만들고, 때론 쥐구멍에 숨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과 충돌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면서 응시한 시간들, 그 관찰의 기록들이다.
2장은 퐁토슈 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 바라보니 이 작은 길에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 즉 인종과 정체성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프랑스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삶과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국과 프랑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기록했다.
운이 좋게도 부모님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한국에서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만을 좇으며, 어느 한 곳에 발붙이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삶을 살았다. 결혼을 하고 프랑스에 오니 아무리 떼를 쓰고 바래도 손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삶들과 뒤섞여 살면서 마침내 내가 속해있던 안온하고도 안전한 세계의 울타리를 깨부수었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더욱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진정한 독립은 지금부터인 셈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이민자의 분투기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사람들과 다정한 퐁토슈 가의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